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설계]사랑하는 이에게 성병 감염이 된다면](https://img.khan.co.kr/newsmaker/1271/1271_67.jpg)
오래전에 할아버지가 각종 성병을 옮기는 바람에 젊은 시절 안 앓아본 성병이 없었던 할머니 한 분이 매해 ‘종교의식처럼’ 병원을 찾아 성병검사와 항생제 처방을 달라고 떼를 쓰시는 바람에 아주 난감했던 적이 있다. 매독, 임질, 사면발니 등 온갖 질환에 늘 약국,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고열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으며 후유증으로 허리와 골반이 항상 아프다고 하셨다.
너무 심하게 염증을 앓다보니 50대에 자궁을 적출했는데 정확한 병명조차 모르셨다. 너무 아파서 적출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성병이 불치의 병이고 여전히 성병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젊은 시절 한참 고생할 때 출산한 두 딸도 매독, 임질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도 하루에도 몇 번씩 뒷물을 하고 매번 검사를 받으러 오지만 결과는 항상 깨끗하다. 오히려 너무 씻어대다보니 곰팡이 질염이 생기기도 한다.
두 딸의 속옷을 매번 검사하니 딸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딸들의 속옷을 검사하여 분비물이 조금 묻어 있기만 하면 병원에 와서 딸들의 약을 달라고 조르셨다. 아예 딸들을 병원에 데리고 와서 반강제로 검사를 시킨 적도 있었다. 매년 잘 설명을 드리고 안심시켜드리니 내원 빈도가 줄다가 어느 순간 병원에 오질 않으시자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진다.
문득 이 할머니가 생각난 이유는, ‘자신은 유레아플라즈마 골반염이 낫지 않는다’고 믿는 H 여사 때문이다. 그녀는 오래전 감염 후 크게 고생하고 내성으로 치료가 길어졌으나 이후 균 음성을 확인하고 통증, 빈뇨 등 동반증상도 호전인데 분비물만 늘어나면 유레아플라즈마 재발이라고 생각한다. 균이 검출이 되지 않음을 정밀검사를 해서 알려줘도 믿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또 검사를 하는 듯했다.
심한 증상을 유발한 남편을 원망하며 2년 전부터는 부부관계도 안하고 있다.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다가 최근 불안증으로 정신과 약제의 도움을 받기에까지 이르렀고, 다시 ‘유레아플라즈마 포비아(공포)’가 시작되었다.
남녀가 만나 서로 위로와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와 증오를 남기기도 한다. 성병이 전염되어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정상적인 의식을 좀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면서 성관계로 인한 질병을 넘겨주어 배신감에 상대를 아프게 하지 말자.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글·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