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구자철, 그래서 더 믿음가는 ‘캡틴 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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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은 ‘스승’ 홍명보 감독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선수다.
리더로서 조직력과 콤비네이션, 전방압박 등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다.

지난 3월 3일 그리스 아테네의 네아 스미르니 경기장. 6일 그리스와 평가전을 앞둔 축구대표팀 ‘주장’ 구자철(25·마인츠)은 훈련장에서 싱글벙글이었다. 

지난 6월 백년가약을 맺은 세 살 연상 아내가 득남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박주영(29·왓포드)은 구자철에게 “아끼는 후배의 좋은 소식에 나도 선수들도 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아빠’가 된 구자철은 주장 완장을 차고 그리스전에 나섰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구자철은 후반 9분 역습 상황에서 손흥민(22·레버쿠젠)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구자철이 주장의 품격을 보여줬다’ 등 칭찬 기사가 쏟아졌다. ‘캡틴 쿠(KOO)’ 구자철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를 이끌 유력한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 도중 홍명보 감독과 주장인 구자철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석우 기자

지난해 10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 도중 홍명보 감독과 주장인 구자철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석우 기자

홍감독이 지휘한 대표팀서 주장 독차지
지난해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45)은 구자철과 이청용(26·볼턴), 하대성(29·베이징 궈안), 이근호(29·상주) 등에게 주장을 맡겼다. 해외파를 포함한 정예 멤버가 구성됐을 땐 구자철과 이청용에게 주장 완장을 채웠다.

지난해 11월 스위스·러시아로 이어진 A매치 2연전에서는 발목 부상으로 빠진 구자철 대신 이청용이 주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전 주장 박지성(33·에인트호번)의 향기가 난다”는 극찬을 받은 이청용이 강력한 주장 후보로 떠올랐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5월 29일)를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시험대였던 그리스전. 주장 완장은 부상을 딛고 5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구자철의 왼팔에 채워져 있었다.

홍 감독의 선택은 ‘페르소나’(Persona) 구자철이었다. 페르소나는 영화계에서 감독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단짝 배우다. 마틴 스코시지-로버트 드니로, 봉준호-송강호 등이 대표적이다. 축구계에서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라이언 긱스(맨유), 최강희 전북 감독-이동국(전북) 등이 있다.

구자철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까지 갔다가 최종 엔트리(23명)에 탈락해 실의에 빠져 있었다. 홍 감독은 구자철에게 전화를 걸어 “넌 우리나라 최고가 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지 말라”고 위로할 만큼 구자철을 아낀다. 

홍 감독은 자신이 지휘한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U-20) 월드컵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 올림픽 모두 ‘애제자’ 구자철에게 주장을 맡겼다.

지난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그리스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구자철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그리스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구자철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자철 역시 ‘스승’ 홍 감독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선수다. 리더로서 조직력과 콤비네이션, 전방압박 등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다. 구자철은 홍 감독이 추구하는 ‘원 팀’(one team)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다. 

구자철은 아줌마처럼 주변을 세심하게 챙긴다고 해서 별명이 ‘구줌마’(구자철+아줌마)다. 2007년부터 4년간 K리그 제주에서 활약한 구자철은 독일에서도 친정팀 제주 경기를 챙겨볼 만큼 K리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국내파와 해외파의 간극도 줄일 수 있다. 

이청용도 “현 대표팀에는 아시안게임·올림픽에서 많은 선수들과 코치진이 올라왔다. 스타일을 잘 알고, 코치진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자철이가 최고의 주장감이다”라고 말했다.

구자철은 충북 충주 중앙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청주 대성중학교 입학 당시 키가 146㎝에 불과했다. 구자철은 매일 우유 1ℓ를 먹었고 그라운드에서도 물 대신 우유를 마신 끝에 결국 키가 186㎝까지 자랐다.

세심하게 주변 잘 챙기는 ‘구줌마’
구자철은 고2 때 대학교 진학이 결정됐지만 빈혈 때문에 틀어졌다. 그라운드에서 동료를 쫓아가는 게 너무 벅찼는데 알고 보니 빈혈이었고,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보인고 시절 구자철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최월규 월스포츠 대표는 “악바리 자철이는 빈혈약을 먹으면서 뛰었다. 어느 순간 동료들을 앞질렀다. 빈혈로 인해 정신력이 더 강해졌다”고 회상했다.

2006년 제주 백록기 결승에서 정해성 당시 제주 감독 눈에 든 구자철은 이듬해 K리그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했다. 2010년부터 포텐셜(potential·잠재력)이 터졌다. 

그 해 5골·12도움을 올리며 K리그 중위권팀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5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올라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볼프스부르크에서 힘겨운 주전 경쟁을 펼친 구자철은 2011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돼 2시즌 연속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2년 올림픽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도 견인했다.

2013년 볼프스부르크로 임대 복귀한 구자철은 지난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500만 유로(약 72억원)에 독일 마인츠로 이적했다. 구자철은 마인츠에서 자신이 원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팀을 7위(11승5무8패·14일 현재)로 이끌고 있다.

“실력 차이보다 중요한 건 준비 과정과 의지”
구자철은 애국자 집안의 차남이다. 아버지 구광회씨는 24년간 공군 주력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 2002년 전역한 예비역 원사 출신이다. 친형도 ROTC 장교 출신이다. 공군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구자철은 축구도 생활도 ‘FM’(야전교범·Field Manual)이다. 

2012년 후방십자인대 파열로 9개월간 독일 구자철 집에 머물며 재활한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탄산음료와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고, 쉬는 날 집에만 있는 구자철의 철저한 몸관리를 보고 배웠다. 

최근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만난 박경훈 제주 감독은 “축구선수는 자철이처럼 축구밖에 몰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독일에서 한참 시즌 중인 구자철과 카카오톡 인터뷰를 가졌다. 축구도 생활도 ‘FM’인 구자철은 대답도 정석이었다. 

구자철은 브라질 월드컵 주장 후보라는 말에 “주장에 대한 의견은 특별히 없습니다. 단지 제가 맡을 역할을 알고, 해내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 한국대표로 더 큰일을 해야 하기에 더 노력해야 합니다. 

주장이란 것보다 모든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기에 팀이 더욱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해요. 당연히 누군가는 주장이 되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각자 역할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다른 무엇에 신경을 뺏기진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돼도 우리팀이 생각하는 목표와 꿈을 계속 노력으로 끌고 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구자철은 ‘브라질 월드컵 한 조에 속한 벨기에·알제리·러시아의 전력’을 묻는 질문에도 “월드컵 참가국이라면 당연히 훌륭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느끼지만 실력 차이보다 중요한 건 준비과정과 의지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우리가 훌륭한 준비과정과 환경을 만들어 월드컵에서 모든 힘을 다 쏟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런던 올림픽 때 동메달을 딴 것처럼 상대로 누구를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들 스스로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신뢰와 자신감을 만들어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결과란 걸 후회없이 받는 게 목표겠죠.”

‘FM’ 구자철, 그래서 더 믿음가는 ‘캡틴 쿠’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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