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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거제도는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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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과 선거 결과 불일치 발생… 제도 바꿀 헌법 개정 쉽지 않아

“투표는 끝났지만,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말장난 같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잘 설명한 표현이다.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트럼프 측은 바이든이 승리한 일부 경합 주를 중심으로 대선 불복 소송에 나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거검표원들이 대선용 우편투표 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거검표원들이 대선용 우편투표 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복잡한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선거인단제도 때문이다. 대통령 직선제에 익숙한 사람들 눈에 선거인단제도는 ‘비민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국민주권’이나 ‘표의 등가성’ 원칙에는 위배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선거제도 역사와 배경을 보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선거인단제도가 유지돼 왔음에도 미국 대통령선거는 당일 밤 혹은 이튿날 아침에 승패가 결정됐다. 선거 불복이 현실화된 이번 선거가 특이하다는 것이다.

간접선거

미국 연방헌법 제2조1항은 대통령 선출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각 주에서 뽑힌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연방대통령이 선출된다. 총 50개주에 배분된 선거인단 수는 연방의회 하원의원 의석수와 상원의원 의석수를 합친 숫자다.

상원의원은 모든 주가 2명씩으로 같다. 이에 따라 상원의원은 총 100명이다. 반면 하원의원 의석수는 인구수 비례에 따른다. 즉 인구가 많은 주는 하원의원 의석수도 많아진다. 미국 하원의원은 총 435명이다. 여기에 예외가 한가지 있다. 수도인 워싱턴이다. 50개주에 속하지 않고 ‘연방직할시’로 운영된다. 대통령선거에서만 특별히 3명의 선거인단을 부여받았다.

계산해보면 최종적으로 꾸려지는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이다. 미국 연방헌법에 따라 선거인단 총수의 과반수를 획득하면 대통령에 당선된다. 과반 270명이라는 이른바 ‘매직넘버’는 이렇게 나오게 된다.

문제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을 택하다 보니 민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지율과 선거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역사에는 이런 경우가 총 네 번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 트럼프의 대통령선거다. 힐러리는 트럼프보다 약 300만표를 더 받았지만 선거에서 졌다.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애초에 왜 간접선거를 택했을까.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규모가 작은 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선거인단 방식을 택하면 인구가 적어도 주의 독립성과 영향력을 지킬 수 있다. 단순 인구비례로 뽑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역구 선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통신망이 발달하지 않아 미국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대통령 선출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또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도록 해 대통령을 독립기관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반영됐다. 연방의회의 의원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독립된 선거인단제도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안이었다. 이에 따라 선거날 유권자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선거인단에게 투표한다. 이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은 올해 기준 12월 14일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투표를 한다.

[표지 이야기]미국 선거제도는 바뀔 수 있을까

승자독식 방식

미국의 48개주는 선거인단이 그 주에서 유권자의 표를 가장 많이 획득한 대통령 후보에게 모두 투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승자독식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강제사항이 아니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 등 2개주는 선거인단 2명을 최다 득표한 대통령 후보에게 준다. 나머지는 각각의 하원 선거구에서 승리한 대통령 후보가 선거인단 1명씩을 가져간다.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은 전통적인 공화당 성향 지역인 네브래스카주에서 선거인단 1명을, 트럼프는 메인주에서 1명을 획득했다.

승자독식 방식의 문제는 과도한 사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과반을 넘으면 나머지 49.9%의 의사는 무시될 수 있다. 이는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또 사회 내 유색인종, 제3정당 같은 소수자들의 의사도 소외시킨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김지윤 정치학 박사는 저서 <선거는 어떻게 대중을 유혹하는가>에서 미국 선거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미국은 연방국가로서 주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를 동시에 존중하는 간접선거제도의 장점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의 헌법 개정은 먼저 상·하원 양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수정헌법안에 찬성해야 발의된다. 이를 통과하면 4분의 3이 넘는 주에서 비준해야 비로소 수정헌법이 통과된다. 50개주 중에서 38개주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조건이다.

문제는 주마다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각 주에 배분되는 선거인단 수는 인구수를 고려한 하원의원 의석수로 규모가 결정되지만, 그 규모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의 유권자 수는 와이오밍주의 유권자 수보다 약 55.6배 많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의 선거인단은 55명, 와이오밍주는 3명으로 18배 차이다. 즉 와이오밍주 유권자들이 과대대표되고 캘리포니아주 유권자들은 과소대표된다. 선거인단이 과대대표된 주들은 인구수에 정확히 비례하는 수정헌법안에 찬성할 이유가 없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은 코로나19로 폭증한 사전투표다. 특히 우편투표를 두고 주마다 규정이 다른 것이 논란이다. 하지만 이는 ‘간접선거’, ‘승자독식 방식’과 같은 선거인단제도와는 다른 얘기다. 미국이 선거인단제도를 계속 운영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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