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기회의 시장인 것은 다들 인정한다. 현지에 진출해 성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업계 1~2위의 대기업들도 베트남에서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반면 중소기업임에도 베트남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곳도 있다. 사업 방향이 트렌드에 부합해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현지 시장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했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 관건이다.
베트남서 철수한 한국 홈쇼핑 공룡 4개사
2011년 CJ오쇼핑을 필두로 GS홈쇼핑(2012), 롯데홈쇼핑(2013)이 베트남에 진출했다. 뒤늦게 현대홈쇼핑(2016)이 베트남에 입성했다. 한국 거대 홈쇼핑 4개사가 모두 진출했을 정도로 베트남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2018년 롯데홈쇼핑을 시작으로 CJ(2020), 현대(2022), GS(2023) 순서대로 모두 사업을 철수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컸지만, 이로 인해 베트남 시장은 힘들다는 인식이 업계에서 퍼져 나갔다.
한국 홈쇼핑사들이 베트남에서 힘겹게 사업을 운영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필자는 베트남 홈쇼핑 초창기부터 TV쇼핑을 통해 화장품을 판매해왔다. 베트남 홈쇼핑 유통 채널과 베트남 시장의 특성을 중심으로 그 원인을 분석해보려 한다.
한국과 베트남 소비 성향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구매력이다. 대체로 한국 홈쇼핑은 싸게 대량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쟁여 놓고 사용하더라도 일단, 싸게 구매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베트남 소비자들에게는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력에 따른 구매력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9만9000원/15만9000원 단가의 상품 구성을 한 번 방송에 5000세트를 판매하는 일도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3만원 내외 상품으로 구성하더라도 1회 방송에 30~50개 넘게 판매하기도 어렵다.
스마트폰의 확산과 이커머스의 등장
한국에서는 아침드라마, 일일드라마, 저녁뉴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등의 시작 전후 채널이 바뀌는 순간이 TV홈쇼핑 매출의 황금시간대다. 베트남에서는 그러나 이 공식이 먹혀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베트남 사람들이 야외 활동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동네에서 이웃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일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근 카페에서 친구들과 모여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둘째, 베트남 자국 TV 프로그램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으로 해외 영화와 드라마를 보니 TV쇼핑에서 물건을 살 기회가 없다. 해외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눈이 높아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국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을 리 없다. 베트남 방송국이 한국에서 판권을 사다가 방영하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OTT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보다 보니 시간이 한참 지난 콘텐츠엔 별 관심이 없다.
셋째, 이커머스 시장의 발전이다. 베트남 홈쇼핑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2012년 유럽계 라자다(LAZADA), 잘로라(ZALORA)가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TV홈쇼핑 시장에서 경쟁을 펼쳤다. 초기에는 TV에서 제품을 자세히 설명해주었기에 이커머스보다 경쟁력이 높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사용 비율이 높아졌다. 이커머스 기업들도 공격적인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소비자들이 이커머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해마다 수백억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할인 폭탄을 쏟아내는 이커머스들의 저가 공세에 한국 홈쇼핑사들은 견딜 수가 없었다. 보따리로 저렴한 제품을 가져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TV쇼핑처럼 설명하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TV쇼핑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 떡볶이 신화를 만든 두끼 떡볶이
베트남 시장이 만만치 않다지만 중소기업임에도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한국 기업들도 있다. 떡볶이 뷔페식당을 운영하는 두끼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11월 베트남 1호점을 낸 이래 2023년 7월 현재 베트남 전국에서 78개 가맹점을 운영 중이다. 두끼 떡볶이의 성공을 보고 베트남 사람들이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오판해 여러 유명 한국 떡볶이 브랜드들이 베트남에 진출했다가 큰 실패를 맛보았다. 베트남에서 인기가 좋은 한국 연예인까지 모델로 기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성공한 두끼와 실패한 떡볶이 브랜드들의 차이는 ‘무제한 리필’ 여부였다.
두끼는 떡볶이집의 탈을 쓴 뷔페식당이었다. 김밥, 치킨, 각종 튀김과 다양한 종류의 어묵과 라면, 채소 사리가 무한 리필이다. 거기에 탄산음료까지 무제한 무료다. 베트남에서 성공한 이유다. 두끼 떡볶이 가격은 1인당 13만9000베트남동(VND)으로, 우리 돈으로는 7500원가량이다. 그러다 보니 두끼를 찾는 주고객은 주머니 사정이 얇은 10~20대 젊은 층이지만, 5~6명의 가족이 와서 먹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중산층이 급격히 늘어났던 한국에서도 뷔페식당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 상황이 지금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끼가 유행하기 전 베트남에는 고기, 샤브샤브 등 다양한 형태의 뷔페식당이 성황을 이뤘다.
두끼의 성공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뒤따라 하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딱히 좋은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질 좋은 식자재를 저렴하게 확보하고, 현지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사업운영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이템이라 해서 저렴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이 잘 될 리는 없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할 때 뭘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내놓는 나의 답변이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