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종목 운동선수가 다니는 대안학교는 상당수 있다. 그러나 단체종목이 있는 대안학교는 극소수다. 성지고 축구부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9월 6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성지 중·고등학교 마당에서는 작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제45회 대통령금배 고교축구선수권대회 4강 진출 축하회 및 각종 자격증 취득학생 시상식’이었다. 한 달 전 전국 최고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금배에서 4강에 오른 걸 자축하는 자리였다. 성지고등학교 축구부가 생긴 지 올해로 7년째. 금배 4강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승도 아닌 4강. 그걸 축하하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마련된 행사.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성지고는 평생교육 시설학교다. 1972년 영등포 청소년직업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2001년에는 도시형 대안학교로 지정됐다. 기존 교육제도 하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와서 자신이 원하는 걸 공부하는 곳이다. 중학교 주·야간이 모두 있고 조리학과·실용음악과 등 직업교육이 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 축구부가 있다. 축구광인 김한태 교장이 2006년 창단했다. 개인종목 운동선수가 다니는 대안학교는 상당수 있다. 그러나 단체종목이 있는 대안학교는 극소수다. 성지고 축구부는 어떤 모습일까.
빌린 운동장서 ‘메뚜기 훈련’
다소 충격적인 사실은 운동장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화곡동 교사도, 방화동 교사도 마찬가지다. 화곡동 교사는 원래 규모가 작아 운동장이 없다. 방화동 교사는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1년씩 빌려 쓰는 형편이라 부지는 3300평으로 크지만 수억원이 드는 운동장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축구부는 빌린 운동장에서 ‘메뚜기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인근에 있는 강서체육관을 비롯해 파주, 김포 등으로 가서 운동장을 빌린다. 2시간 사용료가 4만원에서 7만원. 한 달 운동장 대여료로만 80만~100만원이 나온다. 김대흠 축구부 감독은 “운동장을 빌리는 게 일주일 단위”라면서 “매주 운동장을 섭외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운동장을 섭외하지 못할 때는 산과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간다. 김 감독은 “그때는 인근 산이나 인천 영종도 을왕리 모래사장으로 가서 달리다가 온다”고 덧붙였다.
신입생 스카우트도 어렵다. 대안학교라는 이미지, 운동장이 없다는 것, 축구부 역사가 짧다는 이유에서다. 중학교 감독과 아무리 친해도 공은 공, 사는 사. 김 감독은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 싶어서 많이 부탁을 하고 다니지만 쉽지 않다”면서 “잘 하는 신입생들은 다들 유명한 고등학교로 가고 우리는 중간 이하 신입생들을 주로 받는다”고 말했다. 정연택 코치는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면서 “우리 학교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수도권 지역 학생들은 잘 오지 않으려고 한다”며 답답해 했다.
운동장도 없고 뛰어난 선수들도 부족한 상황.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강한 훈련밖에 없었다. 김한태 교장이 추구하는 모습은 ‘악바리 축구’다. 김 감독도 “기량이 부족한 만큼 하나로 뭉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걸 100% 모두 보여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정 코치는 “우리 전력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우리 걸 100% 하면 이길 수 있지만 80%를 하면 패한다”고 거들었다. 김 감독은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훈련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서 지독하게 훈련한 뒤 경기에서는 상대 분석을 더욱 더 치밀하게 해서 상대 약점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방법뿐”이라고 덧붙였다.
부족한 개인기량 강한 훈련으로 극복
‘착한’ 선수들도 군소리 없이 강한 훈련을 소화한다.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역사도 짧은 축구부에 온 만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훈련뿐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장 최희승군(3년)은 “우리들의 개인기량은 전국 고교 중간 정도”라면서 “개인 실력이 부족한 걸 팀 단합으로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군은 “내가 1학년 때는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등 패배주의에 젖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어디서든 열심히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전했다. 운동장이 없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훈련의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최군도 “운동장에서는 공을 잘 차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광탄중학교 출신 신입생 이철희군(1년)은 “신입생을 스무명 넘게 뽑는 영등포공고에 가려면 갈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그곳에 가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면 그대로 끝날 수도 있어 성지고 입학을 결심했다”고 답했다. 이군은 “성지고 선배들은 모두 자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면서 “경기 전과 후, 선수 전체가 파이팅을 외치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 매우 좋다”며 웃었다.
전체 축구부원은 36명이다. 3학년 10명은 아직은 지방대학교가 주를 이루지만 모두 대학 입학이 결정됐다. 2학년은 14명, 1학년은 12명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학년별 선수 수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간간이 전국대회 4강에 들면서 축구부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고, 요즘은 입학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선수까지 생겼다.
축구부원 맞춤식 수업으로 학업 능률 높여
축구부원은 방화동 교사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한태 교장이 지난해 지은 축구부 전용 숙소다. 놀라운 것은 축구부원들만 따로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축구부원들은 1인당 컴퓨터 1대씩 마련된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는다. 김 감독은 “일반학생과 수업을 하면 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축구부원 수준에 맞게 영어, 한문,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데 공부하려는 의지가 높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오전에만 공부를 하고 오후부터는 훈련을 한다. 일반 학업 시간은 다른 학교에 비해 부족해도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한다는 것과 운동선수로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훈련할 수 있다는 게 좋단다. 다른 일반 학교 축구부는 일반 학생들과 함께 의무적으로 모든 수업을 다 들어야 하는 경우가 적잖다. 수업의 능률은 저하되게 마련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게 다반사다.
숙소에는 웨이트트레이닝장도 있다. 식당 벽에는 김한태 교장이 내놓은 축구부 5대 수칙이 걸려 있다. ‘연습에는 장사가 없다’ ‘죽을 만큼 노력하자’ ‘방심하면 무너진다’ ‘불안하면 연습하자’ ‘나를 넘어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게 성지고 축구부의 현 모습이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길이기도 하다.
운동장도 없다. 선수들의 개인기량도 높지 않다. 축구부 역사가 짧아 축구부를 이끌어주고 도와줄 선배도 거의 없다. 그래도 축구부 학생들은 즐겁다. 숙소가 주는 편안함, 운동장이 없는 절박함 속에 즐거우면서도 절실하게 공을 차고 있기 때문이다. 또 축구선수로서 살아가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내용과 수준으로 학업이 이뤄지는 것도 즐겁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놓을 게 없고 형편없어 보이는 대안학교 축구부. 그러나 그곳에서 지내면서 공을 차는 축구부 학생들의 표정이 다른 어느 학교 축구부 학생들보다 밝은 건 무엇 때문일까.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