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도 비껴가지 않았다. 광산개발과 삼림 벌채, 산불, 살해 등 원주민들은 그동안에도 터전을 공격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다. 코로나19가 퍼진 후 원주민 공동체는 “이대로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지난 5월 국제 청원운동 사이트인 아바즈닷오르그(avaaz.org)에 올린 글에서 “원주민들을 잃는 것은 브라질의 큰 비극이자 인류의 엄청난 손실”이라고 밝혔다. 살가두는 브라질 정부와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면서 이렇게 글을 맺는다. “시간이 없습니다.”

7월 8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벨로리존치에서 파탁소족 부족장인 아요(왼쪽)와 그의 부인이 마스크를 쓰고 AFP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중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 AFP연합뉴스
브라질원주민연합(APIB)의 최고 책임자 다나맘 투사는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에 “우리는 절멸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벨로 몬테 댐 건설 반대 운동의 중심이었던 폴리뉴 파이아칸 카야파 부족장(67)을 비롯해 다수의 원주민 원로들이 지난 6월 17일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7월 21일 브라질 남동부 리우데자네이루주 코스타 베르지 지역에서 또 한 명의 원주민 지도자가 사망했다. 약 350명의 사푸카이 과라니족을 이끌어온 도밍구스 베니치 부족장(68)이 코로나19 증세를 보인 후 병원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난 것이다.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사푸카이 과라니족 주민 중 88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족민의 25%에 해당한다.
콜롬비아·페루와 국경을 접한 아마조나스주 열대우림에 모여 사는 코카마 부족의 지도자인 에드니 코카마는 코로나19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최근까지 코카마 부족 중 58명이 코로나19로 숨졌다. 그는 7월 19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할아버지는 코카마어 사전을 만들고 있었다”며 “우리는 많은 지식을 잃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절멸하고 있다”
브라질 중서부 마투그로수주의 원주민 샤반치족의 지도자인 크리산토 루드조 체레메이와도 얼마 전 부모와 작별했다. 그는 7월 13일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가 통제 불능이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샤반치족을 단번에 사라지게 할 ‘폭탄’처럼 느껴진다고도 밝혔다. 그는 “부모만 잃은 게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도 함께 잃었다”고 말했다.

브라질 북부 파라주 산타렝에서 7월 19일 원주민 보건 특별사무국 소속 직원(오른쪽)이 아라피움족 원주민을 상대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원주민 권리단체인 사회환경연구소(ISA)에 따르면 지난 7월 19일 기준 브라질 원주민 1만55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최소 523명이 사망했다. 305개 부족 중 110여개 부족에 코로나19가 퍼졌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7월 20일 화상 브리핑에서 전 세계 원주민 사회가 코로나19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샤반치족에 코로나19를 옮긴 사람은 마을 주변의 콩 농장을 오가는 트럭운전사였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 중에 원주민 거주지에 대한 정부의 보호 조치는 소홀했다. 광산 개발업자나 삼림 벌채꾼들의 불법 행위를 단속하는 요원들은 봉쇄령에 발이 묶였다. 생계가 어려워진 원주민들은 당국의 보조금을 받으러 시내로 나가곤 했다. 이렇게 외부와의 접촉이 늘면서 코로나19가 원주민 마을로 들어왔다. 원주민들은 물리적 거리 두기가 어려웠고, 병원은 멀리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보건부 산하 ‘원주민보건특별사무국(Sesai)’ 직원들이 광범위하게 코로나19에 노출됐고, 이는 원주민 사회에 바이러스가 더 빠르게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7월 중순까지 특별사무국 직원 1000여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베네수엘라와의 국경 지대에 터를 잡고 있는 야노마미족을 돌보는 약 20%(207명)의 의료진이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
원주민 거주지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열악했다. 브라질 인류학자인 루이자 가르넬루는 뉴욕타임스에 “전염병이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원주민 건강관리에 대한 예산 투입은 충분하지 않았다. 의료자원이 없으니, 전염병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증세를 보이다 7월 19일 병원에서 숨진 사푸카이 과라니족 도밍구스 베니치 부족장 / brasil de fato 홈페이지 캡처
브라질은 나라 전체가 심각한 보건위기를 맞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독감 같은 것”이라며 코로나19를 과소평가했고,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채 경제활동 재개를 주장해 주지사들과 부딪쳤다. 대통령 본인이 7월 7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시민은 보우소나루 지지자와 반대자로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는 사이 브라질은 코로나19 누적 환자와 사망자 모두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익숙한 위기… “우리 모두에 영향”
브라질 연방 대법원은 7월 8일 아마조나스주와 호라이마주에 있는 야노마미 원주민 거주지역에서 불법 광산개발업자들을 내쫓고, 코로나19로부터 원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라고 국방부·법무부·환경부에 명령했다. 대책 마련 기한은 30일이다. 앞서 브라질 의회도 원주민들에게 깨끗한 물과 소독제, 병상을 제공하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7월 8일 이 법안을 거부했다. 사회환경연구소(ISA)는 “대통령의 법안 거부는 대량학살에 준하는 범죄”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월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후 아마존 삼림 벌채가 크게 늘었고, 원주민 살해사건도 빈번해졌다. 현 정부로부터 즉각적인 보호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원주민 공동체는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SOS 아마조니아’ 등 원주민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조직들이 야전병원 설립, 식량 배급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비정부기구(NGO) 등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의 열대림 정책국장인 스티브 슈워츠만은 7월 21일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15세기 유럽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수많은 원주민이 죽었다. 그들의 후손은 1960년대 이후 개척자들로부터 아마존 숲을 지켜냈다. 광산개발과 삼림 벌채로 아마존 숲이 사라지는 것, 코로나19로 원주민들을 잃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김향미 국제부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