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트럼프 뽑은 것은 엉뚱했다” 미국인들 자각
미국 대선이 투표 종료 24시간이 지나도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걸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대선 역사상 최고의 득표로 제46대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6년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과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체 득표에서는 민주당 힐러리 후보에게 300만표가량을 뒤지고도 선거인단에서는 306 대 232로 신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불리는 러스트 벨트(제조업 기반을 둔 중서부 주)인 위스콘신주,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간발의 차로 승리함으로써 막판 역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막말을 포함한 트위터 정치, 러시아 스캔들 등 부패 의혹, 반 이민정책, 미·중 관계 악화 등 미국 자국 우선주의로 인한 외교 갈등, 코로나19 대응 부실 등 수많은 문제점과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국내외에서 고립을 자초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수많은 여론조사 기관과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바이든의 승리를 예상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2016년의 뼈저린 오류와 실패 경험과 소위 ‘샤이 트럼프’라고 불리는 숨겨진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번에도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점과 자질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진행되는 여느 선거와는 다른 상황에서 진행되었기에 사전투표와 우편투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또 개표상황도 현장투표가 먼저 진행되고, 우편투표는 추후에 진행되는 주들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현장투표에서는 트럼프 지지세가 많고 우편투표에서는 바이든 지지세가 많아 개표 초반에는 트럼프가 두 자릿수 이상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종반에 이르면서 대도시 투표함과 우편투표함이 개표되면서 바이든이 대거 역전하거나 표차를 줄여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의 숫자인 538석을 주별로 인구수와 독립적인 주로서의 위치를 감안해 나눈다. 승자독식 주의가 적용돼 한 주에서 한표라도 더 많이 나온 후보가 그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의 수 전체를 확보하게 된다. 대부분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과 공화당 강세지역으로 나뉘지만,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나 공화당 후보를 넘나들면서 지지 후보를 당과 상관없이 바꾸는 소위 ‘스윙’ 주가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주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다. 특히 이 주들은 지난 2016년 트럼프 후보가 모두 승리하면서 대선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2020년에는 이 주들의 상당수가 바이든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2020년에는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어떻게 많은 표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첫째, 역대 최고의 투표율이다. 역대 미국 대선 투표율은 50%대다. 2016년 59.2%였고, 2008년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도 57.1%였다. 이번에는 지난 대선보다 무려 3000만명이나 많은 1억6000만명이 투표해 1900년 이후 최고 투표율인 66.8%를 기록했다. 바이든은 역대 최고의 득표인 7200만표 이상을 득표했다. 이는 힐러리 후보가 거둔 6500만표보다 700만표 이상 많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2016년 자신이 득표한 6300만표보다 500만표 많은 6800만표를 얻었지만, 바이든보다는 400만표 이상 적다. 전반적으로 반트럼프 전선의 강화 현상이 깊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은 고령, 성희롱 및 아들 스캔들, 미지근한 중도적 태도 등으로 유권자들을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매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반트럼프 전선의 강화는 이러한 바이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유입했다. 예를 들면 대학생 등 젊은 유권자들이 4년 전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로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다. 트럼프가 막판 유세와 SNS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했지만, 그 결집도가 지난 대선 만큼은 강하지 못했다.
둘째, 백인 남자들의 트럼프 지지세의 약화다. 지난 대선에는 고졸 이하의 백인 남성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는 그 지지세가 8~10%포인트 줄어들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이었던 저학력 백인 남성들의 지지세 약화가 트럼프에게는 뼈아픈 패배의 원인이 됐다.
바이든 역대 최고 득표
셋째, 이와 관련해 소위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미시간주, 위스콘신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트럼프는 지난 대선과 달리 패했다(11월 5일 기준). 바로 저학력 백인들의 지지세 약화가 주원인이다. 4년 전 이들은 높은 실업률, 침체한 지역경제, 빈부격차 확대 등 기존의 정치 질서에 대한 반감과 분노로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지난 4년간 트럼프가 이들의 경제적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이들에게 트럼프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미국의 실업률은 7.9%를 기록하고 있고, 실업자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미 대선은 경제상황에 심판의 성격이 강한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트럼프의 직접적인 실정은 아니더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넷째, 소위 남부 지역이라고 할 수 있고,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애리조나주, 조지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도 트럼프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는 애틀랜타 등 대도시 흑인을 중심으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기폭제로 높은 정치 참여 현상이 나타나 이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애리조나주는 히스패닉이 많은 주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이 히스패닉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이번에도 대도시는 민주당, 농촌은 공화당이라는 공식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지난 대선 때 상당수의 도심 외곽 거주자인 백인 중산층 거주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이번에는 바이든에 대한 지지가 증가했다. 즉 중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지난 4년 동안 트럼프의 실정을 심판했다는 얘기다. 특히 바이든 지지자의 80%가 코로나19 대처가 미국의 현안 중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답한 것은 트럼프의 코로나19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중산층의 바이든 지지 선회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지난 2016년 대선은 역사상 가장 특이하고 이변인 선거였다. 세계 최고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빈부격차와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해 보려고 광대와 같은 아웃사이더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혔지만, 그것이 엉뚱한 행위였다는 것을 미국민은 자각하기 시작했다. 2020년 대선은 그 자각이 만들어낸 첫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승권은 미국 미주리대 한국학 연구소장, 게이트웨이 코리아재단(Gateway Korea Foundation)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8년부터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유승권 미국 미주리대 한국학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