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히티 원주민들이 보여준 불쇼.
여전히 낫지 않은 발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 매일같이 바다에서 스노클링과 아쿠아 짐을 즐겨줬더니 리조트에서 날 보는 사람마다 안부인사를 발가락에다 했다. 발가락 안녕하시냐고. 세상 최고의 바다에서 꿈 같은 날을 보내고 있는데 발가락 붕대가 대수랴.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저녁 쇼도 기대 이상의 행복을 안겨줬다.
타히티 원주민의 특별 민속공연은 전통 춤과 노래, 불쇼, 차력쇼(?)가 합쳐진 ‘복합 버라이어티 쇼’였는데 현지인의 힘과 정열이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공연에 나선 남자는 스모선수 수준의 ‘최소한의 의상’만 걸친 채 힘자랑에 열심이고 코코넛 껍데기로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가린 여자들은 꽃 목걸이와 화관을 쓰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다. 노래와 춤, 그리고 불쇼까진 이해가 되는데 바닷가에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어깨에 메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차력쇼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새 쇼는 끝났고 그 자리에서 관광객이 참가하는 즉석 림보(Limbo) 콘테스트가 벌어졌다. 림보는 최근 모 CF에서 전지현이 환상의 허리라인을 자랑하며 선보인 그 ‘허리 안 굽히고 막대기 통과하기’ 게임이다. 전날 쇼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며 ‘크레이지 걸스’란 별명까지 얻은 우리 일행은 또다시 사회자의 호출을 받았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어만 써대는 현지 남자 직원과 파트너가 되어 생전 처음으로 림보를 해봤다. 광고 속 전지현은 너무나 멋지고 섹시하게 림보를 소화했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가뜩이나 유연성이 모자란 신체 구조 탓에 구부정한 자세는 어설펐고 발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가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 우리나라 사람은 지고는 못 사나 보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뒤섞여 경쟁하다보니 슬슬 승부를 즐길 정도까지 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동생이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부상으로 탄 공짜 칵테일을 마시며 림보 게임에서 아쉽게 2등을 차지한 이탈리아 부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에 살고 있다는 30대 중반의 이 부부는 우리와 금세 친해져 깊은 밤이 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엔 어디로 휴가 갈 거냐며 다른 데 가지말고 베네치아로 오라는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내년 휴가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세계일주를 끝낸 뒤 바로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타히티의 바다도 멋졌지만 그 안에서 함께한 사람들 덕에 계속 웃을 수 있는 여행이 된 건 아닐까. 이후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타히티에 눌러앉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유여행가〉 www.zonejung.com
스노클 하나쯤은 가지고 가세요 타히티 보라보라섬 해변에는 비교적 수심이 얕으면서 물고기도 많은 ‘스노클링 포인트’가 많다. 짐이 되더라도 개인용 스노클을 가지고 가서 원하는 때에 마음껏 스노클링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