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대통령 위에 비서실장?](https://img.khan.co.kr/newsmaker/1079/20140602_82.jpg)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50일이 다 돼 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직 실종자 16명은 수습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 800여만건의 트위터 블로그 문서 심리 연관어 1위는 ‘슬픔’이 아니라 ‘분노’다.
슬픔보다도 분노가 더 큰 건 이것이 단순 재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선장에 의한 1차 침몰과 정부의 구조과정에서 나온 2차 침몰, 일부 정치인·종교인·언론인 등의 막말이 낳은 3차 침몰이 진행 중이다. 분노와 함께 던져진 핵심 질문은 이렇다. “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나?”
유족들의 갈급한 요구는 진상규명이다. 아이들은 침몰 이후에도 한동안 살아 있었다. ‘바다로부터 온 메시지’는 너무 아파 전파하기조차 꺼려질 정도다. 국민들은 무기력하게 아이들의 죽음을 생중계로 지켜본 셈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응답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대통령의 눈물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어떤 대안도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일부 희생자 이름을 언급하며 흘린 눈물은 또렷이 기억한다.
2011년 초 애리조나 총기사건 추모연설에서 사건으로 숨진 8살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며 51초간 침묵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생각났던 대목이기도 하다. 침묵을 끝내고 겨우 입을 연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물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해임하는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 팽목항에서 수모를 당하고 눈물 사과를 하는 동안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사람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정조사에서 김기춘 실장의 증인채택을 막기 위해 희생자 가족들의 애타는 절규조차 외면해 왔다. 유족들이 국회에 가서 쪽잠을 자고 시위를 한 이후에야, 방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김기춘 증인채택에 겨우 합의했다는 뉴스가 떴다. 여당이 먼저 나서서 퇴진을 요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호위무사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하면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문제로 낙마한 5월 28일과 29일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가운데 하나가 김기춘 실장이다. 이틀 동안에만 5만건이 넘는다. 그리고 ‘김기춘’을 언급한 문서 전체 연관어 1위가 ‘분노’다. 빅데이터 분석 3년 동안 특정 인물에 대한 전체 연관어 1위가 ‘분노’인 것은 처음 목격한다.
정녕 김기춘 비서실장은 대통령 위에 있는가? 이쯤 되면,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자진사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정부가 잘하길 바라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서 “만약 성공의 비결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줄 아는 데에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던 시절엔 국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깊이 있게, 직관적으로’ 희생자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51초 오바마의 침묵’이 그랬던 것처럼.
p.s.: 이 글이 실린 잡지가 나오기 전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물러남으로써 이 글이 쓸모없는 구문이 되어 있길 간절히 바란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