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면 빵집을 찾습니다. 시골 친구가 빵집에서 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와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와 함께 놀다가 금방 구운 팥빵을 얻어먹었습니다. 케이크에서 잘려 나온 자투리 빵에다 생크림을 발라 먹기도 했습니다. 빵을 제대로 사먹을 수 없었던 시절,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친구의 빵집에서 팥빵을 삽니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먹음직스런 빵이 손님들을 유혹하지만 아무런 장식이 없는 팥빵이 가장 맛있습니다. 친구는 넋두리합니다. 시골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 옛날같지 않다고 합니다. 멋진 인테리어와 갖가지 보기 좋은 빵이 시골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게다가 시골 빵집은 프랜차이즈 빵집과는 원가 승부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섬처럼 도시와 연결되지 않았던 옛날, 친구의 빵집이 읍내에서 유일한 빵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습니다. 시골 읍내는 도시와 4차선 국도로 연결됐습니다. 경제성이 있다고 하면 온갖 프랜차이즈가 시골에도 손을 뻗습니다. 조그만 시골 빵집이 거대한 공룡과 같은 프랜차이즈 빵집과 맞설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한·미 FTA가 발효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말 출범한 종합편성 채널이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신문업계에서는 메이저로 군림하지만 방송업계에서는 마이너인 종편의 시청률이 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굴욕’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종편이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품질 여부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MBC <해를 품은 달>의 시청률이 40%를 육박한다고, <해품달>의 40분의 1도 안 되는 품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 종편의 하루 모든 시청률을 끌어모아도 <해품달> 하나의 시청률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종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종편의 미미한 시청률이 어쩌면 메이저 언론사들에게 동네 빵집의 설움을 진정으로 알게 해주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메이저 언론사들이 총선을 앞두고 한·미 FTA ‘대공세’에 나서는 것을 보면 아직 마이너의 설움을 알기에는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저 언론사는 신문시장처럼 동네 빵집이 거대 공룡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동네 빵집의 빵이 맛이 없다고 치부해버릴 것입니다. 어쩌다 한 동네 빵집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마치 ‘영웅’처럼 대접하며 ‘이런 사례가 있다’고 신문에 화려하게 소개할 것입니다.
어쩌면 종편은 이런 영웅이 되기를 꿈꾼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세상은 거대한 공룡 앞에서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재벌그룹이 아니라면 거대 다국적회사에 맞설 중소기업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기껏해야 가족 몇 사람이 농사를 짓는 농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미 FTA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사담이라며 “한·미 FTA를 시작한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문가가 했던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돕니다. “FTA를 굳이 해야 한다면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할 것이 한·미 FTA입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