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은 월드컵 6·7차전에 구자철에게 중책을 맡길 것으로 전망된다. 구자철은 A매치 56경기에 출전해 18골을 기록 중이다. 구자철은 지난해 9월 1일 중국과 홈 1차전에서도 쐐기골을 터트리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구자철(28·아우크스부르크)이 또 한 번 한국축구의 구세주가 될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축구대표팀은 2017년 운명의 5경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3월 23일 오후 8시35분 중국 창사에서 중국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을 치른다. 28일 오후 8시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홈 7차전을 펼친다.
이에 앞서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해 큰 고비를 넘고 한숨을 돌렸다.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구자철이 지난해 11월 1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에서 후반 40분 결승골을 터트려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구자철은 김신욱(29·전북)이 떨궈준 헤딩패스를 강력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만악 우즈베키스탄에 졌다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63·독일)은 경질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 구자철이 탄핵 위기에 몰렸던 슈틸리케 감독은 물론 한국축구를 구해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우즈베키스탄전 뒷이야기가 있다. 구자철은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종아리 통증을 참고 11.283㎞를 뛰었다. 경기 후 구자철은 종아리 근육이 파열돼 한 달간 재활을 했다. 주장 기성용(28·스완지시티) 역시 세 번째 발가락이 골절된 상태에서 진통제를 맞고 뛰는 투혼을 불살랐다. 경기 후 차두리 대표팀 전력분석관(37)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선수들 욕하면 나쁜 사람이야. 저렇게 90분간 열심히 뛰었는데”라고 말했다.
구자철 “6·7차전 승점 6점 따내야”
구자철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즈베키스탄전 선수들의 투혼에 대해 “국가대표의 숙명이자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자철의 아버지 구광회씨(57)는 24년간 공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가 2002년 의가사 제대했다. 총을 분해하다가 파편이 들어가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구광회씨는 틈날 때마다 아들에게 “국가대표는 국가를 위해 모든 걸 바쳐야 한다. 생명까지 걸려 있다고 생각해라. 나도 군대에 있을 때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사력을 다한다.
한국은 최종예선 A조 2위(3승1무1패·승점10)를 기록 중이다. 1위 이란(3승2무·승점11)에 승점 1점 뒤져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3승2패·승점9)에 승점 1점 차로 쫓기고 있다. 한국은 올해 남은 5경기에서 4승1패 또는 3승2무를 거두는 게 목표다. 그래야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직행권을 안정적으로 딸 수 있다.
그러나 악재가 생겼다. 손흥민(25·토트넘)이 중국과의 경기에 경고누적으로 뛸 수 없다. 이청용(29·크리스탈팰리스)과 석현준(26·데브레첸)은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성용은 무릎 부상 여파로 한 달간 재활하다가 2일에야 팀 훈련에 합류했다.
사실 구자철도 최종예선 출전이 불투명했다. 구자철은 지난달 5일 베르더 브레멘과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1골·1도움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발목을 다쳐 복귀까지 4주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구자철은 재활기간을 줄여 딱 1경기만 쉬고 복귀했다. 지난달 18일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며 어시스트까지 올렸다. 한 축구팬은 구자철과 철인을 합해 ‘구자철인’이라고 표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월드컵 6·7차전에 구자철에게 중책을 맡길 것으로 전망된다. 구자철은 공격과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구자철은 A매치 56경기에 출전해 18골을 기록 중이다. 구자철은 지난해 9월 1일 중국과 홈 1차전에서도 쐐기골을 터트리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월 아우크스부르크 전지훈련지인 스페인 마르베야를 찾아 구자철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만큼 신뢰가 두텁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손흥민이 중국전에 경고누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에서 구자철이 공격 쪽에서 팀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구자철 주위에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몇몇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 선수들을 데리고 중국의 수만 관중을 이겨내야 한다. 구자철은 경기 내적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선수들의 심리상태까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중국과 6차전, 시리아와 7차전을 모두 승리해 승점 6점을 가져오는 게 중요하다. 부담스러운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10차전(9월 5일)을 앞두고 승점을 최대한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만약 9회 연속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면 한국축구 전체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선수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 이체(ICE)를 타고 남동쪽으로 3시간20분을 가면 아우크스부르크에 다다른다. 기원전 15년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아우크스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2000년 역사를 지닌 이곳을 구자철이 아우‘쿠(Koo)’스부르크로 바꿔놓았다.
‘분유 파워’ 장착한 구자철
구자철은 2011-2012시즌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돼 5골을 터트리며 팀의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2-2013시즌에도 2부리그 강등을 막아냈다. 2012년 한 식당을 찾은 기자를 향해 독일인들은 ‘Koo’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구자철은 분데스리가에서 7시즌째 뛰고 있다. 153경기에 출전해 26골을 터트렸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에이전트 장민석 월스포츠 팀장은 “구자철은 노력으로 밑바닥부터 올라온 선수”라고 말했다. 구자철은 중 1때 키가 1m46cm에 불과했다. 그는 키를 키우기 위해 매일 아이스박스에 우유를 챙겨가 물 대신 마셨다. 현재 구자철의 키는 1m83㎝이다.
구자철은 서울 보인고 재학 시절 빈혈로 쓰러져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고교 시절 구자철은 빈혈약을 먹고 뛰면서도 보인고를 2006년 제주 백록기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인 2007년 K리그 제주에 입단했다. 그리곤 2010년 5골·12도움을 올려 중위권팀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5골)에 오른 구자철은 그해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를 거쳐 지난 시즌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인 500만 유로(약 66억원)에 다시 아우크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었다.
구자철은 “독일어도 사투리가 있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땐 알아듣기 힘들었다. 동료들과 비디오 축구게임을 하다 보니 독일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느새 독일에서만 11명의 감독님 밑에서 지도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솔직히 ‘축구를 즐겨라’라는 소리는 말이 안 된다. 이 곳에서는 힘들다고 말할 시간도 아깝다. 훈련장에 갈 때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난 절대 무너지지 않아’라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늘 팀에서 가장 느린 선수였던 구자철은 K리그 제주 시절 주력이 느린 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라산을 50번 넘게 오를 만큼 악바리다.
구자철은 ‘분유 파워’까지 장착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아이 분유값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뛴다. 2013년 6월 결혼한 구자철은 이듬해 3월 첫째아들, 지난해 10월 둘째딸을 얻었다.
구자철은 “지난해 3월 레버쿠젠과 경기를 앞두고 아내가 딸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는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며 “지난해 10월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 당일 득녀 소식을 들었다. 골을 터트린 뒤 ‘젖병 세리머니(엄지 손가락을 입에 무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제 책임질 가족이 세 명이니 더 열심히 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