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입맛, 소고기·커피·와인으로 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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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커피뿐만 아니라 주류시장도 재편되고 있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바이주 대신 와인 소비가 늘어나 중국은 최대 와인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일 상하이의 와이가오차오(外高橋) 항구에 미국산 냉동 소고기를 실은 선박이 입항했다. 이번에 들어온 소고기는 15.1t, 30만 달러(약 3억3800만원) 상당이다. 전산화 시스템으로 검역신고서 작성이 생략된 미국산 소고기는 빠르게 수입식품 검사를 마친 후 곧장 중국인들의 식탁으로 향했다.

지난 6월 미국산 소고기가 다시 대륙으로 왔다.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이 중단된 지 14년 만이다. 6월 첫 수입물량은 10t에 불과했지만 7월에는 16.8t으로 한 달 새 63.3%나 늘어났다. 상하이 항구로 들어온 소고기는 수입 재개 이후 배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 첫 미국산 냉동 소고기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 10년간 중국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12.8% 고속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28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중국 스타벅스

최근 10년간 중국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12.8% 고속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28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중국 스타벅스

지난해 소고기 수입 80만t으로 세계 2위

중국인들의 입맛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 차 대신 커피, 바이주(白酒) 대신 와인 소비가 늘고 있다. 대신 인스턴트 라면이나 패스트푸드 소비는 주는 등 고급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테이크, 갈비 등을 즐기는 중국인들이 급격히 늘면서 중국의 소고기와 송아지 고기 소비량은 지난 5년간 10% 이상 증가했다. 대신 과거 중국요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닭고기와 돼지고기 소비는 계속 줄고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축산농가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소고기 소비가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자연스런 결과로 수입이 늘었다. 최근 5년 새 쇠고기 수입량은 10배로 뛴 것으로 집계된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당국이 급격히 늘어나는 소고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입 제한조치를 하나씩 풀고 있다”며 “올해 초에는 남아프리카와 아일랜드 소고기 수입을 허가했고, 6월에는 미국산, 최근에는 아프리카 남부의 나미비아산 소고기 수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가장 많은 소고기를 수출하는 나라는 브라질로 전체의 29%를 차지한다. 우루과이(27%), 호주(19%), 뉴질랜드(12%)가 뒤를 잇고 있다. 미국, 남미, 오세아니아에 이어 아프리카 소고기까지 중국인들의 식탁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소고기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2006년 6000t에 불과했던 수입규모는 지난해 80만t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소고기 소비는 더 늘어나 현재보다 10% 이상 많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의 대도시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일 정도로 커피 문화가 보편화됐다. 최근 10년간 중국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12.8% 고속성장해 왔다. 이 같은 추세로 미뤄볼 때 2020년에는 중국 커피 소비량이 3조 위안(약 52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산층이 늘어나고 해외여행, 유학 등으로 입맛의 서구화가 일어나면서 차에서 커피로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차관(茶館)은 찾기 힘들어도 커피숍은 도처에 있다. 백화점, 쇼핑몰, 주요 오피스빌딩 1층에는 어김없이 커피체인점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중국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12.8% 고속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28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중국 스타벅스

최근 10년간 중국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12.8% 고속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28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중국 스타벅스

스타벅스 매장 미국 다음으로 많아

미국의 유명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는 중국에 2800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고향’인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장이 많은 곳이 중국이다. 지난해에만 500개 넘는 매장이 새로 오픈하는 등 성장잠재력이 높아 미국을 제치고 1위 국가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 당국의 규제로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등은 대륙에서 힘을 못쓰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 중국인들의 입맛까지는 당국도 규제할 수 없고, 미국계 커피 체인점이 중국 안방을 차지한 것이다.

소고기, 커피뿐만 아니라 주류시장도 재편되고 있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바이주 대신 와인 소비가 늘어나 중국은 최대 와인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와인시장은 매년 7%씩 성장하며 영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이 눈부시다. 작년 와인 소비량은 17.2억ℓ로 전년 대비 6.9% 성장하며 증가폭으로는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와인 업계는 2020년에는 중국 내 와인 매출이 210억 달러(약 23조원)까지 늘어나 61억ℓ의 와인을 소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인들의 소비수준이 올라가면서 인스턴트 라면 소비량은 급격히 줄고 있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인스턴트 라면 소비량은 385억개로 2013년(462억개) 이후 17%나 감소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소비자들의 개인가처분소득(개인소득 가운데 자유롭게 소비·저축할 수 있는 돈)이 지난 10년새 2배로 늘어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추구하면서 인스턴트 라면 소비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소비 수준이 늘어나면서 스테이크를 즐기는 중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국의 소고기 수입량은 1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중국 내 소비 수준이 늘어나면서 스테이크를 즐기는 중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국의 소고기 수입량은 1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인스턴트 라면 소비는 급격히 줄어

개혁개방 이후 태어나 물질적인 풍요를 맘껏 누리며 성장한 중국의 신세대 소비자들은 건강과 품질을 중시하고 가공식품을 멀리한다. 당이나 지방이 들어간 제품도 이들에게는 피해야 할 식품이다. 라면이나 튀김 대신 생수, 유제품,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고 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건강식품을 선호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미국에서도 중산층 사이의 건강 다이어트 붐으로 탄산음료 소비가 3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인들의 입맛이 변하면서 기존 승승장구하던 라면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내 라면 소비가 줄면서 중국의 유명 라면 생산업체인 퉁이(統一)기업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이 27%나 하락했다. 퉁이는 중국 인스턴트 라면 및 음료시장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이 회사의 수익률은 2013년 이후 계속 내리막이다. 퉁이와 함께 유명 라면 생산업체인 캉스푸(康師父)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국 인스턴트 라면과 아이스티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이 기업은 2015년과 2016년에 수익이 30%나 감소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1만5400명의 인원을 줄였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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