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망명정부 있는 북인도 다람살라 현지 리포트… 매일밤 수천 명 기도문 외우며 촛불행진도

티베트 사태에 대해 항의하며 삭발 시위를 하고 있는 티베트인과 외국 관광객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북인도 다람살라는 평온을 되찾았다. 3월 10일부터 시작해 보름 정도 지속되었던 대규모 시위는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예전처럼 줄을 잇고 있고 상가와 식당도 활기 있어 보인다.
소요 사태를 염려해서 우리 정부는 한동안 다람살라를 여행 자제지역으로 선정했다. 대사관에서는 현지 교민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시위에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다람살라에서 세계인들이 걱정할 만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절인 남걀 사원 근처에는 아직도 티베트인들의 분노가 남아 있다. 중국 당국의 발포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걸려 있고 매일매일 게시판에 소식이 전해진다. 사원 앞에 마련된 천막 안에서 다람살라의 스님들과 티베트인 200여 명이 돌아가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촛불시위대 많을 때는 6000명 달해
사태 이후 매일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아침 8시면 다람살라의 모든 스님이 남걀 사원에 모이고 기도는 오후 3시 30분까지 계속된다. 기도가 진행되는 중앙법당 밖에서는 티베트인들이 절을 하거나 함께 기도한다. 간간히 외국인 여행객도 동참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있을지도 모를 테러를 막기 위해 절 주변은 철저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인도 남걀사원의 촛불집회.
오후 5시 30분. 거리의 티베트인 상가가 분주히 문을 닫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과 스님까지 버스 정류장 근처 시장거리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6시 30분부터 촛불을 들고 남걀 사원까지 행진한다. 구호는 없다. 모든 생명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기도문을 외울 뿐이다. 손마다 티베트 국기를 들거나 몸에 두른 모습에서 독립을 원하는 무언의 절규가 살아 있다. 평소 2000명 남짓한 시위대는 많을 경우 5000명이나 6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주말에는 티베트 학교(TCV) 고학년생들이 촛불 행진과 함께 철야기도를 하고 있다.
사원광장에 도착한 촛불 시위자들은 희생자를 위해 묵념을 하고 그날 전해진 소식을 듣고 해산한다. 특별한 날에는 대형 화면으로 티베트의 현지 상황이나 기타 중요한 장면을 상영하고 있었다.
지난 3월 29일 달라이 라마는 델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걀 사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절 앞에 걸려 있는 희생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펴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단식 농성자들과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는 돌아갔다. 그날 이후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에게 과격한 시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델리에서 달라이 라마와 인도 총리가 비공식 회견을 했으리라는 확인되지 않은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급속히 밀착되고 있는 인도·중국 관계를 고려하여 시위를 막아달라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본토 가족에 불이익 미칠까 노심초사
4월 6일 남걀 사원 법당에 달라이 라마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한 시간 반가량 승려들과 함께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이후 달라이 라마는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3월 28일 중국과 세계를 향해 발표한 메시지와는 달리 티베트 본토의 티베트인을 향한 내용이었다. 그는 느리고 강한 티베트말로 성명서를 낭독했다.
눈여겨볼 만한 내용은 베이징 올림픽이 잘 치러지기를 바라며 티베트인들은 어떠한 방해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는 티베트인 대부분의 바람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망명 티베트인의 정치 잡지 ‘티베트 자유포럼’의 발행자 남라는 이 점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중도노선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주장의 정당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올림픽 보이콧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 지도자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티베트 독립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적극적인 대응 수단을 가져야 하고 올림픽 거부와 중국 상품 불매운동도 충분히 비폭력 노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람살라의 시위가 조용해진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외부와의 통신을 철저히 차단하여 티베트 내의 새로운 시위 소식이 흘러나오지 않는 점도 한몫을 한다. 중국 정부는 사태 초기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현장 소식이 외부로 전해지고 나서 세계 여론이 악화되고 티베트인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 생생한 현지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티베트 본토에 가족을 두고 있는 망명자들은 혹시라도 불이익이 닥칠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다. 다람살라의 까둡 체랑은 가족과 통화한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공안에서 외부와의 전화 내용을 모두 보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어쩌다 통화가 돼도 현지 소식을 직접 물어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그쪽 날씨가 어떠냐?’ 이렇게 물어보면 ‘구름이 많이 끼었다가 강풍이 불어서 다 사라졌어.’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위를 준비하다 강력한 단속에 무산됐다는 뜻입니다. 중국 공안에 통화 내용을 보고해도 날씨를 물었다고 이야기하면 되니까 그렇게 대충 알아듣는 식으로 대화합니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관심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남걀 사원 단식농성장 앞에서 매일 수십 명의 티베트인이 삭발 시위에 나서고 있다. 그 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동참하고 있었다.
타이완에서 온 여자 관광객 등자오려는 즉석에서 서명하고 머리를 깎으며 내내 울었다. “타이완 본토인도 티베트인과 같은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잊혀진다면 세상의 희망도 사라질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와 타이완의 슬픔은 되풀이되어선 안 됩니다.”
4월 9일 델리에서 승려를 포함한 200명의 티베트인이 약 1000㎞ 떨어진 보드가야까지 50일간의 평화 행진을 시작했다. 출정식을 행할 때 인도 힌두교 지도자 스와미 아그니비수는 현장을 방문해 일행에게 일일이 축복을 내려주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현지 인도인 티베트인 주장에 냉담
그러나 현지 인도인들은 티베트 망명자의 주장에 냉담한 분위기다. 최근 중국과 진행되고 있는 경제·군사적 협력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도에 거주하는 200만 명의 티베트인은 라싸 봉기 한 달째인 4월 10일 인도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뭄바이에서 남인도 각지의 승려 3000여 명이 모여 3일 동안 단식과 시위를 벌였다. 델리에서도 2만여 명의 티베트인이 단식과 항의 농성을 했다.
인도 행정부 인근의 델리 잔따르만따르 공원 근처에서 집회가 시작되자 인도 경찰은 서둘러 저지선을 치고 시위 진압경찰을 투입해 현장을 통제했다. 한 달 전쯤 시위대가 중국 대사관에 몰려가 페인트를 투척하고 유리창을 깨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후 티베트 시위대는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인도 각지에서 모인 시위대는 연좌농성장인 대규모 천막 앞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티베트에서 살육을 중단하라’ ‘후진타오는 물러나라’ ‘인도와 국제 사회는 티베트를 도와달라’는 주장을 반복해서 외쳤다.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가 지나가는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성공을 기원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바람과는 달리 소란은 계속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무력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무력감을 안고 라싸 봉기 한 달째가 되는 날인 4월 10일 일본을 거쳐 미국 순방길에 나섰다.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미국의 대중강연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고국의 백성들이 흘리는 피와 눈물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평화와 지혜를 이야기해야 하는 달라이 라마의 고뇌가 그 속에 있다.
망명정부 다와 체링 외교협력부 장관 “티베트 문화를 인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달라” ![]() 티베트 망명정부 외교협력부 다와 체링 장관. 티베트 망명정부는 현재 외부 언론과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사태가 있은 후 달라이 라마는 인도 정부와 인터뷰를 제외하고 두 차례 메시지 발표만 했을 뿐이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빚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뿐 아니라 내각 수반인 삼동 린포체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 외교협력부 다와 체링 장관으로부터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망명정부 안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중국과의 실질적인 협상 창구이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기 타이완 대표부 대사로 내정되었다. 과거 중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12년 형을 선고받고 6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망명했다. 그에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물었다.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의 시위는 늘 있어 왔습니다.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에서 과도한 무력진압으로 인명 살상을 낳은 것이 사태가 커진 계기입니다. 라싸 시위 이후 암도 지방에서 중국 군경이 절에 들이닥쳐 승려들의 방을 수색하여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절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존경받는 스님인데 사진을 빼앗아 찢으려 하자 몸으로 막았습니다. 구타와 폭력 끝에 두 명의 승려가 사망하자 그 지역 절을 중심으로 티베트인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지금 티베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요구에 대해서 묻자 침통한 대답이 이어졌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완전한 독립 요구를 접었습니다. 단지 티베트 언어를 지키고 문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의 자유를 바라고 있습니다. 티베트는 전통적인 불교 국가입니다. 종교교육도 제한된 채 외형적인 명맥만 지키라고 강요합니다. 종교적인 믿음 속에서 평화롭게 살겠다는 희망은 결코 폭력적이거나 중국을 위협하는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이번 사태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중국 정부는 대화를 공언하지만 실질적인 창구는 봉쇄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망명정부를 압박할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의 요구에 대해 무차별적인 진압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비폭력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할 것입니다. 티베트인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다람살라(인도) | 김천<객원기자>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