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과일 리치, 아랫배 체기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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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로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이 현지 과일을 찾는다. 두툼한 빨간 껍질 속 달콤한 향이 그득한 하얀색 과육의 망고스틴. 도깨비방망이 같은 생김새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도 특유의 향과 크림 같은 식감에 마니아가 적지 않은 두리안. 자르면 영락없는 별 모양이 되는 스타푸르트와 붉은 용 비늘이 붙어 있는 듯한 용과(드래곤프루트)나 노란 개구리알같이 생긴 씨앗이 오독오독 씹히는 패션프루츠 등 다양한 열대 과일을 맛보는 것이 동남아 관광의 또 하나 재미다. 이 가운데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인기가 많아 통조림으로도 유통되는 과일이 있다. 바로 리치다.

리치는 중국 남부 원산으로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재배된다. 당도가 높고, 향기가 나서 중국 고대부터 귀하게 여겼다. 당나라 때 양귀비가 화남에서 장안까지 빠른 말로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리치는 중국 남부 원산으로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재배된다. 당도가 높고, 향기가 나서 중국 고대부터 귀하게 여겼다. 당나라 때 양귀비가 화남에서 장안까지 빠른 말로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리치의 한약재 명은 ‘여지’다. 무환자나뭇과에 속한 낙엽 또는 상록교목인 여지의 성숙한 종자로 여름에 성숙한 과실을 채취해 껍질과 씨앗을 제거하고 그 과육만을 건조해 쓴다. 중국의 광둥·광시 등지에서 많이 생산한다. <동의보감>에 여지라는 약명에 대한 어원이 나와 있는데 “열매가 맺혔을 때 가지는 연약해도 꼭지가 단단해서 손으로는 따지 못하고 칼이나 도끼로 그 가지를 쳐서 자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기(疝氣)라 하여 생식기 주변부터 아랫배를 걸쳐 배꼽 심지어 명치까지 뻗치는 듯한 통증에 사용된다. 오로지 아랫배에 차갑게 뭉친 체기(滯氣)가 생기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본초학에서는 ‘이기약(理氣藥)’에 속한다. 보통 동남아에서는 더운 날씨에 옷도 가볍고 얼음과 같은 찬 음식을 즐겨먹기에 겉은 뜨거울지 몰라도 속은 냉한 경우가 많다. 여행을 갔을 때 아랫배가 아프면서 속이 차갑다고 느껴지면 리치를 챙겨먹으면 도움이 된다.

리치 때문에 한동안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동남아와 중국 등지에서 덜 익은 리치를 먹은 아이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리치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히포글리신과 MCPG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포도당 합성과 지방의 베타산화를 방해해 저혈당증 뇌병증을 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덜 익은 리치의 경우 2, 3배나 높고 이로 인해 구토·의식불명·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는 덜 익은 리치 섭취를 금하고, 공복에는 특히 주의하라고 했다. 성인은 하루 10개, 어린이는 한 번에 5개 이상 섭취하지 말리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동의보감>에도 언급되어 있다. “많이 먹으면 열이 나는데 꿀물을 많이 마시면 풀린다”는 것이다. 저혈당증이 왔을 때 급히 단것을 섭취하게 하는 것과 상응하는 대목이다.

권혜진 원장

권혜진 원장

이런 리치와 종종 헷갈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용안(龍眼)’이다. 속은 똑같이 생기고 맛도 비슷하지만 껍질과 씨앗 형태가 다르다. 여지는 씨앗 겉에 껍질이 있고, 용안은 매끈한 씨앗을 가지고 있다. 무환자나뭇과에 속한 상록교목인 용안나무의 과실로 ‘보익약(補益藥)’에 속한다. 막힌 걸 뚫는 여지와 다르게 심장과 비장을 보해 혈액을 자양하고 정신을 안정시킨다. 실제로 한의원에서는 리치보다는 용안육을 많이 쓴다. 대추와 함께 끓이면 신경성 심계항진증에도 효과가 좋다. 맛이 참 달아 아이들도 잘 먹는 편인데, 특히 입이 짧거나 성장이 느리면서 불안한 아이들의 간식으로 추천한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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