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낮은 의료서비스, 턱없이 부족한 의사 수, 진료표조차 구하기 힘든 대도시 병원, 어렵게 진료실에 들어가도 성의 없는 의사의 진료 …. 도대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찾기 힘든 중국 의료체제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침통한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저희 병원에서 치과주임을 역임했던 의사 천중웨이(陳仲偉)를 응급치료했지만 2016년 5월 7일 1시39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향년 60세.’
지난 7일 중국 광둥(廣東)성 인민의원은 70년 역사상 가장 애통한 공지를 했다. 이 병원에서 치과주임(과장)으로 퇴직한 의사 천중웨이가 이 병원에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천중웨이가 자택에서 온몸에 30여군데 자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된 것은 지난 5일이었다. 광둥성 인민의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파견된 전문의들이 43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위중한 천중웨이를 살리지는 못했다.
공안 수사 결과 천중웨이를 살해한 피의자는 25년 전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40대 남자 환자였다. 이 남자는 천씨가 수술을 잘못해 치아 변색이 됐다면서 배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천씨의 집을 찾아가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범행 후 천씨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국에서 환자 혹은 환자 가족에 의한 의료진 폭행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천중웨이 사건’은 25년 전 수술에 대한 피의자의 오랜 원한, 이미 퇴직한 의사에 대한 살인, 피의자가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중국 내 관심이 특히 뜨겁다. 이 사건은 최근 ‘웨이쩌시(魏則西) 사건’으로 불이 붙은 중국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지난 7일 중국 광둥(廣東)성 인민의원이 올린 천중웨이 전 주임의 부고. 천중웨이는 25년 전 환자에 의해 자상을 입고 발견돼 43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 광저우 공안 웨이보
수술 부작용 배상 거절당하자 범행
이달 초 발생한 웨이쩌시 사건은 희귀암 중 하나인 활막육종 진단을 받은 22살 대학생 웨이쩌시가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가 추천한 병원에서 엉터리 치료를 받다가 숨진 일이다. 명문대로 꼽히는 시안전자과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웨이쩌시는 희귀암 진단을 받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러다 바이두 검색을 통해 베이징 무장경찰 제2병원이 스탠퍼드 의대에서 들여온 종양 생물면역치료법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장경찰 제2병원에서는 웨이쩌시에게 이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줬고, 웨이쩌시 가족들은 돈을 빌려가면서 이 치료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가의 치료는 효과가 없었고 웨이쩌시는 지난 4월 사망했다. 이 병원이 웨이쩌시 치료에 사용한, 미국에서 들여온 생물요법은 효과가 없어 이미 임상단계에서 폐기돼 미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기술로 파악됐다. 스탠퍼드 의대와의 협력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웨이쩌시는 투병 중 온라인에 공개한 동영상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병을 발견했습니다. 2년 동안 치료받느라 많은 돈을 소비했지만 그래도 살고 싶습니다. 제게는 꿈이 있어요. 큰 세상을 보고 제 희망도 이뤄내고 싶습니다. 외아들인 제가 죽으면 부모님들이 어떻게 노년을 보내실지도 걱정됩니다. 살고 싶습니다.”
바이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웨이쩌시의 동영상은 중국 인민들의 강한 분노를 일으켰다. 대중의 비난은 올해 1분기 매출액만 24억5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를 기록한 거대 포털 바이두에 쏠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웨이쩌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허술한 의료체계라고 말한다. 셰주어시(謝作詩) 저장재경대학 교수는 “웨이쩌시 사건이 발생하기 전 중국에서 검색 광고나 추천 서비스와 관련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바이두가 특정 병원을 추천 명단에 올리는 것은 위법은 아니다”라며 “웨이쩌시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바이두가 아니라 중국 당국의 관리·감독 실패”라고 지적했다. 민영병원 업계의 큰손인 푸톈계(푸톈 출신의 민간 의료사업자 총칭)를 중심으로 한 중국 의료체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 푸젠성 해안도시인 푸톈 출신의 민간 의료사업자들을 일컫는 푸톈계는 1990년대 공립병원에 대해 병과별로 하도급을 주는 제도가 도입된 것을 계기로 중국 의료시장을 좌우하는 세력이 됐다. 이들은 ‘떠돌이 의사들’을 고용해 민영병원을 세운 뒤 공립병원의 정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등의 하청 운영을 독차지했다. 푸톈계는 초반에 성병이나 피부병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기관이어서 TV 등 매체에 광고를 하지 못했고, 전봇대에 붙이는 ‘찌라시’로만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바이두에 막대한 규모의 광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명도가 점점 높아졌다. 현재 중국 민영병원 1만1000여곳 가운데 80%가 푸톈계 자본으로 알려졌다. 화캉, 캉신, 커라이쉰 등으로 대표되는 푸톈계 의료기업들은 중국 내 최소 100여개 군부대 병원과 지방 공립병원의 일부 병과들을 하청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군부대 병원은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산하 조직이 운영하기 때문에 지방 의료감독기관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군사병원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로비 의혹도 이어지고 있다. 푸톈계 의료기관으로 분류되는 상하이캉신의원의 한 관계자는 “명절이 되면 병원장부터 직원들까지 선물을 돌렸다”며 “2008년에는 다롄 해방군의 한 병원 원장, 정치위원, 부원장 등 28명에게 54만 위안(약 9500만원) 상당의 선물을 줬다”고 폭로했다.
의사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은 중국은 진료를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방의 의료수준이 낮다 보니 전국의 환자들은 대도시로만 몰린다. 대도시 종합병원의 번호표를 얻는 일조차 쉽지 않아 암표상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사망한 22살 대학생 웨이쩌시가 마지막 치료를 받았던 무장경찰 제2병원. 이 병원은 미국 스탠퍼드 의대 병원과 협력한 면역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웨이쩌시를 속였다.(사진 왼쪽) / 바이두 / 중국 베이징에 있는 301 중국인민해방군병원. 301병원은 중국 지도자 등 고위층들이 치료를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의료체계가 허술한 중국에서는 유명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어려워 진료표 암표까지 팔리고 있다.(사진 오른쪽) / AP연합뉴스
종합병원서 진료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지난 2월에는 중의학 전문으로 유명한 베이징 광안먼의원에서 “300위안 하는 진료 예약권을 4500위안(약 83만원)에 사라고 한다”면서 “접수 직원과 암표상들이 내통을 한 게 틀림없다”고 분통을 떠뜨리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베이징시 위생계획생육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베이징의 A급 병원들이 진료한 환자가 1억1000만명으로 집계됐다. 70% 이상은 베이징 이외에서 오는 환자들이다.
산둥(山東)성에 거주하고 있는 중학교 교사 차오둥신은 지난해 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지방병원에서 실패율이 높은 장암 수술을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베이징에서 수술을 받았다. 호적이 등록된 지역의 병원이 아니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치료비가 몇 배로 늘어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암이나 당뇨병 같이 장기 치료를 요하는 질병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도 포기하고 대도시 병원으로 오는 환자가 많다.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까지 몰리다 보니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병원들은 새벽부터 줄이 늘어선다. 밤을 새고 줄을 서거나 암표를 구매해 어렵게 의사를 보지만 진료시간은 고작 몇 분을 넘기 어렵다.
18일에는 중국 후난(湖南)성 사오양(邵陽)시 사오둥(邵東)현의 인민병원에서 수술 중이던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아이를 데리고 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은 한 남자가 다른 환자를 보고 있던 의사 왕쥔(40)에게 진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의사가 아이의 상태가 위급하지 않아 보이니 몇 분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환자 아버지는 밖에서 망치를 들고 와 왕씨의 머리를 때렸다. 왕씨는 3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살인은 분명 용서받기 힘든 범죄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비싼 진료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분노 때문에 환자 아버지를 향한 동정 여론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의료의 질이다. 지난해에는 치과치료를 받던 4살 어린이가 어금니 구멍을 때우다 사망했는데, 최근 발표된 부검 결과 소독용 솜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의 낮은 의료서비스, 턱없이 부족한 의사 수, 진료표조차 구하기 힘든 대도시 병원, 어렵게 진료실에 들어가도 성의 없는 의사의 진료 …. 도대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찾기 힘든 중국 의료체제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는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인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