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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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뛰기를 바라는 꿈의 경연장이다. 해마다 열리지만 아무나 밟을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유럽 명문 구단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들조차 평생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숱하다.

그런 면에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 첫 우승에 도전하는 손흥민(27·토트넘)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 입단한 그가 입단 4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는 사실을 공인받을 기회를 잡았다. 손흥민은 6월 2일 스페인 마드리드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리는 2018~2019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과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커다란 귀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생긴 별명)를 놓고 다툰다.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토트넘의 손흥민이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토트넘의 손흥민이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무관은 끝… 손흥민의 첫 대관식

손흥민의 커리어는 화려함 그 자체다. 유럽 무대에 데뷔한 후 9년 동안 쏟아낸 득점만 116골. 최근 두 시즌에는 20골 이상을 꾸준히 기록해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다툴 라이벌인 리버풀의 수비수 버질 판 다이크가 수상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 최종 후보 6인에서 손흥민이 제외된 것이 논란이 됐을 정도다. 자연스레 손흥민의 몸값도 치솟으면서 토트넘 입단 당시 기록한 이적료(3000만 유로·약 393억원) 가치가 3배를 훌쩍 넘는 1억 유로(약 1329억원)에 도달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런 손흥민의 가치에 방점을 찍을 계기가 바로 빅이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은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흔한 컵대회 우승조차 경험이 없는 그는 국가대표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유일한 우승이었다. 그가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인 차범근 전 감독이나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전 유스전략본부장의 활약상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2%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 대목이다. 차 감독은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을 두 차례나 들어 올렸고, 박지성은 에인트호번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유럽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무려 17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손흥민이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차 감독은 현역 시절 유럽챔피언스리그는 우승팀만 출전할 수 있었던 터라 뛰어보지도 못했다. 박지성도 총 세 번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경험했으나 정작 첼시를 꺾고 우승한 2008년에는 출전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못해 관중석에서 지켜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자 참혹했던 순간이었다. 박지성이 결승전에 출전한 2009년과 2010년에는 당대 최강인 바르셀로나의 벽을 넘지 못해 연거푸 준우승에 그쳤다. 한마디로 손흥민이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면서 우승까지 한다면 한국 선수로는 첫 사례가 된다.

최대의 관심사는 손흥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장 여부에 쏠린다. 최근 활약상을 본다면 부상이 없는 이상 선발이 유력하지만, 부상으로 잠시 팀을 떠났던 주포 해리 케인이 복귀를 앞두고 있는 것이 변수다. 또 루카스 모라가 최고 고비였던 4강 2차전에서 해트트릭(3골)을 달성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어 세 선수의 조합과 전술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손흥민 우승시 한국 선수 첫 사례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채 해설가로 활동 중인 조제 무리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케인의 부상 복귀와 모라의 최근 상승세를 감안하면 손흥민이 선발이 아닌 벤치로 희생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반면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은 “모든 결정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에게 달렸다”고 전제하면서도 “손흥민은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선발이고, 케인이 조커로 뛸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손흥민은 결승에 대비해 재개된 5월 18일 소속팀의 훈련에 정상적으로 참가한 반면 케인은 재활에 힘을 기울이느라 빠졌다는 점에서 후자의 발언에 더 힘이 실린다. 결승전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홍보물에서도 손흥민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를 주관하는 유럽축구연맹(UEFA)이 공개한 공식 포스터에는 손흥민이 팀 동료인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토비 알더베이럴트와 함께 토트넘의 대표선수로 등장했다.

손흥민은 선발? 교체?

오히려 손흥민이 어느 위치에서 뛰느냐에 따라 나머지 선수들의 출전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주로 왼쪽 날개로 뛰는 손흥민이지만, 케인의 부상으로 최전방에서 뛰는 경우도 적잖았다. 또 섀도 스트라이커나 오른쪽 날개, 그리고 실패로 끝났지만 스리백에 따른 윙백을 맡은 경험도 있다.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를 감안하면 원톱 또는 투톱으로 공격을 이끌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손흥민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8강 1차전에서 1골, 2차전 2골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토트넘 출신으로 이번 결승전의 해설을 맡은 이영표 SPOTV 해설위원은 “축구는 리듬과 감각이 중요하다”며 “모라와 손흥민이 좋은 활약을 펼쳤기에 결승전에서도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보다는 우승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버풀은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 0-3으로 완패했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4-0 뒤집기에 성공하면서 2005년 이후 1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리버풀은 2005년에도 이탈리아 강호 AC밀란에 0-3으로 끌려가다 후반전 극적인 3-3 동점을 만든 뒤 승부차기 끝에 우승한 ‘이스탄불의 기적’을 썼던 팀이다. 올해는 당시보다 더 탄탄한 전력을 갖춘 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손흥민의 설명이다. 손흥민은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며 “패배하면 긴 시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기에 리버풀이라는 강한 팀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포체티노, 토트넘 남을까. 떠날까.

유럽 정상 도전을 앞두고 있는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47)의 거취문제가 고민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유럽 정상권 구단들과 비교해 부족한 투자에도 토트넘을 강팀으로 바꿔놓은 지도자로 올 여름 새로운 팀의 지휘봉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5월 23일 파비오 파라티치 유벤투스 단장이 포체티노 감독의 대리인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유벤투스는 최근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과의 결별을 선언한 가운데 새 감독 후보로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과 포체티노 감독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 남는다”고 선언한 것과 달리 포체티노 감독은 이별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점에서 그가 유벤투스의 사령탑에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포체티노 감독은 아약스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만약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다면 5년간의 토트넘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갈 수도 있다”며 “농담이 아니라 토트넘이 우승하면 미래를 위해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실제 토트넘이 아약스를 꺾고 결승에 오르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포체티노 감독은 ‘정말 떠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일단 지켜보자”고 선을 그었으나 올여름에는 다른 구단의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포체티노 감독은 유벤투스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역설적으로 토트넘의 빈약한 투자가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EPL 중위권 팀들도 1억 파운드(약 1508억원)를 쓰는 시대. 그러나 토트넘은 지난해 여름과 지난겨울 이적시장에서 단 1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않았다. 남들이 돈을 쓸 때 거꾸로 무사 뎀벨레를 중국 광저우 푸리로 보내면서 1100만 파운드(약 166억원)를 챙겼다. 또 토트넘의 젊은 재능인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톱 레벨의 선수로 키워냈다.

토트넘도 포체티노 감독의 역량을 인정해 계약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했으나 각 구단의 관심이 쏟아지는 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쉽지 않다. 현지 언론은 포체티노 감독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팀이 위약금 4250만 파운드(약 650억원)를 감수하고서라도 지휘봉을 맡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의 향방은 애제자인 손흥민(27)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흥민은 2015년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에 입단한 이래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포체티노 감독이 떠날 경우 손흥민도 새로운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에이전트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수준의 팀들도 손흥민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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