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금연에 실패하거나 애초에 금연 의지가 없는 흡연자들에게 덜 유해한 흡연 대체재를 제공해 건강 위해성을 줄이는 담배 위해성 감소 정책이 필요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 담배연기포집실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분의 분석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연합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국내 시판 중인 궐련형 전자담배(일명 증기담배)의 유해성분을 자체 분석한 결과를 지난 6월 발표한 이후, 보다 덜 해로운 담배를 피워보겠다는 ‘준금연’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둘러싸고 ‘더 안전한 담배는 없다’는 주장과 ‘독성 및 유해성이 대폭 감소한 제품’이라는 주장이 식약처 발표에도 불구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비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의 최신 연구결과, 원래 담배를 피우던 심근경색 환자 44%가 치료를 받고도 담배를 못 끊었으며 이로 인해 사망위험이 1.6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15갑년(1년간 하루 평균 한 갑씩 흡연했을 때 1갑년) 이상 흡연을 해온 30대 중반의 직장인 ㄱ씨는 지난해 가을 궐련형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주변에서 피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호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에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스스로도 궐련형 전자담배에 만족했다. 하지만 ㄱ씨는 식약처의 유해성분 분석 발표 이후 궐련형 전자담배와 함께 일반 담배를 다시 갖고 다닌다.
40대 후반의 자영업자 ㄴ씨는 20갑년 이상 담배를 피웠고, 그 역시 몇 차례나 금연에 도전했지만 얼마 못가 계속 실패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출시는 그에게 ‘구원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ㄴ씨 또한 식약처의 발표 이후 다시 일반 담배를 피우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1년 만에 흡연의 ‘역주행’을 한 셈이다.
궐련형 전자담배-끊기 어렵다면 덜 해로운 담배로 유도를](https://img.khan.co.kr/newsmaker/1293/1293_59.jpg)
일방적 금연 아닌 ‘위해성’ 감소정책
담배에 불을 붙이고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대부분의 결론은 흡연이 암이나 심·뇌혈관질환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보건당국이 금연정책을 강화하고 흡연자를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도 2017년부터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삽입하는 등 금연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흡연자들이 완전히 담배를 끊도록 유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연간 1000억~1500억원의 예산을 몇 년간 투입했으나 흡연율 저하는 거의 답보상태에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여러 선진국에서 대안으로 펼치고 있는 담배 위해성 감소(Tobacco Harm Reduction)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금연에 실패하거나 애초에 금연 의지가 없는 흡연자들에게 덜 유해한 흡연 대체재를 제공해 건강 위해성을 줄이는 전략이다.
영국의 경우 적극적인 금연 치료를 유도하는 동시에 담배 제품의 위해성에 따라 차별적인 규제를 적용한다. 특히 담배 위해성 감소 전략의 한 대안으로 전자담배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영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는 전자담배 보고서를 통해 ‘일반 담배보다 95% 덜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전자담배가 금연 도구로서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영국 정부에 의료허가를 받은 전자담배 제품을 금연 치료 대안으로 편입시켰을 때 예상되는 효과를 검토하고,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자담배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궐련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전자담배 제품의 건강 영향에 대해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제언을 빼놓지 않았다.
유해성 낮은 담배제품 활용 모색을
미국 역시 최근 흡연 규제정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했다. 작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담배통제센터는 덜 해로운 담배제품의 혁신성과 혜택에 대해 인정하고 해당 제품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정책이 필요함을 밝혔다. 스콧 고틀리브 FDA 국장은 “더 많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거나 잠재적으로 덜 해로운 담배제품으로 전환하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궐련형 전자담배를 비롯한 전자담배들에서 유해성분이 감소되었지만 이것이 질병 발생률과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편으로 강조했다.
캐나다 보건당국 역시 2025년까지 담배 사용량을 5% 미만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흡연자에게 끊기만을 강요하는 기존의 담배 규제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금연 프로그램 지원과 더불어 위해성이 저감된 제품을 활용하는 방안, 전자담배로의 전환을 장려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원조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 등 담배업계가 수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세계적인 담배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규제환경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이미 판매되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분은 일반 담배 대비 평균 9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와 있다.
흡연자에게 ‘금연 아니면 죽음’이라는 식의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금연정책과 흡연 규제를 실시하게 된다면 ‘덜 유해한 담배 대체재’의 설 땅이 좁아진다. 실제 식약처의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결과 발표 이후,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가 다시 ’일반 담배로 전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금연이 최선이지만 금연에 실패하는 사람들에게는 차선의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궐련형 전자담배 출시 이후 불거진 ‘유해성 감소’ 관련 논란은 국내외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식약처 발표 이후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려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결과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
<박효순 경향신문 의료전문기자 anyto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