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원인, 젤렌스키 외교정책 문제냐 미국과 러시아 충돌 문제냐 논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정쟁에 활용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비판하며 “(우크라이나는)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타국 대통령을 폄훼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 후보는 “제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사과했다.
윤 후보는 지난 3월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난 얼굴을 그린 귤 사진을 올리고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전쟁을 가볍게 본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윤 후보 측은 “오렌지 혁명을 배경 삼아 우크라이나를 응원한다는 의미로 실무자가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렌지 혁명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 러시아 세력과 친 서방 세력의 대결에서 후자가 승리한 사건을 지칭한다. 윤 후보는 ‘자유세계’, ‘동맹’ 등을 강조하며 이 후보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후보들의 말과 행동은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들의 시각은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국제정치의 두가지 방법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행위자-구조’의 문제다. 이 후보는 ‘최고정책결정자 개인의 특성’을, 윤 후보는 ‘국제정치의 구조’를 강조한다. 이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입하면 전쟁의 근본 원인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외교정책 문제’냐, ‘유럽의 안보 질서를 두고 충돌한 미국과 러시아의 역학 구도냐’가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는 것은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행위자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그가 키이우(키예프)에 남아 항쟁을 이어가면서 지지로 바뀌고 있다. 사실 전쟁 초기 가해진 비판은 그가 정치경험이 없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점에 맞춰지며 본질과 비켜나 있었다. 실제로 젤렌스키의 외교정책은 전임 대통령처럼 친서방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역시 2004년 오렌지 혁명, 2013년 유로마이단 등을 통해 친서방 정책 지지의사를 밝혔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신중히 다뤄야 할 위험요인은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세력 간의 다툼으로 표면화됐다. 돈바스 지역에서의 무력사용 중단과 광범위한 자치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민스크 협정’ 위반 문제가 제기됐다. 또 분리주의 세력인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 지도자들이 러시아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언제든 우크라이나로 밀고 들어올 수 있는 빌미를 가진 상황이었다. 정부 관료집단의 부정부패가 심해 지지율도 높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소재 여론조사업체 레이팅그룹의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젤렌스키는 전쟁 직전인 지난해 12월까지 30%대 지지율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젤렌스키는 지난해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나토 가입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를 공급하고 조속한 나토 편입을 추진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실 우크라이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이미 있었다. 1994년 12월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대신 ‘미국·영국·러시아 등이 우크라이나 영토의 독립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를 병합했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위한 군사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22년 우크라이나는 다시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다. 나토 가입을 지지했던 미국은 이번에도 군사적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역대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자들이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결정을 한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젤렌스키는 2018년 취임 당시 “이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더 이상 울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3년여 만에 우크라이나는 전쟁터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종료된다면 키이우에 남은 젤렌스키는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원장은 “지도자는 전쟁을 미리 억제해야지, 국민이 죽고 난 뒤에 전후 협상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외교정책 결정에서 ‘최고정책결정자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조 우크라이나 사태를 국제정치 구조에만 초점을 맞춰 살펴볼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강대국들 사이에 ‘낀 국가’ 중에서도 특별하다. 국제정치학자 즈브그뉴 브레진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커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국가를 ‘지정학적 중추국’으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함께 브레진스키가 분류한 유라시아의 5대 중추국 중 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지형적 장애물 없이 평원으로 연결된다. 대륙을 통해 러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안보적 급소인 셈이다. 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한 강력한 동기다. 미국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는 특별하다. 일찍이 미국의 세계경영전략은 ‘유라시아’ 대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체스라는 전략 게임을 하듯 유라시아 대륙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사태를 통해 약화된 나토의 결집력을 복구하고,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의 경제적 탈동조화(디커플링)로 이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전쟁은 러시아는 안보적 위협을 해결하고, 미국은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얻는 ‘윈윈게임’ 구조로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제정치 구조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실제로 전쟁의 발생, 대응, 수습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정책 결정에서 국제정치 구조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함의 이번 사태를 분석하는 데는 행위자와 구조를 동시에 살피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교정책을 결정할 때는 어느 한쪽의 시각이 더 반영될 수밖에 없다. 행위자가 국제정치 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는 ‘상향식 접근법’이다. ‘균형 외교’, ‘전략적 모호성’, ‘편승’ 등의 외교정책을 활용해 국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유형이다. 반면 구조가 외교정책을 사실상 결정한다고 본다면 이는 ‘하향식 접근법’이다. ‘한미동맹’ 강화만이 국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유형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상대적으로 이 후보는 상향식 접근법, 윤 후보는 하향식 접근법을 중시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답은 없다. 외교적 위기를 타개하는 데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한지, 구조에 충실히 편승하는 것이 중요한지 유권자의 선택만 남았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