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리포트

휴가 간 사이 책상 뺄까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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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인들 ‘휴가단축증후군’ 확산… 비용 부담과 공항 보안강화도 불편

미국 직장인들은 최근 휴가단축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직장인들은 최근 휴가단축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여름 휴가 시즌은 노동절(매년 9월의 첫째 월요일) 연휴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엘렌 케핏은 햇볕이 강한 해변에서 일주일 휴가를 보내는 게 꿈이다. 하지만 그녀는 올 여름 휴가를 포기했다. 시애틀의 보잉 공장 직원인 제프 홉킨스 부부는 매년 휴가 때마다 가던 낚시여행을 취소했다. 케핏과 홉킨스 부부 사례같이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올 여름을 마감한 휴가단축 증후군(Shrinking-vacation Syndrome) 직장인이 늘고 있다.

보통 미국인은 유럽 근로자가 받는 4~6주의 휴가일수와 비교해 훨씬 적은 2주 정도인데 이마저도 대폭 줄이고 있다. 사설 여론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향후 6개월 내 휴가를 낼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1978년 이래 최저다. 또 패밀리스앤드워크 연구소에 의하면 미국인 3분의 1은 주어진 휴가를 다 사용하지 않는 실정이며 게다가 노트북, 휴대전화, 블랙베리 등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휴가 중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샐러리맨 64%가 고용 불안 느껴

이처럼 휴가를 거부하거나 단축하는 미국인이 급증하는 원인은 뭘까. 먼저 고유가로 인해 승용차 기름를 가득 채우는 데 50~80달러가 드는 휴가비용 부담과 최근 테러 음모로 더욱 강화된 공항 보안검색으로 겪는 불편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꺼리는 미국인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 “2주일간의 휴가를 내 어딜 떠난다는 것은 옛일이 됐다”고 미국 자동차협회(AAA) 대변인 마이크 피나는 말했다.

하지만 최대요인은 세계화와 아웃소싱 시대를 맞아 자신이 휴가간 사이에 책상이 없어질까 염려하는 이른바 ‘실직의 불안감’을 느끼는 미국인이 많아서다. 미국 직장인 중 겨우 36%만 고용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는 것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다른 선진공업국과 달리 미국은 고용주의 자유의사로 휴가기간이 정해진다. 이 결과 근로자가 충분한 휴가기간을 갖지 못하는 점을 두고 노동단체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 국회가 최저 법정 유급휴가 기간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연간 2400시간으로 세계 최대로 조사됐다.

한편 워싱턴 소재의 한 경제정책연구소(EPI) 연구원 실비아 알레그레토는 “미국인 사이에 청교도적인 직장윤리와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성을 강조하는 노동문화가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 현상을 분석했다.

휴가사용 거부와 연관된 사회·경제적 문제를 두고 비즈니스 전문가는 적정한 휴가가 실제로 생산성을 활성화하는 촉매제라는 입장이다. 경영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사는 휴가를 가지 않아 과로와 스트레스에 쌓인 직원을 위해 미국 독립절과 크리스마스 때 두 차례씩 회사 문을 닫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푹 쉬는 여가시간이 어떤 건지 직원이 이제 알게 됐다”고 전했다.

<유진(미국 오리건주)/조민경 통신원 mcg9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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