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쟁 열쇠 쥔 신와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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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전권 휘둘러…일시 휴전 아닌 완전한 전쟁 종식 고집

NYT “이스라엘, 하마스와의 라파 전면전 위해 신와르 이용”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AP연합뉴스

“야히야 신와르가 종전의 열쇠를 쥐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5월 12일(현지시간)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전망하면서 “결국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만이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과 인질 납치를 설계한 인물로, 이후 이스라엘과 벌인 모든 협상에 관여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야말로 하마스의 절대 권력자다.

반면 이스라엘엔 눈엣가시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2월 신와르 체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40만달러(약 5억4740만원)를 지급하겠다는 전단을 가자지구 전역에 살포했다. 신와르의 형 무함마드 신와르에게도 30만달러(4억1055만원)의 현상금이 내걸렸다.

전쟁 발발 8개월째에 접어든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은 신와르를 제거하느냐, 아니면 지켜내느냐의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NYT는 “신와르가 지금까지 생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서 실패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향방을 좌우할 만큼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신와르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칸유니스의 도살자”

신와르는 1962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한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신와르의 부모는 현재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약 75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나크바(대재앙)’를 겪으며 난민 신세가 됐다. 알자지라 등 외신은 칸유니스 난민촌에서의 어린 시절 경험이 신와르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형성하는 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1980년대 초 가자지구 이슬람대학교에서 아랍어를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이슬람주의 운동에 뛰어든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대학에서 하마스 공동 설립자인 성직자 아흐메드 야신과 가깝게 지냈다”며 “이스라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신와르는 이후 야신이 자신에게 이스라엘과 협력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파트와(이슬람 율법)를 부여했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1987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반이스라엘 투쟁)는 신와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그해 결성된 하마스에 합류한 신와르는 25세에 보안 부서 수장으로 임명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당시 신와르는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스파이를 색출하는 임무를 맡았다”며 “그때 붙여진 별명이 ‘칸유니스의 도살자’였다. 그 정도로 잔혹했다”라고 설명했다.

승승장구하던 신와르는 1988년 이스라엘에 체포돼 살인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23년을 복역했다. 그 기간 히브리어 공부에 매진하며 원어민 수준의 실력자로 거듭났고, 매일 이스라엘 신문을 정독하며 ‘적의 약점’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후 2011년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와 이스라엘에 갇힌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신와르는 풀려났다.

이후 신와르는 공포정치를 펼치며 2017년 하마스를 장악했다. 익명의 이스라엘 정보국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스파이로 의심되는 하마스 대원 동생을 생매장하고, 마지막 흙은 해당 대원이 직접 퍼 덮도록 했다”며 “신와르는 이를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 가입 관련 특별 회의에서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 가입 관련 특별 회의에서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휴전 협상 걸림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국면에서도 신와르는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 중재를 자임한 카타르와 이집트 관계자들은 NYT에 “휴전 협상에 나선 하마스 대표단이 합의나 양보에 앞서 일일이 신와르의 허락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와르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하마스 정치분석가 살라흐 알딘 알아와우데는 “신와르와 상의 없이 내려지는 결정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와르가 현재 휴전 협상에 응할 뜻이 실제로 있냐는 점이다. 일각에선 신와르가 의도적으로 길게 전쟁을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이스라엘의 국제적인 평판을 망가뜨리고 핵심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전략을 세웠다”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신와르가 ‘하마스 생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일시 휴전이 아닌 완전한 전쟁 종식이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협상에 참여한 미국, 카타르, 이집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맞교환 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봤지만, 신와르가 “종전 보장 없인 타협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번번이 대화가 끊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와르는 궁극적으로 전쟁 종료로 이어질 장기 휴전을 포함하지 않은 제안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와르는 최소 수개월, 심지어 수년까지도 전쟁을 견딜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에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시간과 지하 터널, 인질들의 존재는 신와르에게 반드시 협상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신와르 이용하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회 만류에도 전쟁 목표로 내건 ‘하마스 절멸’을 위해선 가자지구 라파 지상작전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제거 1순위로 꼽고 있는 신와르가 라파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라파 침공 논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라파 전면전을 위해 신와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지난 5월 13일 복수의 미국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신와르는 라파에 숨어 있지 않다”며 “이는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라파 군사작전의 당위성을 약화할 수 있는 정보”라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미 정부는 신와르가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칸유니스에 줄곧 피신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NYT는 “칸유니스엔 최대 지하 15층 깊이의 거대한 땅굴이 마련돼 있다”며 “신와르는 그곳에서 이스라엘군이 자신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인질을 방패막이 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NYT는 미국이 이 같은 정보를 이스라엘과 공유했고, 이스라엘 정보당국 또한 미국 주장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이 신와르가 라파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마스 몰살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NYT는 “미 정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하마스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을 사살한다면 이를 주요 승리 근거로 삼을 수 있고,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억제할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스라엘이 신와르 추적을 라파 공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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