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전단계에 입각해 새로운 발전 이념과 구도를 구축하고, 국내 대순환을 중심으로 국내외 쌍순환을 촉진할 것이다. 이는 중국의 이익뿐 아니라 세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 중국의 국가정책방향 등을 결정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13기 4차 회의가 지난 3월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리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11일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경제정책방향 등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는 한 해 동안의 국가정책방향과 예산 등을 심의·의결하는 중요한 자리다. 올해 양회(3월 4∼11일)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논의된 ‘홍콩 선거제 개편안(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결의안)’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향후 5년간의 경제·사회 발전 계획을 담은 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장기 비전 등 중장기 경제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의미가 더 컸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통적으로 3월 초 개최하던 양회를 5월로 미뤘고, 대내외적 불확실성 때문에 경제성장률 목표도 제시하지 못했던 중국이 올해 코로나19 방역 성공과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 속에서 어떤 경제 목표를 내놓을지도 관심사였다.
질적 성장과 안정에 방점
당초 올해도 중국이 양회에서 구체적인 경제성장 목표를 제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중국은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6% 이상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이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8% 안팎으로 전망한 것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미·중 갈등 등 외부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는 동시에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과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전의 5개년 경제발전 계획과 달리 이번 14차 5개년 계획에서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올해 6% 이상 성장 목표를 낮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세계경제 회복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며 “실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겠지만 빨리 간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올해 경제성장 기반을 확고히 하고 질적 성장을 추진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면에서 더 좋다”고 말했다. 탕둬둬(湯鋒鋒)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지난 12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최한 양회 관련 세미나에서 “2000년대 초부터 장기간 고속성장과 양적 성장을 추구하던 시기 중국은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는 매우 높게 설정했던 때도 있었다”며 “올해 성장률 목표를 6% 이상으로 제시하고, 14차 5개년 계획에서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양적 성장보다는 경제 체질개선을 통한 질적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정책기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가 끝난 지난 3월 11일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내수 확대와 기술 자립
중국의 올해 경제 목표와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내수 확대와 기술 자립이다. 이들 요소를 미·중 갈등 속에서 장기적으로 경제 구조와 체질을 개선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수 확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5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처음 ‘쌍순환(국내외 이중순환)’ 전략을 언급했을 때부터 강조해온 것이다.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올해는 내수 확대를 통한 쌍순환 발전전략 추진의 원년이 되는 셈이다. 내수 중심의 쌍순환 전략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 등 변화된 외부 환경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개혁개방을 통한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고, 대외 환경의 리스크가 커지자 내수 시장에서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것이다. 탕 연구원은 “중국이 과거에도 내수 확대를 얘기해 왔지만 쌍순환 전략 하에서의 내수 확대와는 차이가 있다”며 “과거에는 외부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았고 대중 친화적이었지만, 지금은 대중 압박이 커지고 글로벌 환경이 달라졌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내수 진작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은 얼어붙은 소비심리와 빈부격차,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등이 중국의 내수 확대 계획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국민의 1인당 연간 가처분 소득은 3만2189위안(약 560만원)으로 2019년보다 4.7% 늘어난 반면 1인당 연간 소비지출액은 2만1210위안(약 369만원)으로 1.6% 줄었고, 전체 소매판매액도 3.9% 줄어든 상황이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중국의 가구당 소득증가율은 연소득 5만위안(약 870만원) 이하 저소득 가구에서 가장 낮았고, 연소득 30만위안(약 5220만원) 이상 가구에서 가장 높았다”면서 민간소비 확대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과학기술 발전은 내수 확대와 함께 중국이 악화된 대외 환경 속에서 경제 자립과 안정적 발전을 꾀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중국은 올해 양회 정부 업무보고에서 연구개발비 지출 규모를 지난해보다 1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14차 5개년 계획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연평균 7% 이상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신소재와 중대기술장비, 스마트 제조·로봇 기술, 항공기 엔진, 신에너지 차량과 스마트카, 첨단 의료장비·신약 등 8대 전략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했다.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춰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2035년을 목표로 한 장기 발전 계획에서는 인공지능과 양자통신, 집적회로, 뇌 과학, 유전자·바이오 기술, 임상의학·헬스케어 등 7대 첨단 과학기술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리 총리는 이번 양회에서 과학기술 혁신과 투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10년 동안 칼 하나를 가는 정신으로 핵심 영역에서 중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