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안함과 심적 부담 극복 ‘만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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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넘어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안타깝게도 그 사고를 일으킨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손흥민(27·토트넘)이다. 손흥민이 11월 4일 영국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과의 원정경기에서 백태클을 시도하다 상대 선수와 자신 모두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손흥민이 11월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19~2020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득점을 터뜨린 뒤 최근 자신이 큰 부상을 입힌 안드레 고메스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기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베오그라드 | 로이터 연합뉴스

손흥민이 11월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19~2020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득점을 터뜨린 뒤 최근 자신이 큰 부상을 입힌 안드레 고메스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기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베오그라드 | 로이터 연합뉴스

눈물 쏟아낸 백태클

비극은 토트넘이 1:0으로 앞선 후반 33분 일어났다. 이날 팀 동료 델레 알리의 선제골을 도운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안드레 고메스(26)의 공을 뺏기 위해 뒤쪽에서 태클을 시도한 게 화근이었다.

손흥민의 태클에 균형을 잃어버린 고메스가 넘어지면서 토트넘 세르주 오리에와 부딪쳤다. 고메스는 그라운드에 쓰러져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오른쪽 발목이 부러져 완전히 돌아간 끔찍한 부상. 너무 참혹한 상황인지라 스포츠 중계의 기본인 리플레이 화면조차 부상 직전에 멈출 정도였다. 영국 BBC 방송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에서도 멀리서 잡은 화면으로 고메스가 다친 상황의 윤곽만 설명할 뿐 부상 장면은 편집했다.

대신 손흥민이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손흥민은 처음 경고만 받았지만 비디오 판독(VAR)을 거친 뒤 퇴장 지시를 받았다. 손흥민에게는 지난 시즌 37라운드 본머스전에 이은 프리미어리그 통산 두 번째 퇴장이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자신이 퇴장을 당한 것에 반응할 틈도 없이 눈물만 쏟았다. 자신의 태클이 빚어낸 비극에 충격을 받은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에버턴 선수들의 위로를 받았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골키퍼인 조던 픽퍼드와 공격수 센크 토순(이상 에버턴)은 손흥민의 머리와 등을 두드려주었다. 알리는 “손흥민은 라커룸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고 전했다.

손흥민을 더욱 슬프게 만든 것은 이날 태클이 보복성 플레이로 보일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백태클을 시도하기 2분 전 고메스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영국 일간 <메트로>는 “손흥민이 보복성 태클을 시도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그라운드를 누빈 양팀 선수들은 손흥민의 태클에 고의성이 없다고 맞섰다. 에버턴 주장인 시무스 콜먼이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난 직후 몇몇 선수들과 함께 토트넘 라커룸을 방문해 “네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며 손흥민을 위로한 것이 대표적이다. 콜먼은 2017년 3월 아일랜드 대표팀 경기 도중 오른쪽 종아리뼈와 정강이뼈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 마르코 실바 에버턴 감독도 “손흥민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나쁜 의도로 태클을 한 건 아니라고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끔찍한 부상과는 별개로 영국 축구계에선 손흥민의 퇴장을 놓고 반박 여론도 일어났다. 리버풀 레전드이자 스카이스포츠 해설자인 제이미 캐러거는 “불운한 사고였지만 의도적인 반칙은 아니었다. 레드카드까지 줄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도 “사후 발생한 그런 문제를 일으킬 의도가 손흥민에게 전혀 없었다는 건 명백하다”면서 “레드카드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의 퇴장 징계를 취소했다.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이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에버턴전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이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에버턴전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힐링 프로그램이 필요해

고메스는 손흥민의 태클에 큰 부상을 당했지만 무사히 수술을 받고 회복을 시작했다. 에버턴 구단은 다음날인 11월 5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메스의 오른쪽 발목 골절상 수술이 잘 진행됐다”며 “병원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보낸 뒤 훈련장으로 복귀해 재활에 나설 예정이다. 고메스는 완벽히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발목이 부러진 경우 최소 3개월에서 최대 8개월까지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고메스는 그나마 관절에서 먼 쪽을 다쳤기에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그라운드에 돌아올 것이라는 게 현지 반응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손흥민이 정신적인 충격에서 극복할 차례라고 말한다. 손흥민이 그동안 그라운드 안팎에서 늘 성실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플레이했기에 더 큰 충격에 시달리고 있어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스포츠 심리상담 전문가인 강성구 중앙대 교수는 “선수의 부상은 당한 사람이나 입힌 가해자나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특히 이번처럼 가해자의 입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선수를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면 일단 크나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특성 불안을 야기시키고 나아가서는 공포나 트라우마로 전이되는 경우가 일부 사례에서 나타난다”고 우려했다. 손흥민이 경기에서 이런 유사한 상황에 놓일 때 소극적이 되거나 심각한 활동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번 일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손흥민을 돕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벤투 감독은 “축구 경기를 하다보면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내가 아는 손흥민은 악의적인 마음으로 그런 태클을 할 선수가 절대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아울러 “선수 자신도 그렇고 이와 관련된 상황을 맞은 모든 선수가 잘 극복해서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도 최대한 손흥민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손흥민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손흥민은 바로 다음 경기였던 11월 7일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2019~2020 유럽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렸다. 그는 후반 12분 차범근 전 감독이 갖고 있는 한국인 통산 유럽무대 최다골(121골)을 넘어서는 득점을 터뜨린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두 손을 모으는 기도 세리머니로 고메스에 사과했다.

손흥민은 “나는 여전히 이번 사고와 상황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과 친구들, 동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았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팀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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