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다음은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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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지난주에는 삼성화재배를 거머쥐었고 신년 초에는 도요타덴소배 사냥에 나선다.

이세돌이 달리자 세계 바둑계의 검토실이 다시 부산해지고 있다. 지금 기세라면 그로서는 이번 시즌이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가 우리 모두 궁금해하는 질문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해답으로 가는 해법만큼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거다. 간단히 말하면, 이세돌이 이창호 다음으로 세계 제일이 되느냐 하는 거다.

[바둑산책]이창호 다음은 이세돌

이창호가 세계 제일이 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바둑계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이제 한-중-일의 프로 바둑은 시장을 단일화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단적인 예다. 각국 국내 기전의 함의와 성격이 어쩔 수 없이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아무리 자국 내 제일인자라도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진정한 실력자로 인정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렇지 아니한가. 전에는 일본의 제일 타이틀 기성전의 도전기가 곧 세계 바둑계의 일인자를 가리는 마당이었다. 그러나 요즘 일본 기성전 도전기에 크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장쉬니 야마시타니 하네니 하는 이름의 폭발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요다, 아니 조치훈까지도 그렇다. 중국의 국내 기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세돌의 스퍼트가 세계 랭킹 1위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이창호를 세계 기전 결승에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창호가 중국 신예들의 인해전술에 밀리고, 그 중국 신예들을 이세돌이 제압하는 일이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일지....

이세돌이 작년 봄 LG배 우승 이후 이번 삼성화재배 우승까지 2년 가까이 답보하고 있을 때 이창호는 앞으로도 길게는 10년은 더 건재할 것이며, 적어도 5년 동안은 '강호제일검'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세돌이 정체하고 있는데다 그 사이에 박영훈-최철한-송태곤 등 신예들이 대거 출현하는 양상이어서 이세돌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인 의미가 있었다.

그랬다. 이창호는 국내에선 스승인 조훈현 한 사람만 상대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그에 비해 이세돌은 겨뤄야 할 상대가 훨씬 많아졌다. 전력의 분산과 집중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이창호가 등극할 무렵에는 중국의 신예들도 요즘같이 벌떼처럼 덤벼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한국과 중국의 세대교체 주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에는 또다른 신예들이 보이며 중국의 경우, 해가 바뀌면 또 어떤 낯선 친구가 나타나 콩지에-구리-왕시 등의 자리를 노릴지 모른다.

이세돌은 시간이 별로 없다. 차분히 세계 정상 등정을 구상할 여유가 없다. 이창호는 바둑 외적인 일, 승부가 아닌 일상사에 호기심을 발동하는 일이 없었다. 전혀 없기야 했을까만은 그의 호기심 대상을 주변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세돌에게는 있다. 그것도 그의 정상 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스스로의 안정감, 혹은 부동심에 영향을 끼칠 것이므로. 다만 이런 것은 있다. 정상의 세대교체는 패턴의 반복이라는 것. 바둑으로 말하자면 공격-수비형, 전투-계산형, 실리-두터움형, 그런 상극적 요소의 주인공들이 번갈아 나타나 천하를 제패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세돌은 맞다. 이세돌은 모든 면에서 이창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바둑을 떠난 일상에서도 그렇다. 옷차림이 다르고, 음성이 다르고, 웃음이 다르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 믿을 수 있으랴. 

이광구[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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