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O에 짙게 드리운 미중 갈등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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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관회의’ 개최로 관심 커진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도 각축전

‘블루 헬멧’. 세계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트레이드마크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한국 정부가 파병한 레바논 동명부대, 남수단 한빛부대 대원들도 하늘색 빛깔의 베레모 또는 헬멧을 쓰고 현장을 누빈다.

12월 7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개회식이 끝난 후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 내외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 7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개회식이 끝난 후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 내외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PKO는 유엔의 정신과 존재 의의를 물리적·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측면이 있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는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다짐을 바탕으로 창설됐다. 하지만 강대국의 이익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국제규범 이행을 강제할 권능도 없고, 덩치만 커 버린 비효율적인 관료 조직인 유엔에 대해서는 좋게 말하면 ‘개혁’, 심하면 ‘무용론’까지 수시로 고개를 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분쟁 또는 재난 지역에서 민간인 보호, 치안 유지, 전후 복구 등의 일을 하는 평화유지군은 여전히 유엔이 필요하다는 쪽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지난 12월 7~8일 서울에서 열린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장관회의는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이 보다 효과적인 PKO 활동을 위해 정치적 의지를 모으고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는 자리였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최대 규모 장관급 회의체인 이 회의를 주최한 한국도 기술·의료 분야에서 기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PKO 분야에도 미중 대립의 그림자가? 이번 PKO 장관회의에서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PKO 분야도 미중 갈등이 벌어지는 영역의 하나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실존적 위협’으로 느끼고 본격적으로 견제 구상을 다듬기 시작한 시점을 통상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본다. 거칠게 말하면 지난 10여년간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관련된 영역에서도 ‘쇠퇴하는 미국, 추격하는 중국’의 구도가 나타났다.

중국은 2010년대 이후 급속도로 PKO에 대한 기여를 늘려왔다. 2020~2021 회계연도 기준 중국은 유엔 PKO 분담금 전체의 15.21%를 냈다. 미국(27.89%)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중국은 높은 재정 기여도 못지않게 병력도 대규모로 파병하고 있다. 유엔 평화활동국(DPO) 통계를 보면 지난 10월 31일 현재 중국은 2256명(37개 미션)을 파병했다. 이는 세계 10위 규모로, 특히 미·영·프·러 등 나머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보낸 PKO 병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나 많다. 중국은 또 상시 파병이 가능한 8000여명 규모의 평화유지군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이 PKO 내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다소 소극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장 많은 PKO 분담금을 내고 있다. 그러나 PKO 병력 기여는 유엔 전체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고, 미국의 유엔정책에서도 PKO 활동은 후순위로 밀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PKO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반면 중국은 2015년부터 별도의 유엔평화발전기금을 출연해 PKO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해오고 있다.

유엔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에 “고맙습니다 중국”이라며 중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예산에 두 번째로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유엔 PKO 홈페이지

유엔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에 “고맙습니다 중국”이라며 중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예산에 두 번째로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유엔 PKO 홈페이지

중국의 셈법은? 경제적 이익 추구 혹은 미국 견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주의’를 내세워 유엔 등 다자 기구에서 물러나자, 중국은 유엔의 각 분야에서 재빠르게 미국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국제안보 공급자’를 자처하며 PKO 활동에 적극 뛰어든 데는 지정학적·경제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리처드 고완 국제위기그룹 유엔 국장은 지난해 브루킹스연구소 기고문에서 “서구 외교관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유엔의 초점을 줄이는 방식으로 평화유지활동을 재구성하려 한다고 본다”며 “중국이 아프리카의 친중 지도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도 우려한다”고 전했다.

평화유지군의 약 80%는 아프리카에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를 통해 세력을 과시해왔다. 일각에서는 자국 자산 보호를 위해 PKO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미국외교협회(CFR)에 따르면 2012~2018년 중국이 PKO에 참여한 13개국 가운데 9개국은 중국이 파병하기 1~3년 전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한 곳이었다.

중국의 ‘다자주의’ 강조가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행보인 것처럼 PKO 분야에서 중국이 입지 강화를 추구하는 것 역시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지역 정세 긴장이 고조된 지난 9월, 중국은 아프간과 인접한 몽골, 파키스탄, 태국과 함께 처음으로 다국적 평화유지군 훈련을 했다.

한국과 PKO 30년 전 유엔에 가입한 한국은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 파견을 시작으로 총 7개 부대가 PKO 활동에 참여했다. PKO 분담금 규모에서도 올해 10위(2.26%)를 기록했다. 한국의 PKO 장관회의 유치는 그간의 공헌을 인정받은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의 첫째 날인 지난 12월 7일 영상 축사에서 한반도 종전선언 구상을 재차 피력했다. 마침 미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발표한 날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중 정상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종전선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는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PKO 활동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한국의 정상이 한반도 문제를 넘어 보다 넓은 시야에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약속할 수는 없었을까.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전면 화상 형식으로 치러진 이번 회의에서 각국이 내건 약속이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김유진 국제부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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