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들은 꿀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간 벌’은 막대기 끝에 담배 필터를 달아 꽃가루를 필터에 묻혀 수분을 한다.
중국 남동부의 쓰촨성은 지난 4월 동안 한창 가루받이(수분·受粉)가 진행됐다. 꽃가루를 날라 암술머리에 옮겨 놓는 일은 원래 꿀벌이 담당할 영역이지만 쓰촨성에서는 사람이 벌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가 벌을 대신할 정도로 많아서가 아니다. 벌이 이곳에선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중순 쓰촨성 난싱의 한 산골마을에서 농민들이 사과나무의 가지 위에 위태롭게 올라탄 채 가지 끝에 있는 꽃에 닿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곳 주민 천시우킹(56)은 사람이 수분을 하는 것은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봄마다 자신의 과수원과 이웃 농가의 사과나무에서 품앗이로 수분 작업을 한다. 나무를 탄 지는 20년이 넘었다. 수분을 하다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지만 익숙해져서 겁은 안 난다고 한다.
살충제 대량살포로 벌 개체수 감소
주민들 중 일할 나이가 된 모든 사람들은 손으로 수분 작업을 하는 데 동원된다. 올해에는 4월 중순에서 같은 달 28일까지가 수분기로 정해졌다. 이 기간이 지나면 꽃이 지기 때문에 반드시 기간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마을 농민 중 솜씨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30분이면 한 그루 사과나무에 핀 모든 꽃에 꽃가루를 묻힐 수 있다. 농장마다 100~2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다.
쳉지가오(38)는 수분 작업은 품앗이로 이뤄져서 친인척들이 작업을 도와주지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일꾼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5~6명의 일꾼을 쓰는데 일당은 점심과 저녁 식사비를 포함해 하루에 80위안(약 1만3000원)이다. 그는 “때를 놓치면 과일을 충분히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르몽드에 24일 말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과수원에 있는 일꾼들은 하루에 100위안을 요구한다.
‘인간 벌’이 사용하는 도구는 끝에 담배의 필터를 단 막대기다. 이들은 사과나무에서 채취해 말려놓은 뒤 껌통에 담아놓은 꽃가루를 필터에 묻혀 수분을 한다. 꽃가루는 다른 지역에서 사올 수도 있지만 금방 상하기 때문에 수정 능력이 떨어지는 불량품일 가능성이 크다.
농부들은 꿀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경작지를 얻기 위해 벌의 서식지인 숲을 개간한 것이 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무 위에서 수분 작업을 하던 캉자오귀(49)는 1990년대 이후 이곳의 꿀벌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1958년 중국의 대약진 당시 농민들은 ‘인민의 곡식’을 훔치는 참새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의 호소를 실천에 옮겼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면서 해충들이 득실대자 농민들은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벌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이 살충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농민들은 작물을 해치는 곤충을 없애기 위해 주의할 사항을 거의 교육받지 않은 채 살충제를 쓰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경작 가능 토지는 0.08㏊로, 프랑스의 0.28㏊, 미국의 0.51㏊에 비해 크게 작다. 땅이 부족한 농민들은 토지를 최대한 집약적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살충제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농산물의 안정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면서 농민들은 당국의 지도로 독성이 덜한 살충제를 쓰기 시작했지만 살포 횟수를 늘려 대응하고 있다.
양봉업자는 꿀벌이 과수원에서 수분을 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남편이 양봉업자인 천시우캉은 “만약 그가 과수원에 벌꿀을 줘 꿀을 따게 하면 벌들은 다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루받이를 하기 전에 살충제를 대량으로 뿌리기 때문이다. 인간 벌 대신 과수원을 순회하는 양봉업자에게 수분을 맡기려면, 독성이 있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젊은 세대가 도시생활을 택하면서 과수원을 오가는 양봉업자가 갈수록 줄고 있다.
수작업으로 수분을 하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끼리 교잡시킬 수 있다. 세심하게 꽃 하나 하나 수분을 하기 때문에 수확철이 되면 나무는 열매로 가득하게 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국 농업과학학술원의 양봉부 연구원인 안지안동은 “수작업에 의한 수분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벌들이 인간보다 더 잘 식물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벌의 수분 경제적 가치 217조원
중국의 빠른 임금 상승으로 수작업에 의한 수분 비용은 감당못할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쓰촨대 탕야 교수는 “사람의 손에 의한 가루받이가 도입된 1980년대 말에는 그 비용이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갈수록 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꿀벌 감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이다. 유럽의 경우 지난 1월 작물 수분에 필요한 벌꿀 군집이 1300만개나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도 꿀벌은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 농무부 조사 결과 미국 내에서 평균적으로 꿀벌통의 벌꿀 개체수가 30% 정도 줄었고, 경우에 따라서 이는 99%에 달하기도 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미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매년 2월 순회하는 양봉업자가 꿀벌들을 대여해주지만 이동하는 동안 또는 과수원에 사용되는 살충제로 꿀벌통의 개체수가 크게 줄어 다음 수확철에는 새로 꿀벌을 들여와야 해 갈수록 비용이 커지고 있다.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의 한 원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거론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곤충의 신경에 독작용을 일으키는 신경독소로, 살충제가 뿌려진 꽃의 꽃가루를 섭취한 곤충들은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자신들의 집으로 가지고 가 다른 개체까지 오염시키게 된다. 독일 바이엘사가 1990년대 처음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개발했을 때부터 양봉업자와 환경운동가는 이 살충제가 군집붕괴현상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꿀벌의 개체수 감소에는 살충제만이 아니라 서식처 파괴로 인한 기근, 기후변화, 바로아 진드기 등 기생충, 여왕벌의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더 많다고 한다. 꿀벌 등 곤충들이 담당하는 수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1530억 유로(약 217조원)에 달한다. 세계 곡물 생산의 3분의 1 이상은 벌의 수분에 의존하기 때문에 벌의 개체수 감소는 생태계 파괴와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내로 멸종할 것”이라며 “벌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고 경고했다. 인공 수분도, 양봉업자에 의한 수분도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다가오면서 꿀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재배법을 고민하는 것은 중국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영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