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줄기세포 전성시대다. 줄기세포만 있으면 클론의 강원래 같은 하반신 마비환자들이 벌떡 일어날 수 있고 손상된 장기를 마음대로 고칠 수 있고 심지어 대머리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도 줄기세포 연구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안타깝게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가 하면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줄기세포 연구에 30억달러를 지원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또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에 자극받아 영국, 중국, 일본 등이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증시에서는 '줄기세포'라는 말만 들어가면 주가가 뛴다. 마치 줄기세포만 만들어지면 인류가 늙지 않고 살아가는 지상낙원이 펼쳐질 듯한 분위기다. 줄기세포가 가져오는 파장은 이미 과학-의학계를 넘어 사회-문화 현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반복분열 제어기술 개발이 과제
그렇다면 줄기세포는 과연 '21세기판 불로초'인가. 줄기세포란 말 그대로 생명활동의 근간(줄기)이 되는 세포다. 나무의 줄기를 일부 꺾어 흙에 심어두면 새로운 나무가 자라듯이 줄기세포를 반복해서 분열시키면 새로운 조직이나 장기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줄기세포를 '만능세포'라 부른다. 즉 줄기세포는 개체를 구성하는 세포나 조직이 되기 위한 원시세포이자 근간세포라고 할 수 있다.
줄기세포의 특징은 반복 분열과 재생산이다. 우리 몸 안에서 줄기세포는 빠른 속도로 분열해 특정한 조직이나 기관을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줄기세포를 제대로 추출하고 분화하는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난치병이나 불치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뇨병 환자를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세포를 만들거나 시력이상자를 위해 눈의 각막세포를 만들거나 간암 환자를 위해 간 세포를 생산하는 등 각종 조직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줄기세포의 문제점은 바로 '반복 분열'에 있다. 무한히 분열하는 것은 바로 암세포의 특징이다. 줄기세포에서 반복 분열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암세포처럼 끝없이 증식할 위험이 있다. 이때문에 과학계에서는 줄기세포 연구로 인류가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과연 과학자들이 생명의 오묘한 과정을 모두 이해하고 줄기세포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 특히 줄기세포에 들어가는 막대한 연구비용을 생각한다면 과연 경제적인 연구일까?
생명체인가, 세포덩어리인가 논란
줄기세포 연구는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그중 가장 분화능이 뛰어난 배아줄기세포에 관심을 갖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시험관 시술과정에 만들어진 냉동잔여배아를 이용하거나 복제양 돌리를 만들었던 체세포복제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인간복제배아를 만들어 줄기세포를 추출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줄기세포와 관련한 윤리-철학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바로 인간이 될 수 있는데 배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볼 것인가.
종교계나 철학계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배아를 파괴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많은 난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이 난자를 제공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체세포복제기법을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복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복제동물 돌리나 영롱이를 만들어내듯이 사람의 체세포를 난자(무핵난자)에 이식하면 똑같은 DNA를 가진 배아가 만들어진다. 이를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면 체세포 제공자와 똑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복제인간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과학자들은 수정된 지 14일이 안 된 배아는 생명체로 볼 수 없으므로 의학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사회가 적절히 제어하면 복제인간 탄생의 위험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윤리논쟁은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을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아직도 정답이 없는 상태다.
생명윤리학자들의 비난이 있지만 줄기세포 연구는 이미 돛을 올렸다. 2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줄기세포 바람은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학, 즉 세포의 재생을 통한 난치병 정복의 미래 의학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과학의 발전에는 후진기어가 없다'는 말처럼 조금의 가능성만 있다면 일단 도전부터 하는 것이 과학의 발전사이며 인류의 역사 아닌가. 줄기세포 연구에 후진기어는 없지만 브레이크로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이은정 [건강과학팀 과학전문기자] ej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