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과 기자가 하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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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공영방송과 기자가 하는일

영화 <택시 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사진기자를 서울에서 광주까지 싣고 간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택시운전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독일 기자인 고 힌츠페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담은 광주의 영상기록은 그 뒤 전두환 정부가 왜곡하고자 했던 내용을 뒤집고, 진실 그 자체를 전해주고 있다. 그는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미국에 광주의 진실을 알린 공로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대학에 축제가 있을 때면 학생회관 모퉁이에서 그가 찍은 영상이 방영됐다. 쭈그리고 앉아 그 영상을 보고 나올 때면 모두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에게 그 영상물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는 단순히 ‘독일에서 방송됐더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숨 죽여 봐야 했던 당시 전두환·노태우 정부의 국내 상황과 비교하면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이 영상물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공영방송인 KBS에서 방송됐다. 제목은 <푸른 눈의 목격자>였다.

힌츠페터는 독일 ARD 방송의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던 기자였다. 광주민주화 운동 양상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서울로 와서 광주로 잠입해 취재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진실을 알린 그의 힘은 어쩌면 독일 제1공영방송인 ARD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 방송의 정식 명칭은 독일 공영방송 공동체(ARD·Arbeitgemeinschaft der offentlichen-rechtlichen Rundfunkanstalt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다. 각 지역국이 연합한 채널이다.

우리에게는 제2공영방송인 ZDF 방송국의 이름이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독일에서는 제1공영방송인 ARD 방송이 특히 뉴스 분야에서는 더 권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9시 뉴스’와 비교되는 독일의 뉴스로는 ARD의 ‘타게스샤우(Tagesshau) 8시 뉴스’를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첫 소식은 바로 1980년 5월 22일 ARD의 NDR 8시 뉴스를 타게 된다. NDR은 ARD(독일 공영방송 공동체)의 한 지역방송국 중 하나인 ‘북부독일방송’을 말한다. 힌츠페터가 속한 방송국이 ARD의 NDR이었다.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찍어 몰래 일본으로 들고 가 독일로 보낸 충격적인 영상은 뉴스에서 보도된 후 독일에 광주의 참상을 알렸고, 이어 유럽에도 퍼졌다. 그가 담은 진실의 영상기록은 독일에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대한민국>으로 방송됐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근무했던 공영방송 ARD가 새삼 부러워진다.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준 고마운 방송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방송 개혁이 하나의 과제로 등장했다. 우리에게도 ARD와 같은 공정방송과 힌츠페터와 같은 기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과 우리나라의 기자가 미처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들이 해냈다. 힌츠페터의 생전 인터뷰에서 왜 광주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가슴을 울린다. “당연히 가야지, 그게 기자가 하는 일이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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