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철 감독, ‘희생DNA’를 이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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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감독은 자신의 현역 시절 ‘희생DNA’를 리틀 태극전사들에게 이식했다. 그렇게 최 감독은 대표팀을 ‘이승우 원맨 팀’이 아닌 ‘원 팀’으로 만들어냈다. 달라진 이승우는 U-17월드컵에서 숨은 조연으로 변신했다.

“눈 위가 찢어졌는데 꿰맬 수 없었다. 봉합하려 하면 울고, 봉합하려 하면 또 울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축구대표팀 주치의였던 김현철 유나이티드 병원장(53)은 최진철 U-17 대표팀 감독(44)과 관련된 아픈 기억을 되짚었다. 중앙수비수였던 최진철은 독일월드컵 스위스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핏빛 투혼’을 펼쳤다.

그는 필리페 센데로스(30)와 헤딩 경합을 하다가 이마가 찢어졌지만 실점을 막지 못했다. 다친 부위가 조금만 더 옆이었다면 눈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뻔했다. 하지만 최진철은 피가 흐르는 이마를 붕대로 동여매고 끝까지 뛰었다. 최진철은 “최고참인 내가 골을 내줘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게 미안했다”고 눈물을 흘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했고 희생정신이 투철했다.

그 최진철이 감독이 되어 국제축구연맹(FIFA) 칠레 17세 이하(U-17) 월드컵에 나섰다. ‘최진철과 아이들’은 10월 29일 칠레 라 세레나에서 열린 16강에서 벨기에에 0-2로 패해 탈락했다. 아쉽지만, 박수 받을 만한 도전을 했다.

최진철 U-17 대표팀 감독이 10월 29일 칠레 라 세레나에서 열린 U-17 월드컵 16강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울고 있는 이승우를 달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최진철 U-17 대표팀 감독이 10월 29일 칠레 라 세레나에서 열린 U-17 월드컵 16강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울고 있는 이승우를 달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최진철호는 10월 18일 조별리그 1차전에서 브라질을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국축구 전 연령대를 통틀어 FIFA 주관대회에서 최초로 브라질을 꺾었다. 21일 2차전에서는 ‘아프리카 복병’ 기니를 1-0으로 눌렀다. 각급 대표팀을 통틀어 FIFA 주관 국제대회에 총 36회 출전한 한국 남자축구가 초반 2경기를 다 이긴 것도, 조별리그 2경기 만에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한 것도 처음이다. 한국축구가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 없이 16강에 올랐다. 24일 3차전에서는 잉글랜드와 득점 없이 비긴 한국은 B조 1위(2승1무)로 16강에 진출했다. B조 최종 순위표에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축구종가’ 잉글랜드가 대한민국 아래 위치했다.

붕대투혼 불살랐던 ‘선수 최진철’
최진철은 1996년 전북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전북은 요즘엔 K리그 절대강자로 발돋움했지만, 최진철이 선수로 뛸 때만 해도 중하위권이었다. 1m87㎝의 장신 수비수 최진철은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12년간 전북에서만 뛰며 의리를 지켰다. 숭실대와 전북에서 최진철을 지도했던 최만희 축구협회 대외협력기획단장(59)은 “진철이는 평소 과묵한데, 경기장에 나서면 파이터로 변신했다”며 “1999년 전북 시절 공격수가 부족해 공격을 맡겼는데, 9골을 넣을 만큼 책임감도 강했다”고 회상했다.

최진철은 1997년 브라질과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주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2001년 거스 히딩크 한국 대표팀 감독(69)이 당시 31세였던 최진철을 깜짝 발탁했다. 최진철은 소속팀 원정 경기를 치르고 복귀하는 호남고속도로에서 히딩크 감독의 연락을 받았다.

최진철은 처음엔 이번에도 벤치만 달구고 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베스트11을 뜻하는 주전조끼를 받은 뒤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리고 최진철은 홍명보(46)·김태영(45)과 함께 철벽수비를 펼치며 4강 신화를 썼다. 최진철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국민적 스타가 됐지만, 소나무처럼 한결같았다. 전북 서포터스 회장 출신 김욱헌 전북 홍보팀장은 “진철이 형은 2002년 월드컵 후에도 직원들 회식에 참석할 정도로 소탈했다. 후배 선수들뿐만 아니라 직원들 만년필 선물까지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최진철은 애국심도 투철했다. 2006년 국가대표 은퇴를 번복하고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지네딘 지단(43·프랑스), 루이스 피구(43·포르투갈)처럼 국가를 위해 백의종군했다. 2006 월드컵 당시 최진철은 후배들 몰래 링거를 맞으며 뛰었다. 그러면서도 후배 수비수 김진규(서울)에게 “진규가 머리 질끈 묶었네. 상대팀 이제 다 죽었다”라고 농담을 건네 긴장을 풀어줬다.

선수 최진철은 2006년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진철은 염기훈, 김형범 등과 함께 전북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사제지간이었던 최강희 전북 감독(56)은 “2006년에 진철이는 35세였다. 그런데 10대처럼 뛰었다. 내가 말릴 정도였다. 우승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아쉬운 8강 실패, 소중한 경험 얻어
현역에서 은퇴한 최진철은 2008년 강원FC 코치를 맡아 지도자를 시작했다. 2012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를 맡아 차근차근 ‘감독 최진철’을 준비했다. 그리곤 지난해 U-16 대표팀(현 U-17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최 감독은 지난 9월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2무1패에 그쳤다. U-17월드컵을 앞두고 미국과 두 차례 평가전에서 2연패를 당했다. 비난여론이 거셌지만 최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최 감독은 자신의 현역 시절 ‘희생DNA’를 리틀 태극전사들에게 이식했다.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공격수 이승우(17)는 대회 전까지는 무모한 드리블과 슈팅 등 이기적인 플레이를 했다. 최 감독은 이승우를 어르고 달랬다. 한편으로는 기자회견에서 이승우 관련 질문이 쏟아지면 다른 선수들 질문은 없냐고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이승우 외에 다른 선수들을 배려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2002년 히딩크 감독 밑에서 지옥훈련을 견뎌낸 최 감독은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팀의 바탕을 다졌다. 동시에 어린 선수들과 세대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휴대폰을 들고 선수들 사진을 찍어주고, 선수 시절 김진규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에게 썰렁한 농담을 던져 긴장을 풀어줬다. 그렇게 최 감독은 대표팀을 ‘이승우 원맨 팀’이 아닌 ‘원 팀’으로 만들어냈다. 달라진 이승우는 U-17월드컵에서 숨은 조연으로 변신했다. 골 욕심을 자제하고 팀 전술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외유내강형의 최진철 리더십이 발휘됐다. 최만희 축구협회 대외협력기획단장은 “최 감독은 속은 여리다. 수원컵에서 부진하자 힘들어했다. 하던 대로 꾀 안 부리고 가겠다고 했다. 소처럼 우직하다”고 전했다.

최진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1분의 기적’도 연출했다. 브라질과 1차전에서 최 감독이 후반 33분 교체 투입한 이상헌(17·현대고)이 후반 34분 장재원(17·현대고)의 결승골을 도왔다. 기니와 2차전에서도 후반 46분 이승우를 빼고 투입한 오세훈(17·현대고)이 47분 기막한 결승골을 뽑아냈다.

최진철호는 1987년과 2009년 8강을 넘어 역대 대회 최고 성적을 노렸다. 하지만 최 감독은 아쉬움 속에 도전을 멈췄다. 16강에서 벨기에에 0-2로 졌다. 경기를 앞두고 주전 중앙수비수 김승우(17·보인고)가 부상을 당해 나서지 못했고,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실패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벨기에의 역습 전술을 파악하지 못한 점은 초보 사령탑으로서 한계를 드러냈다. 최 감독은 “벨기에가 조별리그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펼쳐 당황했다. 내 경기운영이 잘못됐다.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모든 책임을 본인에게 돌렸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이승우는 그라운드에 누워 엉엉 울었다. 최 감독은 이승우를 일으켜세워 꼭 안아줬다.

‘감독 최진철’의 축구인생은 이제 막 시작했다. 최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 미래들에게 ‘희생’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심어줬다. 대회 직전 부상 낙마한 장결희(17·바르셀로나)는 “원 팀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돼 뛰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기니를 꺾는 등 어린 선수들이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이 선수들이 변함없이 잘 성장해서 장기적으로 A대표팀에 오를 수 있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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