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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계란과의 전쟁

“왕란, 특란, 대란 중 가장 큰 달걀은 뭘까요?”

인터넷에 등장한 문제다. ‘왕’도 크고, ‘특’도 크고, ‘대’도 크니, 분간이 안될 법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금방 알아맞힐 수 있다. 부모님이 계란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정답은 왕란이 가장 크고, 특란이 다음. 대란이 그 다음이다.

아마 계란의 단위는 대란·중란·소란으로 시작해 그보다 큰 것이 특란, 그보다 더 큰 것이 왕란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소란보다 작은 것이 있으니, 경란이라고 불렀다. 크기별로 하면 왕란-특란-대란-중란-소란-경란 순이다. 어릴 적 집에는 수평저울이 있어서 계란을 달아 구분했다. 대부분의 계란을 저울에 재는 것이 아니라, 특·대·중·소를 금방 알 수 있는 계란은 바로 눈으로 구분해 담고, 눈으로 저울질할 수 없는 계란을 저울에 얹어 구분했다.

읍내에서 계란 도매상을 하다보니, 우리집은 자연히 ‘계란집’이 됐다. 어머니는 ‘계란집 아줌마’, 아들은 ‘계란집 아들’이 됐다. 이름도 특징도 설명도 소용없고, 읍내에서는그냥 ‘계란집 아들’로 통했다.

어릴 적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당시 도시락에서 가장 고급 반찬이 계란 프라이였다. 계란 프라이 두 개 이상을 밥에다 얹어 오는 아이들은 정말 잘 사는 집 축에 속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아이들은 소풍때나 돼야 계란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김밥에 들어가는 계란지단이나 아니면 삶은 계란이었다. 우리 집에는 마루에 온통 계란이 있었다. 당시 계란을 잘 먹지 못했던 친구들로서는 ‘알부잣집’ 아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내 도시락에는 계란 프라이가 없었다. 계란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계란 몇 판이 깨지는 사고가 나면 며칠 동안 계란냄새가 진동했다. 조금 덜 깨진 것은 이웃에 그냥 줬지만, 며칠 동안 집에서는 계란 프라이, 계란 찜, 계란 빵으로 때워야 했다. 계란냄새가 지겨웠다.

계란만 먹지 않는 ‘편식’ 때문에 계란이 들어가는 수많은 음식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계란 프라이, 찐 계란, 계란 찜, 스크렘블 에그, 계란말이, 오믈렛, 비빔밥, 오므라이스, 덮밥, 전, 빵, 과자 등이다.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면서 이런 음식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계란은 고급 음식 재료가 아닌 서민 음식 재료가 됐다. 서민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재료에 살충제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좀 더 싸고, 좀 더 많이 생산하려는 욕심이 살충제 파동을 일으킨 원인이 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한 친환경 계란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서민의 가장 맛있는 반찬이 되길 기대해본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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