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A Man Who Paints Water Drops)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프랑스
상영시간 79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김오안, 브리지트 부요
출연 김창열
개봉 2022년 9월 28일
등급 전체 관람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익히 친숙하게 알고 있는 예술가나 작품이 있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경지에 도달한 가치 있는 결과물이란 전문적 평가임은 물론, 더불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갈 만큼 대중성과 화제를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있어 대표적인 경우가 ‘물방울 그림’으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그림이다. 굳이 화가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작품명은 모르더라도 화폭 위에 현실적으로 묘사된 물방울 이미지의 신비로움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유명한 백남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와 함께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아티스트이자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고 김창열(1929~2021) 화백의 말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연출을 맡은 김오안 감독은 화백의 둘째 아들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작가이자 뮤지션, 비디오 아트와 뮤직비디오 연출 등 다양한 예술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버지의 인생과 작품에 담긴 매우 사적이고, 내밀한 정서를 차분하게 기록한 이번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식을 치렀다.
50년 동안 그려온 물방울의 진실
이 영화는 2015년부터 촬영을 시작해 2019년 최종 편집을 마쳐 완성했다. 감독은 당시 멀리 떨어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아버지를 자주 뵙고 평소 궁금하던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기획했다. 하지만 정작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부자(父子)라는 특별한 관계가 대상을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고심 끝에 오래전부터 공동작업으로 경험을 쌓아온 동료 브리지트 부요가 공동감독으로 참여했다.
브리지트 부요는 되레 아들로서만 목도할 수 있는 순간과 이야기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매우 정적이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영화는 적어도 ‘한 화가가 어떻게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물방울만 그리게 됐는가?’라는 통속적인 의문의 답을 제공한다. 카드를 뒤집듯 단번에 내놓지는 않는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수증기가 모여 비로소 하나의 결정체인 물방울로 드러나듯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화폭 위에 아로새겨진 ‘물방울의 비밀’을 유추해간다.
여기엔 화백의 삶을 관통해 치명적 생채기가 돼버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같은 한국의 현대사가 중요한 기억이자 사건으로 등장한다. 결국 한 천재적 예술가의 삶 역시 민족 다수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이는 보편적 성찰과 울림으로 전환된다.
특별한 사진전과 함께 입체적 개봉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호기심과 경청의 발로는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다. 혈연이라는 필연으로 시작했지만 화려한 명성과 부의 안락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이와 단절된 개인적 세계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과묵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모순적 인생을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이 둘의 관계는 가까스로 익숙한 균열과 거리를 둔 채 연결되고,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이것이 나의 아버지다’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중요한 방점이 된다.
그렇게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한 비범한 예술인의 개인사와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록의 가치에 더해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아들 세대의 겸허하고 애정 어린 자세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편성과 관객의 공감대를 확장하는 작품이 되고 있다.
영화의 개봉에 발맞춰 지난 9월 21일부터 특별한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영화와 같은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란 제목으로 기획한 이번 행사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성곡미술관에서 오는 10월 15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영화를 공동 연출한 두 감독이 전문 포토그래퍼 이력을 지닌 만큼 그들이 이 영화와 관련해 남긴 사진과 영상 50여점을 전시한다. 화백의 아내이자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한 김마르틴이 작성한 글 등 다큐멘터리에서는 미처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주변 자료도 함께 공개한다. 영화개봉의 연장선상으로 기획한 전시인 만큼 영화의 여운을 간직하고 화백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외삼촌에게 각각 서예와 데생을 배우며 미술과 가까운 유년기를 보냈다. 16세 때 이쾌대(李快大)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경찰과 미술교사 등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기는 크게 2개로 나뉜다. 전반기는 그룹 활동을 통해 현대미술운동을 했던 시기로 1957년 비슷한 연배의 젊은 예술인들과 연합해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화 운동. 불어로 ‘비정형성’을 뜻한다) 운동을 주도한다. 미술뿐 아니라 시와 산문 등을 발표하며 문화 전반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즈음은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만든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이후 196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판화를 전공하며 추상회화는 물론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창작활동을 펼치다가 1969년 백남준의 주선으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프랑스로 이주한다.
후반기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이후 본격적으로 물방울 작품에 전념한 별세(2021년 1월 5일) 때까지의 작품 활동 기간이다.
백남준, 김환기, 박서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함은 물론, 문화예술 발전을 통한 국가 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한국 화가 최초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인 레지옹 도네르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9월에는 김창열 화백이 제2의 고향이라고 했던 제주도에 그가 기증한 22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해 운영 중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