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줄리아니 전 미국 뉴욕시장(74)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트러블 메이커’로 떠올랐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 법무팀에 가세한 줄리아니 전 시장은 당초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는 특검 수사를 넘어 북한과 미국의 외교관계, 대기업 간 인수·합병 등 뉴스가 될 만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발설하고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미국 뉴욕시장이 2017년 1월 뉴욕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 / 뉴욕|AP연합뉴스
미국 정치평론가들은 줄리아니 전 시장의 대통령 법무팀 합류가 그 자신에게 ‘양날의 칼’로 돌아갈 도박에 가깝다고 전망하고 있다. 백악관에 선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 변호사로서 그의 영향력을 키워줄 수도 있지만, 그의 경솔한 언행이 그간 쌓아온 명성과 평판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수십 년 지기, 여러 모로 닮은꼴
연방검사 출신인 줄리아니 전 시장은 1994~2001년 뉴욕시장직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재임 중인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그 해 잡지 <타임>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고, 이듬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경선에 도전했고 2012년 대선 때도 후보군으로 분류됐으나 ‘큰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 대신 그와 친분이 있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돕는 역할이 그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당선인의 비공식 사이버 보안 자문으로 선임됐고, 지난 4월 19일 대통령 법무팀에 발탁됐다.
수십 년 지기인 줄리아니 전 시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70대이고 성격이 호전적이며 말을 과장해서 하기를 좋아한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할 당시 줄리아니 전 시장이 입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국무장관 자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법무팀 합류는 줄리아니 전 시장이 트럼프 정부 내에서 다시 공직에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케네스 스타 전 특별검사의 법률자문을 지냈던 폴 로젠츠바이크 R 스트리트 연구소 연구원은 “줄리아니 전 시장이 뮬러 특검 수사에 잘 대응한다면 차기 법무장관 유력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줄리아니 전 시장이 자신의 출세길을 스스로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입이 말썽이다.
그는 5월 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이해시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이 오늘 풀려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오늘 석방’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장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억류자 석방에 대한 어떤 보도의 타당성 여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줄리아니 전 시장이 북·미 외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닌데도 섣불리 발언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결국 줄리아니 전 시장은 석방 발언 이틀 후 CNN 방송에 나와 “나는 억류된 미국인들의 상황을 모른다. 당국이 석방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나한테 공유되지는 않는다. 나도 당신들처럼 신문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미국 뉴욕시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AFP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에게 입막음용 돈을 갚아줬다’고 공개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코언이 전직 포르노 배우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성관계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3만 달러(약 1억4000만원)를 지불했고, 나중에 같은 금액을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에게 줬다는 것이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또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정권교체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해 또 한 번 백악관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줄리아니 전 시장의 돌출발언이 이어지자 백악관은 선 긋기에 나섰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줄리아니 전 시장은 사견을 말하는 것이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AP통신은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들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줄리아니가 방송 인터뷰를 계속 하도록 놔둬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인내심 한계에 온 백악관 선긋기 나서
줄리아니 전 시장의 입이 그의 개인사업에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대통령 법무팀에 들어간 뒤 대형 로펌 ‘그린버그 토리그’의 수석 고문 변호사직에서 물러났으나 자신이 2002년 설립한 컨설팅회사 ‘줄리아니 파트너스’와의 관계는 정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백악관에 연줄이 있다는 사실은 줄리아니 전 시장의 사업을 번창하게 할 강점이다. 워싱턴에서 로비를 시도하는 기업인 등에게 백악관과의 접근성은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줄리아니 전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잃지 않는다면 대통령에게 선을 대려는 고객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줄리아니 전 시장의 ‘헛발질’이 되레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캐슬린 클라크 워싱턴대 교수(법학)는 AP 인터뷰에서 “줄리아니의 TV 출연은 변호사나 홍보전문가로서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실수가 잦고 언행이 진중하지 못하다는 인상은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컨설팅을 의뢰했던 기존 고객도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캐슬린 교수는 “줄리아니가 대통령에 대한 접근성과 높은 인지도를 발판 삼아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박을 벌이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줄리아니 전 시장의 이런 도박이 제 발등 찍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낸 놈 아이젠은 “줄리아니가 일을 더 잘한다면 그의 컨설팅이나 법률 관련 사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고객도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알고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일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