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유혈 충돌로 사망자 수가 양측 모두 1000명 단위를 넘어섰다. 사태가 전쟁 양상으로 치달으며 사망자와 부상자를 더한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충돌은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공격하며 시작했다. 이스라엘 공영 방송 칸을 인용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측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1일 기준, 1200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를 인용한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복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2일 기준 1200명을 넘어섰다. 공격과 보복이 오가며 하루아침에 사망한 ‘사람’이 2000명이 넘는다.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은 수천명의 사망자와 함께 서서히 전쟁 관련 ‘통계’로 변해가고 있다.
2년여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며 중동 지역에서 ‘간신히’ 발을 뺐던 미국은 최대 우방 이스라엘이 공격받자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고,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갖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탄약과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체계)을 보충할 요격 무기들을 포함한 추가적 군사지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마스의 공격은 이슬람국가(ISIS)의 광란 행위와 닮았다”고 비난했다. 실질적 지원도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월 10일, 미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이스라엘 인근 동지중해에 도착했다. 직접 개입보단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불안정해질 중동정세를 사전에 진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시가전까지 불사하며 가자지구를 점령할 계획이다.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 가자지구에 남은 민간인 등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문제는 미군 철수 이후 힘의 공백 지대에 있던 중동이 이스라엘과 함께 돌아오는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지난 2년여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과 미국과 대립하는 지역으로 갈라졌다.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등의 미국을 지원하는 단단한 린치핀(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외교가에선 공동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 등을 의미한다)이 있지만 중동은 다르다. 당장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양대 세력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모두 팔레스타인 지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하마스와는 선을 긋고 있지만, 미국이 직접 개입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유럽에 이어 중동에서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하마스는 무엇을 노렸나
지난 10월 7일 발생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두 가지 방어선을 뚫었다. 하나는 미국 CIA, 이스라엘 모사드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기관의 힘이다. 이번 공격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 지방을 향해 로켓포 5000여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은 하마스가 5000여발의 로켓포를 확보하는 과정,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모두 놓쳤다. 이를 두고 미국 CNN은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 첩보)와 모사드(해외 첩보), 방위군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누구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정보 협력을 해온 미국 CIA를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하고, 세계가 부러워 한 ‘아이언돔’의 실패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구축 중인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원조격이다. KAMD를 ‘한국형 아이언돔’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방어체제를 C-RA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C는 대응한다는 의미의 Counter, RAM은 로켓(Rocket), 곡사포가 중심인 대포(Artillery), 박격포(Mortar)를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은 국경 북쪽에서 대립하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 내부에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이언돔을 구축했다. 요격 성공률은 90%에 달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서 아이언돔은 사실상 무기력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점만 노출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한 번의 성공이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뒤집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하마스의 공격 성과가 커질수록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인한 붕괴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가혹하고 끔찍한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전례 없는 공세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0일에는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이 “이스라엘 남서부와 가자 봉쇄선 부근에서 약 1500명의 하마스 전투요원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보복 위험을 감수한 공격에 나선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해묵은 원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는 ‘왜 꼭 지금, 이 정도로 대규모 공격에 나서야 했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중동전문가인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양측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고 봤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공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마치 제4차 중동전쟁을 연상케 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상황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가자지구와 이른바 웨스트뱅크로 불리는 서안지구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지구를 통치하는 세력이 다르다.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1987년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한 하마스다. 이들은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을 대(對)이스라엘 투쟁의 이념으로 삼고 출발했다.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건설이 목표다.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세력이 주축이 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출발했다. 부패 문제로 비판받지만, 서구 및 이스라엘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동-서로 분리된 팔레스타인의 영토 안에 각각의 통치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은 자연히 경쟁을 낳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하마스가 이스라엘만큼 싫어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고 인정한 서안지구 자치 정부”라며 “하마스가 무리해 보이는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들의 경쟁관계에서도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관계에 변수가 생겼다. 사우디의 등장이다. 수니파 이슬람의 수장격인 사우디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로 ‘네옴시티’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실리를 확보하고자 했다. 문제는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불러올 중동 지역의 반발이다. 이에 사우디는 역시 수니파 이슬람이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처우 개선을 수교 조건에 넣었다. 그런데 사우디와 협력하는 팔레스타인은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아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였다. 차질없이 수교가 이뤄진다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원까지 확보하게 된다. 경쟁관계인 하마스 입장에선 달가울 수 없다. 수니파 사우디와 경쟁하는 이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판을 깨는 데 전쟁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팔레스타인 내 주도권 다툼과 지정학적 변화를 종합해보면 ‘왜 지금 대규모 공격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하마스의 의도가 성공했는가’까지 평가해볼 수 있다. 지난 10월 9일 국내 언론은 사우디의 실권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지키고 영토의 평온과 안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선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해당 보도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된 부분이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통화에서 지지 의사를 밝힌 건 팔레스타인 전체가 아닌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와 하마스와의 거리는 변한 것이 없다.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일까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포기한다’, ‘중동 내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시아파 수장 이란이 개입해 이스라엘·미국과 대립한다’ 정도면 하마스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셈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을 뿐, 하마스를 지지한다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수교가 잠시 미뤄질 수는 있겠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
이란 역시 선을 긋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10월 1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해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 편을 드는 자들은 지난 2~3일간 (하마스) 행동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란 배후설’이 적극 제기됐던 미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하마스 공격에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란의 전통적인 대외 군사전략이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이란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전쟁은 이란 국경 밖에서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대리인(Proxy)의 존재다. 즉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 내 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해 이란 국경 밖에서 자신들의 적과 대리전을 벌인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 하마스 편에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곳은 레바논과 골란고원 지역을 두고 이스라엘과 영토분쟁을 해온 시리아 정도다.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언급하며 확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만일 시아파 벨트 국가들의 추가 참전이 이어지더라도 이란은 전략적 선택에 의해 직접 개입할 확률이 높지 않다.
미국이 하마스의 의도대로 중동 지역 분쟁에 직접 개입할 것이냐는 점 역시 변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과 전쟁에 개입해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는 있어도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을 할 여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며 “중동 지역 주요 국가들도 하마스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미국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짜 변수는 하마스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
하마스의 공격이 발생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은 사법제도 재편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맞춰져 있었다. 끊임없이 시위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다. 극우세력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은 네타냐후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안보 강화로 정당화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민주주의를 위협한 네타냐후 정부가 안보에도 무능력하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 됐다. 장 센터장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네타냐후 정부의 정보, 안보, 리더십 실패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치닫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일단락되면, 가장 먼저 네타냐후 정부의 책임부터 물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 극단적 선택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좁은 가자지구 내에 사는 민간인이 하마스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을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폭격 전 가자지구 내 민간인을 향해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가자지구 내 민간인은 사실상 하마스의 인질에 가까운 데다 이스라엘에 의해 분리된 팔레스타인 영토 구조상 가자지구를 떠나 탈출할 곳도 없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시가전 감행은 사실상 민간인도 함께 죽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법의 지배에 따라 행동할 때 얼마나 더 강하고 안전한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한 전시 국제법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고려할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10월 10일 이타르타스통신 등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주거지역에 백린탄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백린탄은 가연성이 강한 파편을 흩뿌리는 화학무기로 연기만 흡입해도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해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돼 제네바 협약 등에 의해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2009년에도 백린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번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마스 역시 지난 10월 7일 기습 당시 납치한 인질들을 이른바 ‘인간방패’로 세우고 있다. 이미 지난 10월 9일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1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이란, 유엔 등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거나 중재할 능력, 의무가 있는 곳들은 상황을 관망 중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미국과 지역 강대국이 확전을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피해는 군인보다 민간에 집중될 확률이 높아진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 남긴 채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사망자 수를 기록한 통계수치가 쌓여가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