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원금으로 짭짤한 실속 챙겨 … 협조한 이라크인은 냉대받아 대조적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이 벌어지면 전쟁터가 된 나라의 국민들은 큰 고통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전쟁 덕택에 짭잘한 이득을 챙겨 콧노래를 부르는 다른 국가나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재미를 단단히 본 나라 중 하나가 몽골이다. 반면 미국에 협력했던 이라크인들은 동족의 손가락질은 물론, 믿었던 미국에게도 버림을 받게 돼 몹시 딱한 처지에 놓였다.
부시, 몽골 방문 감사의 뜻 전달
1258년 칭기즈칸의 손자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 제국의 군대는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로 진군했다. 그로부터 745년이 흐른 2003년 다시 몽골군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나타났다.
물론 13세기의 몽골군과 21세기 몽골군의 위상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초원의 지배자를 넘어 세계 제패를 꿈꿨던 13세기 몽골군은 수만 명의 기병을 거느린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반면 21세기의 몽골군은 1개 중대 규모인 12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군대를 보내고도 몽골이 거둔 실익은 결코 적지 않다고 영국의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지난 16일 보도했다. 몽골군이 2003년부터 이라크 현지에서 쓴 돈은 244만 달러(약 22억4500만 원)이다. 반면 몽골이 미국으로부터 군 현대화 사업비 명목으로 지원받은 돈은 1450만 달러로, 쓴 돈의 5배가 넘는다.
파병에 따른 간접적인 수익은 직접적인 이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올 가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철도, 보건, 교육 등의 발전을 위해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1억7000만~3억 달러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또 1800만 달러를 들여 몽골군을 미국으로 초청, 군사교육을 했다. 민간 기업이나 단체 등의 몽골 지원도 줄을 잇고 있다.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진 부시 대통령에게 몽골은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여서 미 행정부가 넉넉하게 지원금을 챙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권과 관계와 자국 내 반전여론 때문에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미국의 요청이 있음에도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몽골은 달랐다. 옛날에는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도 50명을 파병했다.
총 파병 인원은 170명에 불과하지만 몽골의 전체 군인이 1만100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군 병력의 1.5%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규모다. 미국은 “인구 대비 파병 규모로는 세계 3위에 해당한다”며 고마워했다.
게다가 몽골군의 용맹함은 부시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 한국과 일본 등은 전사자 발생에 따른 국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이라크 내의 ‘안전지대’에 주둔하면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몽골 병사들은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2005년에 트럭에 폭탄을 가득 싣고 돌진하는 테러범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 테러범을 사살하는 공적을 남겼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그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 직접 감사의 뜻을 전했다.
더 타임스는 “몽골 정부는 이제 이라크 작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소개했다. 유엔평화유지군에 가면 짭잘한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 군인들이 국내에서 받는 월급은 평균 160달러인데 유엔평화유지군에 가면 6배나 많은 1028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몽골 정부는 그동안 이라크 작전을 경험하고 복귀한 베테랑 군인 750명을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무대인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보냈다. 또 유럽 발칸반도의 분쟁지역인 코소보에도 대표단을 파견했다.
몽골의 이 같은 협력에 미국, 영국 등은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에 있는 옛 소련군 기지를 개조해 유엔 평화유지군의 북아시아 훈련시설로 하는 ‘선물’을 줬다. 다른 나라 군인들이 훈련받으러 오면 몽골은 군인들이 외출·외박 때 쓰는 달러를 챙길 수 있게 된다.
미국 망명 희망 이라크인 외면
미국 ABC 뉴스 인터넷판은 지난 16일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이후 미군에 협력한 이라크인들이 미국으로부터 혜택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버림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내에서는 이교도에 협력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받고 있지만, 미 정부는 이들의 안전이나 생명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 미군 협력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들의 간절한 희망이 실현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ABC는 전한다.
실제로 미 의회는 향후 2년간 통역 등 미군 협력자들에게 1000건의 특별 입국사증(비자)을 발급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이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인을 포함해 36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미국 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들의 절박한 처지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전쟁을 감행했다는 미국의 처지에서 ‘이라크는 위험해 못 살겠다’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이라크전이 실패한 전쟁임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국외 탈출자들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것은 이라크전의 초라한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에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시 행정부는 ‘협력자들을 버리고 있다’는 비판에 강한 손사래를 치고 있다. 앨런 소어브레이 국무부 차관보는 “행정부가 그런 제한을 가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미군에 협력한 이라크인의 미국행을 주선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커크 존슨은 “이라크인 협력자 500여 명의 미국행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단 한 건도 성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존슨은 2005년 미국국제개발처(USAID) 소속으로 이라크 팔루자에서 일한 바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이라크인들은 이제 자신들이 배신당했음을 깨닫고 있다”며 “우리를 도운 사람들에게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부 김용석 기자 gabjini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