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메르스와 유도리 문화](https://img.khan.co.kr/newsmaker/1130/20150616_06.jpg)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유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나 금전, 기력 등의 여유를 뜻하는 일본말 ‘유토리(ゆとり)’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융통성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유도리는 그냥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또는 관행에 가깝습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도리를 발휘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우리에겐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요령부득이고,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무능력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도리는 군사문화, 권위주의문화의 잔재입니다. 아직도 조직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게 현실인데, 그때 필요한 게 유도리입니다. 유도리는 일종의 편의주의 문화입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주는 마법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선 편하고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일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 한편에 유도리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유도리를 발휘하다 보면 법이나 규칙의 엄정성이 훼손되기 쉽습니다. 사람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법이 돼버립니다. 매뉴얼도 유도리 앞에선 있으나 마나입니다.
뜬금없어 보이는 유도리 얘기를 꺼낸 것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입니다. 메르스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확산일로에 있는데, 당국의 무능력과 안일한 대처도 대처지만 우리 사회의 ‘유도리 문화’도 한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일선 병원이나 보건당국 모두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지켜야 하는 기본 행동 수칙(매뉴얼)이 있을 것입니다. 메르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위기의 순간 이 매뉴얼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매뉴얼을 모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매뉴얼대로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이 무척 컸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병원은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해집니다. 환자들부터 찾지 않을 것이고, 많은 제약이 따를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휴업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후유증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매뉴얼대로 하자고 고집부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흔하게 부딪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상사에 대한 눈치, 추가 비용이나 손실에 대한 중압감, 고객의 불편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대로, 매뉴얼대로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게 바로 ‘유도리’입니다.
비상사태 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매뉴얼보다 유도리를 더 중시하는 문화 때문입니다. 법과 규칙, 매뉴얼을 지키는 사람보다 유도리 있게 일처리하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고 대우해주는 사회 분위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뉴얼을 몰라서가 아니라 유도리 있게 하다 보니, 그게 관행이 돼 여러 가지 유도리가 쌓이고 쌓이다 결국 모순이 극에 달해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매뉴얼보다 유도리가 앞서는 문화는 공동체 정신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개인 또는 조직의 생존이나 이익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유도리는 좋게 보면 융통성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폭탄과 같습니다. 그 속성 자체가 편법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전과 질서에 관련된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유도리에 집착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은 우리 사회가 유도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뉴얼과 원칙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이렇게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유도리야, 바보야.”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