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리안 흥몽 삭홍 임시정부 장관 인터뷰
몇해 전만 해도 미얀마의 근현대사는 한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1940년대 외세로부터의 독립, 1960년대 군부쿠데타와 장기간의 군사독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닮은꼴이었다. 미얀마 군부가 1990년 민주진영이 압승을 거둔 선거결과를 부정하면서 군사독재가 연장됐지만, 2010년부터는 결국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진행됐다. 202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면서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군부는 또 선거결과를 부정하고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시민과 민주진영 인사들은 다시 민주주의를 향한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군부의 유혈진압에 평화시위가 가로막히자 시민들은 군대를 조직했다. 내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미얀마 민주진영이 지난해 4월 구성한 국민통합정부(NUG)는 반군부 항쟁의 최전선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 주장하며 국제사회가 군부가 아닌 NUG를 미얀마의 공식정부로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NUG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해 반군부 전선의 확장을 꾀하는 중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버마족 이외에 130여개 민족이 존재하는 나라로 독립 후 70여년간 이어진 민족 갈등이 정치적 위기의 근본 원인이 됐다. 아웅산 장군이 주도한 ‘팡롱합의’(1947년 2월 12일)를 근거로 민족 자치와 연방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의 목소리를 중앙정부는 묵살했고, 소수민족들은 무장단체를 만들어 무력투쟁을 벌여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수민족 무장단체만 50여개에 이른다. 군부는 물론 문민정부도 이들 무장단체 대부분을 ‘반군’으로 규정했다. 특히 군부는 국경 관리를 명목으로 이들을 진압하면서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이는 군부가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한 이후에도 실권을 유지하는 근간이 됐다. NLD가 중심이 된 문민정부도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등 소수민족 탄압을 외면했다.
NUG는 ‘연방 민주주의’를 군부쿠데타 이후 미얀마 사회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군부 퇴진으로 이 싸움이 끝나면 소수민족의 오랜 염원대로 미얀마를 연방제 국가로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NUG의 17개 부처 중 연방연합사무부가 소수민족과 연대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는 업무를 맡았다. 연방연합사무부는 민주진영이 그간 외면해온 소수민족들을 반군부 전선에 동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도 불식시켜야 한다.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의 리안 흥몽 삭홍 박사(62)가 연방연합사무부 장관을 맡았다. 그는 미얀마의 문민정부 시절 일부 소수민족과 중앙정부 사이의 ‘전국휴전협정’ 체결 과정에 관여했다. 또 연방 민주주의 원칙을 담은 ‘연방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했다. 미얀마 반쿠데타 운동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리안 흥몽 삭홍 장관을 지난 10월 24일 인천 부평구 주한 NUG 대표부에서 만났다. 통역은 묘헤인 주한 NUG 대표부 노무공보관이 맡았다.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가 발생한 지 600여일이 지났다. 현재 미얀마 상황은 어떠한가. 상당수 외신이 군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지난해 ‘봄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면, 최근에는 ‘내전’으로 표현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에는 미얀마의 전 국민이 평화로운 시위로 군부쿠데타에 반대했다. 봄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후 군부의 잔인한 무력진압, 시민들에 대한 체포와 민주 인사들에 대한 사형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지역마다 시민들이 만든 시민방위군이 존재한다. NUG 국방부는 지역별 시민방위군을 규합해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협력해 공동 전선을 펼치기도 한다. 지금 상황은 내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실 미얀마는 70년 동안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미얀마 군부가 내전을 거듭해온 나라다. 하지만 지금의 내전은 전국적 규모의 내전이다.”
-NUG는 지난해 9월 군부를 향해 선전포고했다. 시민불복종 운동이라는 평화적인 저항에 그치지 않고 선전포고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비폭력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 운동은 군부를 이겨내지 못했다. 미얀마는 이미 4번의 군사쿠데타를 겪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세대도 이런 쿠데타를 또 겪을 수 있다. 한국도 군부쿠데타와 군사독재가 있지 않았나. 그걸 이겨냈기에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군부독재체제를 종식하려면 무장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민이 ‘시민방위 혁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년 9개월간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력분쟁 사건을 수집·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에 따르면, 군부쿠데타 이후 지난해 6월까지 매주 100건 이상씩 발생하던 시위가 최근에는 주당 20~30건 수준으로 줄었다. 줄어드는 시위를 교전이 대체했다. 군대에 대항해 시민방위군,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교전을 벌이고 있다. ACLED의 집계를 보면 전투 발생 건수는 올해 6월 셋째 주에 104건이 발생해 쿠데타 이후 가장 많았고, 10월 첫째 주에도 72건의 전투가 발생했다. 시민방위군의 게릴라전에 군부가 폭격으로 대응하면서 인명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0월 24일에도 군부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카친주를 폭격해 최소 6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ACLED는 군부쿠데타 발생 이후 10월 둘째 주까지 정치적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만7211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지역별로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했다고 보나.
“시민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지역별 시민방위군에는 몇명 정도가 참여 중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얼마 전 두와 라시 라 NUG 대통령 권한대행은 NUG 국방부 아래 300개의 부대를 편성했다고 밝혔다. 또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도 협력해 교전지역을 권역별로 나눴다. 우크라이나처럼 국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는 형편이 아니어서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군부가 미얀마 전 국토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인가.
“군부의 군경은 주로 도시에 주둔한다. 농촌까지 군경이 들어온 경우는 많지 않다. 예컨대 미얀마 북서부 친주의 70%는 시골이다. 이런 지역은 군부가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 중부의 사가잉주나 마궤주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제외한 농촌은 시민들이 스스로 장악하고 스스로 행정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비교를 했는데 현재 미얀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무기와 예산이 가장 시급하다. 혁명에 이미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시민들의 지지도 있다. 그렇지만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과 시민방위군에 합류하고 있는 분들을 지원할 자금이 절실하다. 미얀마의 많은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필요하다.”
군부는 미얀마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미얀마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얀마특별자문위원회(SAC-M)의 지난 9월 분석에 따르면 미얀마의 330곳 행정단위 중 군부가 안정적으로 통제력을 행사하는 지역은 72곳(22%)에 불과했다. 쿠데타 이후 한 번이라도 시민 저항이나 무력충돌이 빚어진 곳이 308곳으로 전체의 93.3%를 차지했다.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하면서 인권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미얀마에서는 13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가옥 2만8000채가 파괴됐다. 국가경제도 경고음을 울린다. 세계은행은 지난 9월 올해 미얀마 경제가 18%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미얀마 화폐의 가치가 지난 9월에만 60%가량 폭락했다. 기본 상품가격은 57% 폭등했다.
-군부에 맞서는 NUG 주요 인사들도 탄압의 표적일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친주 하카에 있는 집이 군부에 압류됐다. 군부는 여동생의 가족까지 체포하려 했다. 지금 여동생 가족은 인도 국경지역으로 도피한 상태다. NUG의 장관을 맡고 있는 이들은 다 똑같은 탄압을 받고 있다. 군부가 친주의 딴틀랑을 포격하고 민가에 불을 질렀을 때 어머니와 친누나 3명, 삼촌 등 친지들의 집이 10채 정도 불에 탔다. 가족들은 지금도 군부를 피해 숨어지내고 있다. 현재 미얀마 사람들은 다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고위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보다 조금 더 탄압을 받고 있을 뿐이다.”
-미얀마는 군부독재의 역사가 길었다. 쿠데타도 잊을 만하면 반복됐다. 저항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탄압의 강도도 높다. 그럼에도 저항을 2년 가까이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민들의 의지다. 군부정권 아래서는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의지. 미얀마는 1960년 쿠데타 이후 사회 전반이 정체되고 경제적 불황을 맞았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잘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73년만 해도 미얀마는 이웃나라인 태국보다 4배 정도 경제 규모가 큰 나라였다. 1990년대를 보면 태국이 미얀마보다 17배 정도 부유한 나라가 됐다. 지하자원이 풍족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군부독재 탓이 크다. 미얀마 시민들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한 것도 저항을 장기간 지속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 기간 시민들은 자유를 누렸을 뿐 아니라 경제적 성장도 누렸다.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있다면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접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자유를 통제하는 군부정권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NUG는 국제사회에서 군부를 대신해 미얀마를 대표하는 정부가 되는 것이 목표인가.
“국제정치를 보면 정부를 인정하기보다는 국가를 인정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받기엔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유럽연합(EU) 의회와 프랑스 상원 의회가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했다. 아세안(ASEAN)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외교부가 NUG와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공식 정부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소통이 필요할 때는 미얀마의 합법 정부로서 NUG와 접촉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도 NUG와 접촉했다. 국제사회의 인정이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미얀마 국내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나. 앞으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한국 전체적으로 보자면 시민들이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이번 방한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부로서의 행동은 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미얀마 뉴스를 많이 보도해준다면 한국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리라 믿는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직후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쿠데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실질적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NUG와의 관계 설정에도 소극적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외교부가 한차례 NUG 측과 접촉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마저 끊긴 상황이다.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는 성공적인가. 군부도 무장단체를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NUG와 협력 중인 소수민족 단체로는 카렌민족연합(KNU), 카친독립군(KIA), 카레니민족진보당(KNPP), 친민족전선(CNF) 등이 있다. 공식적 협력관계까지는 아니지만 가까이 교류하는 조직들도 많다. 어디라고 지금 얘기할 수는 없다. 군부와 접촉한 다른 소수민족 무장단체들도 있긴 하다. 그중에서 실제 군사력이 강하고 비중이 있는 조직은 샨족복원협의회(RCSS)와 신몬주당(NMSP) 2곳뿐이다. 이들은 같은 민족 내에서도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집권할 때도 전국휴전협정 등이 이뤄졌지만 소수민족이 요구한 자치와 연방제 전환 등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시각이 있다. NUG는 문민정부 시절보다 진전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나.
“NUG는 연방민주주의 원칙을 담은 헌장을 공포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 등이 참여하는 연합체인 민족통합자문회의와 함께 과도기 헌법을 준비 중이다. 이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신뢰를 얻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미얀마에서 연방주의라는 것은 과거에는 자유롭게 논의도 할 수 없었다. 1962년부터 2020년까지 쭉 그랬다. 2012년부터 2020년 사이에 중앙정부와 소수민족들이 평화협상을 전개했지만, 소수민족이 연방주의를 제안할 때마다 항상 군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자유롭게 논의할 수 없었기에 시민들에게도 연방민주주의를 알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한국 등 국제사회에 당부할 말이 있다면.
“군부 세력과 협력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싶다. 가능하면 경제적으로도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 미얀마 경제는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을 위해 시급한 인도주의적 지원도 군부를 통하지 말고 내륙 국경을 통과해 직접 해야 한다. 군부쿠데타 이후 많은 청년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졌으면 싶다. 끝으로 한국에서 사는 미얀마 시민이 많다. 비자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이들도 있다. 미얀마 정치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강제 출국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인도주의적 고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