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대학원생이었던 기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오시티라는 미국 회사의 사이트였다. 지오시티의 홈페이지 정책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국내 통신사들이 월 1만원이 넘는 홈페이지 계정 유지비용을 내야 했던 것에 비해, 무료로 계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자가 개설한 홈페이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기자는 정보통신부 관련 부서들에 문의한 끝에 지오시티의 다른 계정에 친북 사이트가 개설되었고, “개별 사이트만 막을 방법이 없고, 또 유사한 사례가 재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체 사이트를 차단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마디로 단순무식한 조치다. 네이버에 누군가 친북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네이버 전체를 접속 차단한 꼴이기 때문이다. 그 후 차단기술은 진화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이 운영하는 ‘불법정보 차단 안내’, 이른바 ‘워닝’ 페이지는 이제 개별 페이지 단위로 설정이 가능해졌다.

레진코믹스에 대해 방심위의 차단 조치가 이뤄지자, 레진코믹스 측에서 ‘워닝 등재 기념’ 이벤트라고 내건 홍보문구. 방심위 등의 ‘불법정보 차단 안내’ 사이트를 패러디한 것이다. | 레진코믹스
3월 25일, 유료 웹툰 인터넷 사이트 레진코믹스를 유해 사이트로 지정, 전체를 차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레진코믹스는 한 해 전 ‘대한민국 인터넷 대상 인터넷 비즈니스 부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유료 웹툰 사이트다. 이튿날 이 조치는 철회되었다. ‘격무에 시달린 사무처의 실수’라는 해명과 함께.
회의 당시 ‘차단 의견’을 올린 정혜정 청소년보호팀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음란물을 검토해야 하는 사무처 직원들은 힘들다. 어쩌다가 한 번 실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 기자님도 한 번 실수로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으면 억울하지 않겠느냐.”
<주간경향>은 방심위의 ‘차단’ 조치의 형식적 심의 실태를 지적하고 대안으로 ‘개인이 책임지는 접속’ 정책을 제안한 적이 있다(1061호 커버스토리 참조). 1년에 6만3000여건씩 차단 조치(2013년)라는 ‘격무’에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것은 방심위 자신이 아닐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