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목사-원불교 교무 등 종교인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 한 스님의 영결식이 빛고을 광주에서 지난 8월 8일 열렸다. 스님의 투병을 돕기 위해 목사가 나섰다는 미담이 화제가 됐지만 스님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한 채 종교간 화합에 한 알의 씨알이 된 것이다.
승려이자 문화-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종교간 화합에 노력해온 일철(광주 증심사 주지) 스님이 8월 6일 입적했다. 8월 8일 증심사에서 열린 영결식에 이어 순천 송광사에서의 다비식에는 원불교 이응원 교무, 강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 등 광주-전남 지역 종교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대거 참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음반 표지에는 일철 스님의 투병기를 렌즈에 담아온 김홍희씨의 사진도 실린다. 음반은 1,000장 정도 한정판으로 발매된다. 수익금 일부는 일철 스님이 상임의장을 맡았던 '무등산 보호단체협의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갈등-반목을 베어 버렸던 '도끼 스님'
'스님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 목사는 일철 스님을 '도끼 스님'이라고 말한다. 세상 속 꽁꽁 얼어붙은 얼음 같은 갈등이나 반목을 풀어낼 수 있는 그런 도끼의 기개를 스님의 내면에서 느꼈던 까닭이다. 이는 두 종교인이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원불교 이응원 교무는 영결식에서 "스님이야말로 관용과 조화라는 종교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신 분"이라는 내용의 조사를 낭독했다. 마흔여덟이면 고승대덕(高僧大德)의 반열에 오르기에 때 이른 나이이다. 또 광주에서의 활동 역시 1년 남짓하지만 스님의 입적은 지역민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교무에 따르면 일철 스님은 '수행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종교지도자'로, 경영과 행정 등의 영역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겸비한 '준비된 인재'였다. 특히 생명과 환경 문제에 관한 한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보였다.
이 교무는 "일철 스님이 이웃 종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문(門)은 달라도 도반(불교적 용어로서 동반자)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이 교무는 송광사에서 치러진 다비식에도 참석, 스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광주-전남 지역의 종교계는 일철 스님이 2002년 증심사 주지로 부임하기 전부터 여러 종교인들이 힘을 모아 지역의 문화와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종교간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중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종교인 모임'은 특히 불교-가톨릭-개신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참가, 환경운동과 함께 종교간 화합을 이루어낸 광주-전남 지역의 대표적 행사로 평가받고 있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눈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종교는 미혹에 빠지지 않고 맹신-광신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마음에 따릅니다. 흔히 종교라는 틀 안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러한 종교적 행위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시시때때로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풍경소리의 모태는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종교인 모임'과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생명을 보듬고 환경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펼쳐내는 '생태문화마당'으로 볼 수 있다.
사찰을 문화마당으로 열린 공간화
이를 위해 스님은 증심사를 사찰이 아닌 대화의 공간으로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000여 평의 주차장 아스콘을 걷어내고 무대를 만들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시민들과 종교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기존의 사찰 개념을 허물어버린 셈이다.
반향은 매우 컸다. 참여하는 시민은 갈수록 불어났다. 마침내 광주시에서도 자발적으로 지원금을 배정했다. '물과 기름' 같던 종교인들도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잦아졌다.
전영 신부(광주교구)는 "생명이 숨쉬지 못하는 아스콘을 걷어낸 주차장 자리에 풀꽃을 가꾸는 스님의 모습은 이웃 종교인들에게 전해진 풍경소리의 울림을 더욱 크고 깊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보고 듣고 느끼는 존재인 만큼 이웃 종교간의 모임을 반복할수록 서로를 긍정하는 개방적 종교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종교간 교류와 협력은 사회적 화합과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임의진 목사는 "풍경소리 음악회가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문화의 마당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은 스님의 덕"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는 "스님은 매달 보름날 풍경소리 음악회를 통해 새로운 종교간 대화의 운동의 지평을 열었다"며 "이 지역 종교계가 기지개를 켜고 서로 하나 되어 지역 사회를 가꾸는 일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 종교인들은 일철 스님의 자리를 메우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등산을 이웃 종교간 대화의 장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종교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음악회 중심으로 진행되는 '무등산 풍경소리'를 확대 개편한다는 방침은 이미 잡혀 있다.
"스님은 물론 우리 모두, 종교도 그 무엇도 벽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막힘없이 소통하고 교감하며 한데 어우러지고 보듬는 상생의 자리를 꿈꾸었다"고 말하는 이응원 교무는 "8월 16일 풍경소리 공연을 기점으로 스님의 빈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논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일철 스님은 조계종단 요직을 두루 거친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생명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일'에 가없는 열정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님의 뒤안길에 남은 문(門)을 향해 떠나는 도반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오종욱〈월간 '선원' 편집실장〉 gobaoou@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