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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독재타도, 한 손엔 경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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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에서 발사된 민주화 혁명의 탄환이 아랍 독재정권들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아랍 지역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열기의 배경은 유사하다. 장기 독재와 정치적 억압,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 물가상승,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이 그것들이다. 아랍 국가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배경과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중·일 동아시아 세 나라가 그러하듯 정치·사회적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아랍 주요 국가들이 20세기 이후 거쳐온 경로를 통해 아랍 세계 민주화 시위의 역사적 배경을 살폈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10일 이집트 카이로 시민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신발을 벗어 흔들며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10일 이집트 카이로 시민들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신발을 벗어 흔들며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튀니지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을 제공한 튀니지는 1881년 프랑스 보호령이 됐다가 1956년에야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 이후 55년 동안 튀니지 대통령은 단 두 명뿐이었다. 2000년 사망한 하비브 부르기바와 이번 혁명으로 쫓겨난 벤 알리다. 초대 대통령 부르기바는 1959년부터 1987년까지 집권했다.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르기바 정권도 반정부 시위에 의해 무너졌다. 1973년과 1976년에 각기 1만8000여명과 9만4000여명이 참여한 노동자 총파업이 있었고, 1980년과 1984년에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군인 출신인 벤 알리는 이처럼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던 시기인 1987년, 무혈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그는 집권 초기에만 해도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수행함으로써 ‘튀니지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벤 알리는 이번 혁명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요구에서 보이듯, 장기집권 과정에서 결국 독재자로 전락하면서 끝내 하야했다.

수도 튀니스

인구 약 100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3700 달러

시위 배경 고실업률(14%), 대졸 청년 모하드 부아지지, 경찰의 청과물 단속에 분신 자살, 벤 알리 일가의 부정축재

경과 2010년 12월 19일 시위 시작, 219명 사망, 벤 알리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


리비아
이번 아랍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리비아는 오스만제국과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패전국 이탈리아를 대신해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951년 유엔 결정에 따라 독립했을 때 리비아는 왕정이었다. 그러나 리비아 왕조는 1969년 범아랍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한 청년 장교들의 반체제 혁명에 의해 무너졌는데, 당시 혁명세력의 중심 인물이 바로 카다피다. 집권 후 카다피는 은행과 기업의 국유화, 정당 및 노조활동 금지 등 억압정책으로 일관했고 그 사이에 민간 부문의 경제기반은 완전히 파괴됐다.

카다피의 리비아 통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부족이다. 부족은 리비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리비아에는 500여개의 부족이 있다. 그 중 3대 부족인 와르팔라 주와야 카다파가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카다피 대통령은 카다파 부족의 수장이다. 카다피는 지난 42년 동안 부족간 갈등관계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월 21일 와르팔라와 주와야 부족 대표들은 카다피에 대한 협력 중단을 선언하고 카다피의 하야를 요구했다.

수도 트리폴리

인구 약 60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1만2000 달러

시위배경 높은 실업률(30%), 카다피의 42년 독재

경과 시위대, 보안군·용병 등과 격렬한 전투, 최소 300여명 사망
리비아 공군은 시위대를 향해 폭격

바레인
입헌군주제 국가인 바레인 정치를 특징짓는 것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오랜 갈등이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과 그 혈족들은 수니파다. 반면 인구의 70%는 시아파다. 이번 민주화 시위의 주력도 이들 시아파다.

지난 2월 19일 바레인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마나마 펄 광장에서 시위 중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19일 바레인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마나마 펄 광장에서 시위 중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알 칼리파 왕족은 18세기부터 바레인을 통치해왔다. 칼리파 왕가는 1999년 25년간의 비상조치법을 거둬들이고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약속했지만 지난 2002년 선거에서는 선거구를 조작해 수니파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시아파는 지난 2009년 이후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간헐적으로 벌여왔다. 시아파는 군부와 보안군의 요직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배제됐다. 바레인 경찰력의 대부분은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등 이웃 아랍국가에서 건너온 수니파로 구성돼 있다.

바레인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71년 무렵만 해도 작고 가난한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치솟은 유가에 힘입어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8000 달러에 달한다. 한편 바레인에는 미5함대 사령부가 있어, 중동지역 미군 군사력 전개의 핵심 요충지이기도 하다.

수도 마나마

인구 약 12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4만 달러

시위 배경 높은 실업률(15%), 시아파에 대한 차별, 알 칼리파 일가의 전횡

경과 펄 광장 중심 시위 확산, 정부는 진압 및 사망자에 대한 사과와
진상 조사 약속, 가구당 1000 디나르(약 400만원) 보조금 지급 약속


알제리
알제리는 1830년 프랑스 군대의 침공을 받은 이래 무려 136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다. 1954년부터 1962년 사이에 진행된 독립 전쟁 기간 중 100만 명 가까운 알제리인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알제리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그러나 군부에 반대한 이슬람구국전선이 무력투쟁에 나서면서 1992년부터 8년 가까이 내전 상황이 지속됐다. 부테플리카 현 알제리 대통령은 1999년 군부의 지원을 업고 대통령이 됐다. 애초에 알제리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연임제였으나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이 제한을 풀어버렸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08년 3선에 도전해 90%의 득표율로 당선해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다른 아랍 국가와 마찬가지로 알제리 민주화 시위대의 요구 또한 독재 타도와 개혁이다.

수도 알제

인구 약 330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4000 달러

시위배경 높은 실업률(12.5%), 식량가격 폭등

경과 ‘알제리 민주화를 위한 연합’ 중심의 시위 지속, 최소 10명 사망


이집트
다른 아랍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는 오랜 기간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력이 약해진 이후에는 영국의 지배(1882~1952)를 받았다.

이집트는 1952년까지는 왕정체제를 유지하며 영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1952년 자유장교단이라는 이름의 군부 혁명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영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다. 나세르 대통령 때만 하더라도 이집트는 반이스라엘, 범아랍, 친소련 외교를 추진했으나 1970년 안와르 사다트가 집권하면서 친미 친이스라엘 외교로 선회했다. 사다트는 1981년 그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무슬림 과격파에 의해 암살된다. 사다트의 뒤를 이은 것이 당시 부통령이던 공군장교 출신 후스니 무바라크다. 나세르부터 사다트에 이르기까지 이집트는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였으나, 무바라크 정권에 이르러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와프드당과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 형제단이 소수당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이집트 군부의 영향력도 그 이전 시기에 비해서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은 강력한 경찰력에 의존해 통치했다. 이집트에서 경찰은 출산 및 사망증명서는 물론, 여권 발급까지 담당한다. 이번 민주화 시위를 통해 그 실상이 드러난 이집트 경찰의 고문과 폭행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경찰의 폭행으로 사망한 칼레드 사이드는 이번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을 제공한 이집트 경찰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사례들 중 하나다.

수도 카이로

인구 약 800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2000 달러

시위 배경 고실업, 인구의 20%가 빈곤선(1일 2달러 미만) 이하

경과 1월 25일부터 18일간 반정부 시위, 300여명 사망,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예멘
예멘은 아랍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1000 달러에 불과하다. 예멘은 오랜 기간 남북으로 분리돼 있었다. 북예멘은 오토만제국의 일부였다. 남예멘은 1839년까지 영국 식민지였다. 북예멘은 1918년 오토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해 1962년에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영국의 영향력은 1967년까지 지속됐다. 남예멘에는 1970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남북 예멘은 국가건설 과정에서 내전과 권력투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지속하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통일됐다. 그러나 통일 후에도 남부 분리주의자들의 독립 요구가 지속되면서 불안정한 상황은 계속됐다. 통일 당시 예멘은 다당제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체제를 수립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유지되면서 정치적 자유는 부분적으로만 허용돼 왔다. 1997년 통일 예멘 최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살레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임기가 끝나는 2013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지난 2005년에도 불출마 선언을 하고 1년 만에 약속을 뒤집은 전력이 있다.

예멘은 알 카에다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다. 지난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디트로이트 공항을 출발하려던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나이지리아 출신 테러리스트는 자신이 예멘의 알 카에다 지도자들로부터 훈련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도 사나

인구 약 2300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1000 달러

시위배경 높은 실업률(35%), 인구의 45%가 빈곤선(1일 2달러 미만) 이하, 부패 정권, 아랍권 최빈국

경과 살레 대통령 2013년 임기 만료 후 재집권하지 않겠다고 약속


아랍, 이슬람, 무슬림

아랍과 이슬람은 종종 혼용되고, 또 그만큼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아랍은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고, 이슬람은 종교를 지칭한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아랍 세계란 아랍어를 공식어로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의 집합체를 뜻한다. 아랍연맹에 소속된 22개국이 아랍 세계의 구성원들이다. 이슬람 세계는 아랍 세계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국교가 이슬람교이거나 무슬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를 이슬람 국가라고 부른다. 따라서 아랍 국가는 모두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아랍 국가는 아니지만 이슬람 국가에 포함되는 나라들이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시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국가다. 한편, 이란은 지리적으로는 아랍 국가들과 인접해 있지만 아랍 국가가 아니다. 이란은 공식어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아랍연맹 회원국도 아니다.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2개 종파로 나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분리된 계기는 무함마드의 계승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다. 무함마드 사후 나중에 시아파(‘분파’라는 뜻)를 형성한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가 무함마드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정 과정에서 알리가 아닌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파(지도자)가 되면서 이를 인정한 세력(수니파)과 부인하는 세력(시아파)이 나뉘게 됐다. 두 종파가 확실하게 분리된 시기는 680년 무렵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는 이란(약 90%), 바레인(약 75%), 이라크(약 60%) 등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아랍 국가 통치자 및 집권기간 
알제리 압델라 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12년
바레인 하마드 알 칼리파 국왕, 12년
이집트 후스니 무바라크, 30년(하야)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 12년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42년
모로코 무함마드 6세 국왕, 12년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 6년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11년
튀니지 자인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 21년(하야)
예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32년

* 참고자료: <이슬람의 세계사 2>(이산), <중동정치의 이해 1, 2, 3>(한울), <이슬람주의?>(푸른나무)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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