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압력솥 폭탄은 어떻게 처리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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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물 수색과 처리과정은 일종의 기밀이어서 FBI나 경찰도 상세한 설명을 꺼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알려진 정보들과 이번 상황을 견줘가며 ‘터지지 않은 폭탄’의 처리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미국인들의 주말을 공포로 몰아넣은 9월 1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주 시사이트파크의 폭발. 이 공격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범인 아흐마드 칸 라하미(28)는 이틀 만에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붙잡혔다. 하지만 뚜렷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2차 공격에 이용될 뻔했던 압력솥 폭발물이 맨해튼 첼시 지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폭발은 부상자 29명이라는 비교적 작은 피해만 남겼다. 이들도 다음날 모두 병원을 퇴원할 정도로 큰 부상은 없었다. 뉴욕 경찰이 폭탄으로 추정되는 압력솥을 찾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연쇄 폭발에 따른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음날 맨해튼에서 불과 25㎞ 떨어진 뉴저지주 엘리자베스 기차역 앞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파이프 폭탄도 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돼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9·11 15주기 추모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탄 공격이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범인이 누구인지, 공격의 동기는 무엇인지, 배후가 있다면 누구일지 등에 좀 더 많이 쏠렸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압력솥 폭발물’을 어떻게 찾았고, 또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이 폭발물·폭탄의 처리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폭발물 수색과 처리과정은 일종의 기밀이어서 미 연방수사국(FBI)이나 경찰도 상세한 설명을 꺼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알려진 정보들과 이번 상황을 견줘가며 ‘터지지 않은 폭탄’의 처리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미국 뉴욕 소방대원들이 9월 17일 저녁 맨해튼 첼시 지구에서 일어난 폭발 직후 부상자들을 앰뷸런스로 옮기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뉴욕 소방대원들이 9월 17일 저녁 맨해튼 첼시 지구에서 일어난 폭발 직후 부상자들을 앰뷸런스로 옮기고 있다. / AP연합뉴스

소형 로봇 투입해 압력솥 폭발물 처리
토요일 저녁 뉴욕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폭발은 17일 오후 8시30분쯤 맨해튼 중심 첼시 지구의 6번가와 7번가 사이 웨스트23번 도로변 쓰레기 수거함에서 일어났다. 뉴욕 경찰은 이 폭발 직후 통상적인 절차대로 주변 수색에 나섰다. 추가 폭발물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를 ‘세컨더리(2차 작업)’라고 부른다. 경찰관들은 폭발물 탐지견과 함께, 또는 삼삼오오 블록 단위로 구역마다 수색을 벌였다. 폭발 현장인 웨스트23번 도로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14번 도로부터 북으로는 34번 도로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주경찰관 2명은 쓰레기통 안에서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하얀색 비닐봉지에 들어 있던 사제 폭발물로 추정되는 압력솥 1개였다. 이 지역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 상태에서 경찰은 앞선 폭발 현장에서 북쪽으로 불과 네 블록 떨어진 웨스트27번 도로에서 이를 찾아냈다. 압력솥은 뚜껑에 전선줄이 달려 있었으며 이를 통해 폴더형 휴대전화와 연결돼 있었다. IED로 불리는 급조 폭발물이었다. 압력솥 폭발물은 사망자 2명을 낸 2013년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 공격에 쓰인 폭탄과 거의 같은 형태였다.

경찰은 탐지장비를 활용해 이 폭발물을 찾았는지, 아니면 전적으로 맨손으로 찾아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제임스 오닐 뉴욕시 경찰국장이 18일 기자회견에서 “경찰관들이 (수상한 물체가 발견된) 구역을 통제한 뒤 차량을 주차하고 가까이 걸어 들어간 뒤 찾아냈다. 그들은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추가 폭발물을 발견해 낸 것은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만에 하나 폭발물이 터지기라도 하면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의 접근을 완전히 통제한 경찰은 폭발물을 집어서 옮길 수 있는 집게 달린 소형 로봇을 투입했다. 그리고 ‘완전 격납용기(TCV)’로 부르는 장비 안에 압력솥을 넣었다. 압력솥은 자동으로 닫히는 이 장비 안에서 밀봉됐다. 경찰 호송차량에 연결된 TCV는 압력솥 폭발물을 안에 담은 채로 현장인 웨스트27번 도로를 떠났다. 이때 시각은 18일 오전 2시25분. 첫 폭발이 일어난 지 6시간 만이었다. 폭발물을 실은 경찰차량은 북동쪽으로 머리를 돌려 뉴욕 브롱크스로 향했다. 현장에서 28㎞ 떨어진 브롱크스 로드먼스넥에는 경찰의 폭발물 보관설비가 있다. 이곳에는 폭탄까지는 아니라도 폭발물로 의심되는 우편물이나 주인 없는 배낭, 불발 포탄 등과 같은 수상한 물체들이 보관돼 있다. 이 물건들은 이곳의 통제된 환경에서 해체되거나 강제로 폭파시킨다. 이번에 발견된 압력솥 폭발물도 이곳에 도착한 뒤 곧바로 소규모 폭발을 이용해 폭탄 기능을 못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상태 그대로 남쪽으로 450㎞ 떨어진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FBI 실험실로 보내졌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17일 밤 터지지 않은 채 발견된 압력솥 폭발물. / 트위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17일 밤 터지지 않은 채 발견된 압력솥 폭발물. / 트위터

완전 격납용기(TCV) 이용해 폭발물 옮겨
문제는 안전한 이송이다. 브롱크스에서 콴티코까지 가는 길은 폭탄 불능화 작업을 마친 이후여서 비교적 안전하지만, 웨스트27번 도로에서 브롱크스까지 가는 길은 전적으로 TCV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안에서 웬만한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다는 이 TCV는 어떤 원리로 내부 폭발의 압력을 견디는 것일까.

간단히 설명하면 잠수함의 안팎을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외부의 수압이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잠수함의 내압 원리를 역으로 설계한 것이다. 마크 토리 뉴욕시 경찰국 폭발물처리반장은 지난 7월 언론 인터뷰에서 “깊은 수심에서 압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안에 있는 사람이 멀쩡한 것과 마찬가지로, (폭발로 인해) 안에서 강한 압력이 발생하더라도 바깥에는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폭탄이 TCV 안에서 터지면 미세한 구멍들이 강한 압력의 공기 흐름을 최대한 분산시켜 약화시킨다. TCV 안에서 폭발물이 터지면 다공층을 통해 바람이 한꺼번에 새어 나가면서 바깥에서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릴 수 있다고 한다.

미세 통풍구가 무수히 많은 이 TCV와 다른 형태도 있다. 미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닷컴>에 따르면 또 다른 형태의 TCV는 가스 밀폐형이다. 완전히 외부와 차단되는 이 유형의 TCV는 주로 화생방 물질을 밀폐할 때 쓰인다. 악취나 유독가스가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만들어진 대형 쓰레기 수거함에 이 같은 TCV가 이용되기도 한다.

뉴욕 경찰이 이 같은 ‘폭탄 운반용기’ TCV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3대 이상은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10월 뉴욕 경찰국의 입찰공고 문서를 찾아내 ‘현재 뉴욕 경찰 긴급출동대가 사용 중인 3대의 TCV를 교체할 계획’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

이 3대가 뉴욕 경찰이 갖고 있는 전부는 아닐 수 있지만, TCV가 비싼 장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개인 구매가 거의 없는 까닭에 실제 가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은 TCV 1대당 가격을 15만~50만 달러(약 1억6000만~5억5000만원)로 추정했다.

이 때문인지 한 장비업계 관계자는 “경찰관들도 비싼 가격 때문에 폭발 가능성이 큰 물질이 아니고서는 TCV 사용을 자제하는 등 아껴 쓰고 있다”고 말했다. 괜히 잘못 다뤘다가 흠집이 나서 망가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거액을 물어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뉴욕·뉴저지 폭발물 사건처럼 테러 가능성이 의심될 정도의 큰 사건에는 미 경찰도 이용 가능한 장비를 총동원하기 때문에 TCV를 아낌없이 이용했다.

<정환보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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