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나무의 나라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목재를 수출한다. 산림은 캐나다인에게 부의 주된 원천이며 광범위하게 경제적·사회적 및 환경적 혜택을 제공한다.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바라보는 캐나다 땅은 끝없는 산림의 연속이다. 토론토의 피어슨공항을 향할 때는 무한히 펼쳐진 나무의 향연 속에서 숨은 도시를 찾아가는 것만 같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토론토는 도시에 나무를 심은 게 아니라 숲속 나무들 사이에 도시 건물들 하나하나를 숨기듯 심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토론토는 여느 큰 도시와 비슷하게 콘크리트 정글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도시 구석구석에 산책로와 자연녹지 그리고 정원이 어울려 있다. 토론토에서 한두시간 떨어진 근교에는 수풀이 우거진 국립·주립공원들이 많다. 실제로 도시를 설계할 때 자연친화적으로 계획해 울창한 나무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토론토 시민의 삶 속에서도 자연과 숲이 없는 삶은 생각하기 어렵다. 우거진 나뭇가지와 무성한 나뭇잎이 어우러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깨끗한 자연을 즐기고 사랑한다.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산책로나 공원들을 찾아다니며, 어쩌면 유럽인들이 이곳 북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을 자연의 태곳적 아름다움을 탐닉하곤 한다.
북미의 산림이 기후변화로 신음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뜨겁고 건조한 날씨에 빈번하게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여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선 무려 150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0번 이상의 대피 명령을 내렸다. 약 5700명과 2900개의 건물이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 여름철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던 지역이지만, 근래에는 산불의 크기가 남다르다. 멀리 있는 토론토까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발생한 산불의 스모그가 며칠 동안 뒤덮일 정도로 이번 산불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지난 3월에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 동해안 일대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도 비슷한 유형이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나 역시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었다.
북미대륙의 가뭄과 산불
최근 노아(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최소한 오는 6월까지 미국 본토의 절반 이상에서 가뭄이 계속될 것이며, 이로 인해 물 공급이 제한되고 산불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노아는 2013년 이후 가장 큰 봄 가뭄이 될 것이며, 미 대륙의 약 60%가 가뭄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대륙의 봄 가뭄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계속되는 평균 이상의 기온과 평균 이하의 강우량으로 상태 악화가 우려된다.
콜로라도강에 있는 거대한 2개 저수지 중 하나인 파월호가 50여년 전 글렌캐니언댐이 만들어진 이래 최저 수위로 떨어졌다. 이 수위는 댐에서 수력 발전을 중단하는 임곗값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가뭄이 일상적인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가뭄 예측 지수가 D2(심각한 가뭄) 또는 D3(극단적인 심각)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나왔다. 특히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Central Valley)의 최근 3년간 총 강우량은 1922년 기록 관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이 모든 것이 더 크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미국에는 매년 수천개의 산불이 수백만에이커(Acre)를 태운다. 화재는 전국 여러곳에서 이제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일상적인 연례행사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는 산불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던 지역으로 위협이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1984년부터 2018년까지 서부에서는 1000에이커 이상, 동부에서는 500에이커 이상인 화재 약 2만8000건을 다룬 연구가 최근 ‘사이언스어드벤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2005~2018년 산불이 20년 전에 비해 서부주에서 2배, 대평원주에서 4배 더 자주 발생했다. 산불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산불 피해면적도 확장됐다. 2018년에는 20년 전에 비해 서부에서 2.5배, 동부에서는 1.8배 증가했다.
연구팀은 직접적인 산불 변화의 원인으로 가뭄을 꼽았지만, 가뭄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인류에게 있다고 밝혔다. 인류가 초래한 지구온난화가 많은 지역을 건조하게 만든 것처럼 산불 화재의 84%는 인류에 의해 발생한 인위적인 요인이라고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앞으로 더 큰 화재가 닥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담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 보고서
유엔 산하 기후변화국제협의체(IPCC)가 최근 발표한 2022년 보고서도 암울한 기후변화의 위험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므로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줄이지 않으면 자연과 인류가 적응하는 능력이 곧 압도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시화된 위험으로, 2019년에는 폭풍, 홍수 및 기타 기상이변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에서 130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상승하는 더위와 가뭄으로 농작물과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이 기아와 영양실조의 위험에 처해 있다. 말라리아와 뎅기열과 같은 질병을 옮기는 모기가 새로운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 현재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이 적어도 일년 중 일정 기간 심각한 물 부족 현상에 직면해 있다.
특히 보고서는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기후변화 영향을 경고했다.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서 세계의 많은 지역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한계에 곧 직면하리라 예측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가 “실패한 기후 리더십에 대한 저주스러운 고발이자 인류가 겪는 고통의 지도”라고 표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가면 세계 농지의 약 8%가 식량 재배에 적합하지 않게 된다. 바닷속 산호초가 더 많은 백화현상에 직면해 70~90%까지 감소한다. 심각한 해안 홍수에 노출된 전 세계 인구수가 20% 이상 증가한다. 2도까지 올라가면 남유럽 인구 3분의 1 이상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8억~30억명이 가뭄으로 인한 만성적인 물 부족 현상에 직면한다. 많은 지역에서 작물 수확량과 어류 수확량이 감소한다. 3도 올라가면 극한 기상 현상의 위험이 이번 세기말까지 무려 5배 증가할 수 있다. 해수면 상승과 폭우로 인한 홍수는 오늘날보다 전 세계적으로 4배나 많은 경제적 피해로 이어진다. 육지에 있는 동식물종의 29%가 높은 멸종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증가한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지구 온도는 이미 평균 1.1도 상승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가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과학자들이 기후위기가 치명적이라고 말하는 임곗값이다. ‘1.5도’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구촌 국가들이 2050년까지 화석연료 배출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최근 치솟는 유가와 인플레이션 문제로 목표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이번 세기에 2도에서 3도 정도 따뜻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위기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기후위기에 맞서 변화할지, 안 할지는 더 이상 인류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인류가 원하는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변화를 이끌지, 아니면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보호장벽 없이 피해와 희생을 온몸으로 맞으며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갈지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이 바로 선택의 시간이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