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주 정부의 보건담당 부처 국장 토머스는 주 의회가 노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주 정부 산하의 보건· 복지기구를 통합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기존 기관과 프로그램을 한데 묶는 책임을 진 실무관리자다. 다양한 주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시민과 이익단체들의 이해가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마다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토머스는 팀원들과 함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프로젝트관리 매뉴얼에 수록되어 있는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지침에 따라 이미 정부기관들을 포함해서 이해당사자의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에 대한 분석을 끝냈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집단들의 기대를 채워주고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는 한·미 FTA와 같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위한 매뉴얼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있다면 그 안에는 부처간 이견을 해소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의혹과 우려,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한 정보를 주고 설득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관한 내용은 있는지?
2월 3일 한·미 FTA 협상 공식 선언 이후 60~70%에 이르던 찬성여론이 6월 13일 조사에서는 찬성 44.9%, 반대 46.6%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더니 7월 13일 조사에서는 급기야 반대 의견이 62%, 찬성 33.2로 찬반이 역전되었다. 대다수 국민은 필자처럼 한·미 FTA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수입시장 규모만도 1조7000억 원에 이르는 미국과 FTA를 맺는 것은 미국이 아닌 한국을 위한 선택”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하지만 불과 5개월 사이에 한·미 FTA 체결이 “미국의 거대 자본이 허약한 국내시장을 침탈하게 되고 우리 경제는 제2의 IMF 위기 같은 고통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에 국민들은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찬반이 역전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양한 이해집단이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FTA 전반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은커녕 그동안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이 국익에 도움이 되니 따라라’는 독선적인 자세로 국민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홍보와 정보만 쏟아 부었다. 오죽했으면 언론학자와 광고전문가들이 정부의 FTA 정책홍보와 광고가 도를 넘는 일방적인 프로파간다 수준이라고 비판했을까 .
국무총리와 장관들조차 서로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였다. FTA 홍보 책임을 맡고 있는 국정홍보처는 반 FTA 세력이 제기한 의혹을 잠재우기에 급급할 뿐만 아니라, 잦은 헛발질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FTA를 관리하는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비해 한·미 FTA저지 대국민운동본부는 훨씬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다. 정부의 2월 본격적인 협상 추진에 대응하여 3월에 이미 한·미 FTA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업계와 시민단체의 대표들로 한·미 FTA저지 대국민운동본부가 구성되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분산될 수 있는 집단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한·미 FTA에 대하여 잘 모르는 다수의 시민들을 상대로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다. 힘을 하나로 모은 한·미 FTA저지 대국민운동본부는 국민 다수가 관심을 갖는 각종 이슈를 선점하고 눈높이에 맞춘 정보와 메시지를 만들어 만화와 인터넷, 시위 등을 포함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하여 전달함으로써 반대 논리가 국민들에게 쉽게 먹혀들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이 한·미 FTA 체결 반대론자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7월에 들어서야 정부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실상과 정보를 제공하고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각계의 여론수렴과 건전한 토론을 유도한다”는 거창한(?) 목적을 지닌 ‘한-미 FTA체결지원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을 하듯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미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열될 대로 분열된 이 후에 한-미 FTA체결 지원위가 구성된 것은 여름에 씨를 부리는 격이 아닌지 우려된다.
황상재<한양대 신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