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포스트 코로나를 묻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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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급박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했다. 전 세계적 대역병이 결국 우리가 불러들인 재앙이며, 무한히 질주하는 욕망을 다스리고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팔렸다. 잠시나마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자연을 떠나 이어질 수 없으며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 같았다. 기후위기라는 먹구름이 머리 위에 드리운 지도 수십년, 인류는 대책 없이 낭떠러지 쪽으로 한발 한발 밀려왔다. 이제는 살아가는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도 될까 말까 한 형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돈을 손에 쥔 자들은 여전히 위기 자체를 부정하고, 각국 정부는 파국을 면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코로나19는 엄청난 불행이지만, 이런 비상사태가 충격요법이 되어 위기에서 헤어날 수 있다면 오히려 약이 되리라 믿었다.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미국 오리건주 탤런트에서 수색구조팀이 수색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미국 오리건주 탤런트에서 수색구조팀이 수색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은 “올해 여름”

유행이 반년 넘게 지속된 지금, 상황을 돌아보면 절망감이 든다. 사람들은 당장 역병을 물리칠 방법에만 흥미가 있을 뿐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은 자취를 감추었다. 치료제와 진단키트 제조사 주가는 하늘을 찌르는데, 공공의료 분야의 의미 있는 변화는 눈에 띄지 않고, 백신은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다. 병원체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한 책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위기를 이용해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와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근거 없는 전망서들이 인기다. 이 판국에 자기를 더욱 채찍질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쓴웃음이 날 뿐이다.

올해도 기상이변이 많았다. 중국은 폭우가 한달 넘게 이어지며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세계 최대라는 싼샤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우리도 물난리로 곳곳이 침수되고 사상자가 났다. 사람들은 몇주간 비가 이어지는 건 처음 본다고 혀를 찼다. 물난리가 정리되는가 싶더니 초대형 태풍이 연달아 불어닥쳤다. 물난리만 난 것이 아니다. 불난리도 났다.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언제였을까? 쉬운 질문이다. 2015년 이후 폭염은 거의 매년 기록을 갱신하므로 항상 “올해 여름”이 답이다. 2020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반구의 여름 기온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8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기온은 관측 이래 최고라는 섭씨 54.4도를 기록했다. 북미 대륙의 서해안은 울창한 숲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그만큼 탈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온건조한 여름이 이어지니 아름드리나무들도 건강을 잃고 우뚝 선 채 장작이 되어간다. 산불이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사람이 아무리 주의해도 소용없다. 자연적으로 벼락이 떨어져 건조한 숲에 불을 댕기는 일만큼은 막을 도리가 없다.

미국은 큰 나라다. 면적으로 남한의 거의 100배다. 그 큰 땅의 서해안이 온통 불길에 휩싸였다. 비행기로 9~10시간 걸리는 런던에서 태양이 붉게 보였다고 하니 대기오염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빠른 대응 덕에 인명 손실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지만, 나무도 생명이다. 몇십억그루가 불에 타 죽었다. 동물들의 희생 역시 헤아릴 수 없다. 사람에게는 장기적인 영향이 찾아올 것이다.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은 수입 감소와 복지 축소를 통해 필연적으로 취약계층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막강한 군사력을 쥐고 자국의 고통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나라다. 대화재가 어디 남의 일이겠는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나오미 클라인이 지적했듯 화산 폭발 등으로 특정 지역에 태양 복사가 줄어들면 이듬해부터 지구 반대편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온다. 남한 면적의 10%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며 우주에서도 연기와 불길이 보였다는 대화재의 영향이 화산 폭발만 못 할 리 없다. 2년째 불길을 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들어 가는 아마존 화재 역시 피해 면적이 비슷하다. 연초에 10억마리의 동물을 희생시킨 호주 대화재는 남한 면적보다 더 넓은 땅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내년부터 지구 곳곳에 가뭄이 들고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 고통은 빈곤국의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국가 간 갈등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 대홍수, 대화재는 모두 같은 이유

2019년 스위스 취리히 공대에서는 나무를 심어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나무가 3조그루 정도인데, 1조그루를 더 심으면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3분의 2를 흡수하여 온난화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속수무책으로 진행되는 기후위기에 맞서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인류는 나무를 더 심어도 모자랄 판에 매년 어마어마한 화재로 있는 나무마저 까먹는 중이다.

‘생전 처음 보는’ 날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겨울은 점점 추워지며, 태풍은 점점 커졌다. 거기에 미세먼지와 폭우와 폭설과 돌풍과 우박과 가뭄과 기근이 더해져도 ‘뉴노멀’이라며 와중에 돈 벌 궁리만 할 것인가. 코로나19 역시 처음 보는 전염병이지만,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환경파괴가 계속되어 야생동물이 계속 서식지를 잃는다면 새로운 전염병이 계속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까? 그때마다 포스트 전염병 시대에 적응하는 법과 새롭게 돈 벌 기회를 떠드는 사람을 쫓아다닐 것인가?

‘생전 처음 보는’ 일이 이토록 자주 찾아오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 중국과 우리의 대홍수, 미국과 호주와 아마존의 대화재가 사실은 한 가지 사건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두 같은 원인이 다른 얼굴로 나타난 데 불과하다. 사실 누구나 아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를 뿐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결집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일상 속에서 쉽게 기후행동을 실천할 길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하지만 ‘기후악당’ 국가인 우리는 나무 한그루도 심지 않으면서 어린 학생의 표창장과 군인의 휴가를 두고 입씨름만 한다. 국회를 없애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로나19는 언제 물러갈까?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이번을 넘겨도 조만간 똑같은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이겨내도 다른 전염병이 반드시 찾아온다. 싼샤댐은 올해를 견뎠지만 내년, 내후년에 점점 큰 홍수가 온다면 그 역시 알 수 없다. 이게 모두 한 가지 문제라면 차라리 잘되었는지 모른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될 테니까. 다만 ‘생전 처음 보는’ 비상사태를 극복하려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를 묻지 마라. 예언자들을 믿지 마라. 그건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손에 달린 일이다.

<강병철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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