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종주국도 한국 야구에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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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6일 트위터에 “우리의 프로야구 개막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스포츠가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국민에게 희망이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야구를 향한 세계적 주목은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프로스포츠가 열리는 거의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앞서 개막한 대만 프로야구보다 더 큰 관심이 쏠린 이유가 있다. 야구 종주국 미국에 ESPN을 통해 생중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구 갈증에 목마른 미국 팬들이 한국 야구, KBO리그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 타일러 살라디노가 지난 5월 1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2회초 도루를 하다가 태그아웃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삼성 라이온즈 타일러 살라디노가 지난 5월 1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2회초 도루를 하다가 태그아웃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KBO리그는 지난 5월 4일 미국의 ESPN과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한국에서 제작된 중계방송 영상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국의 캐스터와 해설자가 음성을 입혀 미 전역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된 가운데 ESPN이 먼저 KBO리그 중계에 관심을 나타냈다. KBO리그 해외 판권을 보유한 에이클라에 접촉했고, 중계권 계약 합의에 이르게 됐다.

‘빠던’에 이목 집중

SPOTV를 소유한 에이클라는 SPOTV가 중계하는 경기를 ESPN에 보낸다. 하루 한 경기씩, 1주일에 6경기를 편성한다. KBO리그 중계를 위해 ESPN의 대표 프로그램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자들이 동원된다.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자인 칼 래비치·존 시암비 등이 캐스터를 맡고 메이저리거 출신 에두아르도 페레스와 미국 첫 야구 여성 해설위원 제시카 멘도사 등이 해설을 한다.

첫날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 야구의 최고 히트 상품은 역시 ‘빠던(빠따 던지기의 줄임말. 홈런을 때린 뒤 방망이를 날려 보내는 동작)’이다. 미국에서 ‘배트 플립’이라고 부르는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투수를 도발한다는 뜻에서 금기시되던 동작이다. 과한 배트 플립은 위협구를 불러오곤 했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 앞서 빠던 습관을 고쳤다.

한국은 달랐다. 화려한 ‘빠던’이 오히려 볼거리다. ESPN은 지난 5월 5일 대구 삼성-NC전을 중계했다. 현지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심각해 스튜디오 중계가 불가능했다. 캐스터 칼 래비치와 메이저리거 출신인 에두아르도 페레스 해설위원이 각자 집에서 화상회의 방식으로 경기를 설명했다. KBO리그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리그 운영 방식, 미국 메이저리그와의 차이 등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ESPN 중계진이 크게 흥분한 것은 6회 연속타자 홈런이 나왔을 때다. 앞서 4회 NC 나성범이 홈런을 쳤을 때는 선수가 폴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지켜보느라 중계진이 기대했던 ‘빠던’ 동작을 하지 않았다. 6회초 NC 박석민의 홈런이 나왔을 때 래비치와 페레스 모두 “빠던이 나왔나요?”라며 리플레이 화면을 지켜봤지만, 박석민 역시 특별한 동작을 하지 않았다.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한 중계진은 “빠던이 없었다”며 크게 아쉬워했다.

객원해설로 참가한 다니엘 김이 “박석민은 KBO리그에서 가장 재미있는 선수니까 앞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할 때, 마침내 ‘빠던’이 나왔다. 다음 타자 모창민이 삼성 백정현으로부터 좌월 홈런을 때렸고, 스윙 동작 마무리 때 호쾌하게 방망이를 날렸다. ESPN 중계진은 “드디어 한국의 빠던이 나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가 끝난 뒤 모창민은 덤덤하게 “(ESPN 중계를)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 항상 그런 배트 플립(빠던)을 해왔다”고 말했다.

첫날 중계 이후 KBO리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코로나19로 메이저리그가 멈춘 가운데 미국 야구 팬들의 야구 갈증을 해소해 준 것은 물론,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한국 야구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KT가 개막전에서 선보인 야구공 모양 풍선 속 소년이 홈 플레이트까지 걸어간 ‘버블 언택트 시구’는 메이저리그 팬들로부터 ‘신기하고 참신한 시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KBO리그 심판들의 화려한 삼진 시그니처 콜 동작도 화제가 됐다. KBO 이영재 심판 위원의 주먹을 바닥에 내리꽂는 삼진 콜은 “미국 프로레슬링 보는 것 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미국 팬들도 뜨겁게 달아올라

가장 화제가 된 KBO리그 팀은 단연 NC 다이노스였다. 개막전 ESPN 중계를 시작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NC가 ‘North Carolina’의 약자라는 자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구단 마스코트인 공룡이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점도 호응의 연결고리가 됐다. 마이클 조던 등을 배출한 지역이지만 주요 스포츠 프로구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프로야구 트리플A팀인 더럼 불스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이제 NC를 응원한다”고 선언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로이 쿠퍼 역시 NC팬이 됐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NC 역시 구단 영상에서 ‘누구나 가슴속에 NC 하나쯤은 품고 있지 않나요?’라며 노스캐롤라이나 팬들의 응원에 화답했다. NC 마스코트 중 한 명인 ‘쎄리’는 ‘지도에서 노스캐롤라이나가 어디 있냐’는 질문에 미국 지도 대신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심지어 중계영상 댓글창 등에서 한국팬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한 ‘인터넷 야구 은어 모음’ 교육자료도 만들어졌다. ‘ㅜㅜ’는 sad로, ‘까비’ 또는 ‘ㄲㅂ’는 ‘that was close’로 ‘ㄷㄷㄷ’은 scared, amazed로 번역됐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어슬레틱>은 5월 8일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팬들에게 맞춤형으로 KBO리그 응원팀을 추천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 기세등등한 롯데는 피츠버그·신시내티·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추천됐다. 피츠버그와 신시내티는 똑같은 이유였다. 메이저리그 초기부터 오랫동안 있던 팀, 예전에 아주 인기가 많았던 팀 그리고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닷가, 갈매기 그리고 팀 이름 ‘자이언츠’가 결정적이다.

LG는 클리블랜드·뉴욕 메츠·미네소타 등과 어울린다. 뉴욕 메츠는 ‘잠실 라이벌’이 공통점, 최근 이웃팀에게 성적과 인기에서 조금 밀린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꼽혔다. 미네소타는 이름이 트윈스니까 당연한 결정이다. KIA는 메이저리그 최다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세인트루이스·디트로이트가 꼽혔다. 세인트루이스와는 우승 횟수가 11번으로 똑같다. 디트로이트는 팀 이름이 ‘타이거즈’로 같다.

5월 12일 경기에서 드디어 NC 박석민이 미국 팬들에게 소환됐다. 박석민은 KT와의 경기 연장 끝내기 홈런을 때렸는데, 이때 ‘빠던’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넘기는 ‘무릎 꿇기 홈런’을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보여준 아드리안 벨트레와 비교됐고, 과거 박석민이 보여준 ‘트리플 악셀 홈런’, ‘비하인드 백패스 빠던’ 등이 무더기로 소환됐다. MLB.com은 아예 박석민의 여러 장면을 모은 특집 기사를 작성했다.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이 기회에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5월 13일 잠실 LG-SK전이 ESPN으로 중계됐는데, 실책이 쏟아지는 등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ESPN 중계진은 “아쉬운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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