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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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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조까라 마이싱~’이에요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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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기억하고 있겠지만 ‘냉장고 속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방법’과 같은 썰렁유머를, 박민규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능청스럽게 리바이벌할 뿐 아니라 확대 재생산한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그는 홀연히 나타났다. 나이로 치면 그는 386세대다. 하지만 마치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10대였던 소년이 자고 일어나 보니 21세기가 되어버렸다, 라고 할 만큼 그의 소설은 1990년대를 관통해온 자기세대의 감수성과 이질적이다. 또한 이전 한국문학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도드라진다. 소설가 박민규씨(40)는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작가상,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렇다고 어디 무인도에서 홀로 도 닦고 온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자신의 동년배들에겐 무의식의 저변으로 가라앉은 대중문화 아이콘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만화시리즈 ‘슈퍼특공대’의 주제가(‘지구영웅전설’, 문학동네)라던가, 한국대중가요의 전성기 전,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1980년대 팝송 쿨 앤드 갱의 ‘셀레브레이션’(‘핑퐁’, 창비) 같은 것들이다. ‘냉장고 속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방법’과 같은 썰렁유머를, 박민규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능청스럽게 리바이벌할 뿐 아니라 확대 재생산한다. 학교와 동사무소, 벤처기업, 미국, 중국, 아버지, 어머니 등 ‘소중하거나 해악스러운 세상의 것들’을 그냥, 냉장고에 집어 넣어버린다. (‘카스테라’, 문학과지성사 중 단편 ‘카스테라’)

박민규 소설은 얼핏 스스로 주장하듯 ‘무규칙 이종소설’인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소설 핑퐁은 236쪽부터 무려(!) 3쪽에 걸쳐 핑퐁핑퐁핑퐁…이라는 글자만 나열되어 있다. 그는 그 정경을 ‘길고, 아득한 0:0이었다’고 풀이한다. 마치 무협지를 보듯, 박민규 소설은 술술 읽힌다. 속도감있는 블랙유머로 가득차 있지만, 소설을 덮은 뒤 남는 잔상은 간단치가 않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박민규의 소설처럼 공학적으로 계산된 소설도 흔치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읽는 사람들에게는 변칙적이고 자유스러운 형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문장에서부터 전체적인 구성까지 사실 정통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탄탄함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덧붙인다.

박민규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형철씨는 “일단은 상업소설이라고 할 때 보통 떠올리는 것은 연예라던가 가족이야기인데, 박민규 소설은 정공법적 접근이라기보다 소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일반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풀이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박민규 소설의 스타일. 신씨는 “예컨대 주인공이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보통 작가들은 내면을 ‘복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지만, 박민규 소설은 비유 하나로 끝내버리는 식이다”라고 말한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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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영찬씨는 박씨 소설의 특징은 이전 문학작품들의 ‘엄숙주의’를 탈피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박민규 소설엔 문학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순간적으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일탈적 문법 같은 게 있다”며 “소설에 인터넷 게시글 형식을 활용한다든가 B급 문화 같은 것을 덧붙여 활용하는 게 단적인 예”라고 설명한다.

박민규의 소설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젊은 문학도에 많은 영향을 드리웠던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문체와도 또 다르다. 김영찬씨는 “박민규씨의 소설을 텍스트 삼아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데,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변부 마이너리티의 삶이나 고민, 고통에는 쉽게 공감하는 듯하면서도 그의 문학적인 형식실험이 학생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진 않다”고 말한다.

주변부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소설의 ‘인기’는 더 이상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주류진입’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루는 신진작가들이 여럿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형철씨는 “박민규 이후 세대 작가들은 그의 영향이라기보다 자기세대에 충실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인다. 박씨의 소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했다기보다 기존 문학과 다른 하나의 군집단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어쨌든 박민규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래저래 ‘썰’을 푸는 한국문단에 대고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서 잊힌 ‘야유’를 다시 끌어냈다. 조까라 마이싱~!이라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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