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가 급등,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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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공급망 차질·지나친 유동성 확대가 원인

최근 국내외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고물가 흐름은 올해 들어 더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본격화 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오일쇼크’에 준하는 물가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로서는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줄이는 식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법 외에 달리 해결책이 없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금리 인상은 어렵사리 회복세를 유지하는 국내 경기를 다시 주저앉힐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3월 4일 통계청의 2월 소비자물가 동향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5.30(2020=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7% 상승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의 식료품 코너의 모습 / 연합뉴스

3월 4일 통계청의 2월 소비자물가 동향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5.30(2020=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7% 상승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의 식료품 코너의 모습 / 연합뉴스

심상치 않은 물가 흐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가 105.30(2020년=100)으로 집계되며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3%대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이후 5개월째 이어졌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를 넘긴 것은 2012년 2월(3.0%) 이후 처음이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2%였다.

최근 가팔라지는 물가 상승 흐름은 국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5% 오르며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의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5.6%)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7.2%로, 지난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원유 등 에너지 자원과 국제곡물가격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품목별로 보면 휘발유(16.5%)와 경유(21.0%), 등유(31.2%) 등 석유류 가격이 1년새 19.4% 뛰었다. OECD 회원국 평균 1월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6.2%나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전년 대비 24.1% 오르며 집계를 시작한 1996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기록적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망 차질에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2년차로 접어들면서 원유 등 원자재 중심으로 수급 불균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이에 적응한 소비자들은 점차 소비를 늘려간 반면, 코로나19로 노동력은 감소하고 투자는 계속 줄면서 늘어난 소비에 비해 감소한 공급량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 초기와 달리 지난해에는 많은 국가가 봉쇄 조치를 강하게 시행하지 않아 세계 시장 수요는 빨리 늘어난 반면 코로나19로 시장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 공급자들은 이에 맞출 만큼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요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줄지 않았는데 공급량 자체가 줄면서 국제적인 공급망 교란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급등한 해상 물류 비용은 이 같은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 상황을 방증한다. 지난 1월 미국 서부행 해상 수출 컨테이너 운임은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당 1600만4000원으로 지난해 1월 대비 227.3%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동부행(269.6%), EU행(236.8%), 중국행(134.2%) 수출 컨테이너 운임도 2~3배 이상 일제히 상승했다. 전 세계적인 수요 확대에 따라 컨테이너 물동량도 함께 늘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하역 노동자나 선원은 부족해지면서 배가 입항하지 못하고 항구 근처에 표류하는 등 항만 적체가 극심해져 가용 선박이 줄어든 탓이다.

글로벌 물가 급등, 어찌하오리까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반영되면

각국 정부가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오랜 기간 확장 재정정책을 펼치고 낮은 금리를 유지했던 것도 물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0.00~0.25%)에서 코로나19 유행 이후 2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도 1.25%로 2년 동안 1% 안팎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주 실장은 “시장에 유동성이 너무 풀려 있다 보니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을 비롯해 각종 물가가 상승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 지난달 하순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6일(현지시간) 자국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씨유 등 주요 농산물에 대해 수출 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와 밀 수출량이 각각 세계 3·4위에 달하는 세계 주요 곡창지대 중 한곳으로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되면 국제곡물가격 급등은 불가피하다.

러시아 역시 지난 8일 미국이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국 에너지 자원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린 것에 대응해 아예 “자국산 상품과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3대 산유국으로,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의존도는 4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속되면 원자재와 곡물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국제유가는 3월 이후 급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139.13달러까지 올랐다. 7일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한때 배럴당 130.50달러에 거래됐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수출 제한이 본격화될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 외에도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은 국내 일부 수입품목은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품목 중 러시아 의존도가 20% 이상인 품목은 118개에 달했다. 이중 명태(96.1%), 대게(100%), 대구(93.6%), 명란(89.2%), 북어(92.7%) 등 수산물은 수입량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3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를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올해 물가 흐름이 상고하저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당초 정부 전망과 달리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물가 상승 영향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제롬 파월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3월 2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향후 경제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매우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할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프리고로드노예의 태평양 항구에서 한 유조선 탱크에 액화천연가스가 실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러시아 프리고로드노예의 태평양 항구에서 한 유조선 탱크에 액화천연가스가 실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 상승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최근 물가 상승 흐름은 경기 침체까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슬로플레이션 가능성 점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지속돼 국내 수출 경기는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성장은 둔화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슬로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주 실장은 “원유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실물 경제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며 “슬로플레이션 국면이 지속되면 오일쇼크처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 불가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당장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제한적이다.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이로 인한 공급 충격인데 이는 사실상 정부의 통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리를 더 올려 유동성을 회수하는 것 외에는 현재로선 뾰족한 방안이 없다. 당장 연준은 오는 3월 15일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는데, 이를 제외하고도 연준이 올해만 4차례 이상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대내외적으로 한국은행에 가해지는 금리 인상 압박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 섣불리 금리를 올리다 보면 경기 침체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첫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후 조금씩 경기 회복세를 이어나가는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이 다시 국내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다. 김 교수는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과하게 올리게 되면 반대로 경기가 크게 침체될 수 있다”며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될 당시 일본과 완전히 같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과 더불어 다양한 보조적인 정책 수단을 조합해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당장 재정 지출을 줄이기는 어렵지만 추가적인 재정 투입을 줄이기 위한 부문별 지출 조정 등은 필요하다고 봤다. 주 실장은 “하반기 물가까지 불안한 상황에서 추가 재정이 투입되면 물가를 더 자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지출 규모는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되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추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수입선을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두바이유를 주로 수입해 사용하는데 브렌트유나 WTI 수입량도 늘려나가야 장기적으로 원자재 공급망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준 경제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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