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충격받은 세계 미술시장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크리스티 등 감원… 데미안 허스트 작품 3분의 2가 유찰

경기침체로 매출이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감원 등 비용절감에 나섰다. <경향신문>

경기침체로 매출이 감소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감원 등 비용절감에 나섰다. <경향신문>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1억270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700억 원)에 팔렸던 지난해 9월 15일. 같은 날 리먼 브러더스는 파산 신청을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지만 미술시장의 호황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낙찰 가격에 이때만 해도 세계 미술시장은 경제위기에서 비켜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술업계도 금융위기로 휘청
그러나 지난해 9월을 정점으로 세계 미술시장은 추락하고 있다. 미술시장은 경제위기에 전혀 면역력이 없음이 드러났고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 회사들은 감원 등 비용 절감에 나섰다. 금융 시장 붕괴와 함께 미술품 가격 역시 하락했고, 기록적으로 높은 보너스를 받았던 금융업계 최고경영자들이 몰락하면서 이들의 작품 구매에 일부 힘입었던 미술시장의 붐 역시 끝났다. 리먼은 채권자에게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약 8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미술 작품을 팔 계획을 세웠다. 9월 경매 불과 두 달 후 열린 뉴욕 경매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3분의 2가 유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마침내 2008년 말부터 미술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회사와 갤러리 들은 5년여간 호황 이후 처음으로 컬렉터(미술품 수집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매자들은 미술관에 소장될 만한 가치가 있는 몇몇 작품만 찾을 뿐, 아직 증명되지 않은 작가나 가격이 많이 오른 작품은 피하고 있다. 딜러들은 생존하기 위해 작품 가격을 낮췄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두 주요 경매회사의 입지 역시 흔들리고 있다. 소더비는 지난해 순수미술품과 장식품 경매 매출이 40억8200만 달러였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보다 11% 떨어진 것이다. 크리스티 역시 2007년보다 20% 하락한 약 40억 달러의 경매 매출을 기록했다.

소더비는 지난해 말 북미지역 사무소의 직원을 주로 해고하면서 인건비 700만 달러를 줄였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마스터카드와 제휴했던 신용카드 브랜드 프로그램도 끝냈다. 빌 루프레히트 회장은 “올해부터는 경매 출품작을 싣는 카탈로그도 훨씬 더 얇게 만들 것이며, 몇몇 현대미술작품의 가격은 2005년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비용 절감 계획을 이번 달 안으로 발표할 계획인데, 에드 돌만 회장은 “직원 해고, 작품 추정가 인하, 최저 수준의 수수료, 작품 판매 보증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작품 판매를 보증했다가 팔리지 않아서 손실을 본 금액은 630만 달러로 추정된다.

미술관도 기부금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LA에 있는 게티미술관을 지원하고 있는 폴 게티 신탁회사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자신들이 내던 기부금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워싱턴에 있는 뉴스지움은 주요 투자자인 프리덤 포룸의 기부금 중 1억5000만 달러를 투자로 잃으면서 감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MOCA)도 금융위기로 인한 기부금 감소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12월 말 경영 개선 등을 조건으로 후원자로부터 3000만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시장의 약세는 미술품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장을 바꿔놓고 있다.
작품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2009년은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유가 있는 판매자는 굳이 시장에 나서지 않고 관망할 것이며, 빚을 청산해야 하거나 다른 투자금이 필요해 반드시 작품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만 나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소더비의 루프레히트 회장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매도프에게 투자한 컬렉터를 많이 봤다”면서 “소유 재산 중 미술품이 유일한 유동 자산인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반면 작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시간 여유를 두고 좋은 작품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는 시기다. 경매장에서 3분 안에 작품 구매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시절은 갔다. 갤러리에서도 대기자 명단을 찾아보기 힘들다. 컬렉터들은 작품 구매 결정을 며칠 혹은 몇 주까지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다. 컬렉터들은 또 구매 전 갤러리에게 작품의 소장자 기록을 요구하는 등 더 많은 서비스를 마음껏 요청하기도 한다.

위기 속 미술시장의 풍경들
신용위기로 돈이 급해진 개인 소장가들이 귀한 작품을 경매시장에 내놓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모딜리아니, 피사로, 코코슈카, 몬드리안, 뷔야르 등 경매시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작가의 작품이 경매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다음 달 오스트리아 작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1929년작 ‘이스탄불’을 런던에서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코코슈캬의 작품 대부분은 미술관에 소장돼 있고 특히 유화작품은 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스탄불의 도시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180만 파운드(약 3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인 소장가가 20년 이상 갖고 있었던 프랑스 인상파 화가 피사로의 회화 작품(1868~1870)과 에드가르 드가의 조각 작품 등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 등장한다. 한 개인 소장가가 90년 이상 갖고 있어 한 번도 경매에 출품된 적이 없는 모딜리아니의 회화 작품도 2월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 부칠예정이다. 1918년에 그린 이 작품은 두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두 명이 등장하는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다섯 작품 중 하나다. 나머지 네 작품은 공공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미술시장 침체가 중국 미술시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특구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중국 미술이 뜨자 문화혁명 시기에 나왔던 낡은 이미지나 이제는 식상해진 팝아트 이미지를 흉내내며 상업적 성공을 이루려는 카피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면서 “작품성과 작품 가격 등에서 현실과 괴리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중국 미술시장이 건강해지고 결국 좋은 방향으로 정리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앞으로는 갤러리들이 덜 상업적이고, 더 실험적이며, 일반 시민과 컬렉터들에게 더 흥미로운 작품을 제안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부 | 임영주 기자 minerva@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