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돔이 완벽한 신고식을 치렀다는 건 이스라엘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이 다양해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가자지구에서 3년 만에 무력분쟁을 벌였다. 양측의 무력분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그 양상이 과거와 다소 달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는 공격을 주고 받은 지 나흘 만에 휴전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휴전을 중재한 건 이집트였지만 이집트에 휴전 중재를 요청한 건 팔레스타인 집권세력 하마스였다. 한 번 맞붙으면 대규모 충돌로 치닫던 것과 달리 양측의 전략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3월 11일 이스라엘 아슈도드에 있는 아이언 돔 발사기지를 방문해 군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아슈도드/신화연합뉴스
이번 분쟁은 이스라엘이 3월 9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인민저항위원회’의 지도자 자히르 알 카이시를 암살하면서 시작됐다. 12일 휴전하기까지 팔레스타인 쪽에서 사망자 25명이 발생했다. 반면 이스라엘에선 부상자만 4명 정도 나왔을 뿐 사망자가 없었다. 이스라엘이 2011년 남부 3개 도시에 실전 배치한 단거리 미사일 방어체제 ‘아이언 돔(Iron Dome)’ 덕분이다.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이 사정거리 4~70㎞ 단거리 미사일과 포탄 공격에 대비하고자 2007년부터 2억1000만 달러(약 2360억원)를 투자해 개발한 요격 시스템이다. 공격감지 및 탄도추적, 전투관리 및 무기통제, 요격미사일 발사의 3단계로 작동한다. 레이더가 적군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면 전투관리 및 무기통제 시스템이 이 미사일의 타격 지점을 계산한다. 미사일이 주거지역이나 군사지역에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될 경우 아이언 돔은 요격 미사일 ‘타미르’를 발사한다. 아이언 돔 하나에 타미르 20기가 설치돼 있다.
근거리 로켓포 공격에 대한 시름 덜어
미국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에 따르면 아이언 돔은 3월 9~11일 이슬라믹 지하드가 쏘아보낸 로켓포 120여기 중 인구 밀집지역에 낙하할 것으로 보이는 37기에 타미르를 발사해 32기(성공률 86%)를 공중에서 격추했다. 군사전문가인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이 개발한 요격미사일 ‘패트리어트 3’의 정확도가 80~90% 정도”라며 “아이언 돔이 첫 실전 테스트에서 90%에 가까운 요격 성공률을 기록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언 돔이 완벽한 신고식을 치렀다는 건 이스라엘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이 다양해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로켓포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언 돔이 로켓포 공격 대부분을 방어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눈을 돌려 좀 더 시급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한가하게’ 가자지구를 침공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우방 이집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좌를 떠난 이집트에선 이슬람 정당들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며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때에 가자지구에서 소동을 일으켜 국내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이집트 파트너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양국관계에 부정적 요소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휴전 중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미국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에후드 야리는 “이집트는 불확실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며 “이스라엘은 이집트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에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이란에서 가자지구로 옮겨가는 것도 이스라엘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 흘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이스라엘의 결정을 저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권을 내버려두진 않겠지만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이스라엘 내부에 폭넓게 형성돼 있다고 보도했다.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이자 관심사는 이란이기 때문이다.
분쟁을 확대하기 어려운 입장인 건 하마스도 마찬가지다. 확전에 나섰다가 크게 패배할 경우 인명·재산피해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권력 기반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팔레스타인은 2008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1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지속된 이스라엘과의 무력충돌로 1400여명의 생명을 잃었다. 하마스는 이 같은 참극의 재현을 바라지 않는다.
하마스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집트에 비밀리에 휴전 중재를 요청해 가자지구 사태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이슬라믹 지하드 같은 작은 무장단체들의 이스라엘 공격은 허용했다. 나지 슈랍 알아자르대 교수는 AFP통신에 “다른 분파들이 이스라엘에 대응하도록 내버려둔 것이 하마스가 저항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군사적 모험심 부채질할까 중동 긴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휴전에 합의한 후 양측의 무력충돌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이언 돔이 가자지구에 일시적 평화를 가져다준 것처럼 중동 전체를 안정시킬 것으로 보는지 묻는다면, 서구 언론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타임지는 완벽한 단거리 미사일 방어체제의 존재가 중동 정세에 또 다른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가 문제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을 때 뒤따를 수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쏘아 보복하는 것이다. 집권 하마스에 도전하고 있는 이슬라믹 지하드도 이란을 지지하고 있다. 아이언 돔이 이들의 로켓포 공격을 90% 가까이 막아낼 수 있다면 이스라엘은 보복당할 것에 대한 부담 없이 이란을 공습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의 방공능력은 완벽하지 않다. 아이언 돔은 가자지구에 가까운 3개 도시 아슈켈론과 아슈도드, 베에르셰바에만 있다. 다른 인구 밀집 도시들까지 방어하려면 적어도 아이언 돔 6개가 더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마법 지팡이’ 또는 ‘다윗의 돌’이라고 불리는 사정거리 80㎞ 이상 중거리 미사일 방어체제도 아직 완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수주 안에 네 번째 아이언 돔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언 돔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관계에 어떤 득과 실을 안겨줄 것인지, 중동은 긴장하고 있다.
<최희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