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에스에프가 질적 성숙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공상’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적잖게 작용했다.
지난달에 에스에프,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을 기획하고 만드는 이들과 함께 조촐한 행사를 치렀다. 연배가 비슷하고 취향도 겹치고 (나를 포함하여) 다들 성격도 나쁘고 특이해서 가끔 어울려 노는데, 어느 날 그 중 한 명이 ‘이렇게 술만 마시지 말고 생산적인 뭔가를 해보자’고 해서 벌인 일이다. 우리끼리 재밌자고 쿵짝쿵짝 작당했지만 대관료와 번다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강연 프로그램은 유료로 기획했다. 이 대목에서 잠시 고민해 보았다. 에스에프나 미스터리에 관한 얘기를 과연 제 돈 들여가며 듣고 싶어할까?
다행히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몇몇 매체에서 호의적으로 다뤄주는 바람에 좌석 예매는 일찌감치 끝났다. 그 사이에 모 신문사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강연자가 네 분이네요. 두 분은 출판사 대표고 한 분은 에이코믹스 편집장, 그런데 박상준씨는 뭐 하는 분이죠?” 아, 박상준. 그는 뭐 하는 사람인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나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딱 부러지게 정의하지 못한다.

에스에프 전문가 박상준씨 | 김세구 기자
‘공상과학소설’이란 일본식 표기 사용
“어디 보자, 그러니까 그게 에스에프와 관련된 이런저런, 거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젠장, 밑도 끝도 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냥 에스에프 아카이브 대표라고 할걸. “모든, 일을요?” 재차 물어보는 기자의 말머리를 적당히 돌리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나에게 있어 박상준은 어떤 사람인가’를 고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박상준씨와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십이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집총거부자, 성폭력과 성매매 피해자, 이주노동자 등의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한마디로 안 팔리는 잡지의 편집자였다. 하지만 의미 있는 잡지였고 어떻게든 팔고 싶었다. 그래서 안 돌아가는 머리로 겨우 떠올린 게 만화와 에스에프에 관한 글을 싣는 거였다. 둘 다 문화적으로 왕따 비슷한 걸 당하는 신세였으니 매체의 정체성에도 어긋나지 않겠고 무엇보다 내가 관심이 있었다. 만화는 이 방면으로 해박한 지식과 발랄한 필력을 자랑하는 <딴지일보> 함주리 기자면 충분했다. 에스에프에 관해 써줄 필자로는 누가 좋을까. 그때 내가 자문을 구했던 모든 이들이, 너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당연히 박상준이지” 하고 얘기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청탁하기 위해 박상준씨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대 교정이었다. 대학원에서 에스에프에 관한 논문을 쓰는 중이라고 했다. 학자 타입의 점잖은 인상인데다 말투도 느긋했고, 나는 겨우 6개월이 지난 얼치기 편집자 신분으로 아홉 살이나 차이가 났으니 아무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청탁 취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자니 그가 “쓰죠 뭐”라며 오뉴월에 수박 쪼개듯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선수였다. 하긴, 에스에프에 관해 무지한 이들로부터 어슷비슷한 청탁을 얼마나 많이 받았겠나.
원고는 세 번에 걸쳐 연재하기로 했다. 이제는 구할 길도 막막한 잡지에 실린 그 글을 오늘 팔랑팔랑 넘기다 보니, 여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어 새롭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이 분야는 관심이 있는 사람만 관심이 있고 관심이 없는 사람은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와중에 몇몇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한국 에스에프 출판은 동서추리문고와 아이디어회관이 왕성하게 소설을 쏟아내던 1970년대를 최초의 전성기로 본다. 하지만 이때 나온 책들은 “철저하게 일본어 중역판”이었다. 즉 이 시기에 에스에프의 세례를 받았던 세대는 “일본 편집자들의 취향과 시각으로 걸러진 작품들만을 2차적으로 접해왔던 것”이다. 이 분야에 관한 한·일 격차는 컸고,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왜곡돼 전해진 것도 많다. 이를테면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이 그렇다.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이라는 미국 잡지의 일본어판을 만들 때 일본의 편집자들은 ‘Fantasy’와 ‘Science Fiction’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공상과학소설지’(空想科學小說誌)라는 한자를 병기했는데, 이 말이 그대로 수입되면서 한국에서는 ‘에스에프소설=공상과학소설’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에스에프가 질적 성숙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공상’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적잖게 작용했으리라”고 그는 적고 있다. 굳이 이 대목을 요약한 이유는, 모두에 언급했던 행사 소개 기사에 ‘에스에프소설’이 전부 ‘공상과학소설’로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에프소설’은 ‘과학소설’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한다.
SF소설에도 ‘눈물의 감동’이 있다
동서추리문고와 아이디어회관에서 펴낸 문고본 에스에프를 읽으며 흥미를 느꼈던 박상준씨가 대학에 입학한 뒤로 헌책방을 들락거리며 알게 된 것은 자신이 그간 읽었던 에스에프들이 “일본의 문고판 에스에프의 해설까지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편 영어 원서를 읽으며 새롭게 바라보게 된 에스에프는 “과학공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담을 수 있는 미디어”(<한겨레> 인터뷰)이기도 했다. 그는 에스에프로 먹고살 방편을 고민하다 직접 기획과 번역에 뛰어들었다. 모아온 자료는 차츰 방대해져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었고 기획자로서, 필자로서의 명망도 생겨 여기저기 불려다니기 시작했다. 출판 관련 일뿐만 아니라 영화와 각종 전시에도 호출되었다. 한때는 에스에프 전문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에스에프가 문학이냐 아니냐 같은 게 아니라, 이 장르가 가지고 있는, 르 귄이 “밤의 언어”라고 얘기했던, 커다란 잠재력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유실될 뻔한 자료들을 모아왔다. 돈도 시간도 늘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의 느긋한 품성에 기인한 듯하다. 덕분에 나 같은 독자들이 이만큼이나마 양질의 에스에프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일 테니, 나에게 박상준씨는 고마운 사람이다. 다만 박광온씨만큼이나 ‘노잼’ 타입이라는 것이 옥에 티랄까.(안타깝도다!)
마무리는, 관심을 좀 가져달라는 의미를 담아 그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건네주었던 책을 소개하는 걸로 갈음하겠다. “많은 이들이 에스에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딱딱하고 정서적으로 메마른 이야기들이라는 선입견은 다니엘 키스의 <엘저넌에게 꽃을>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 소설을, 가령 에스에프가 줄 수 있는 정서적 감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에스에프를 읽고 눈물을 글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