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멍 때리며 휴식…만화 속 영웅과 동심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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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이효석의 메밀꽃밭 유명… 지금은 감자꽃 가득

강원 평창 봉평면에 있는 감자꽃밭 / 최영진 작가 제공

강원 평창 봉평면에 있는 감자꽃밭 / 최영진 작가 제공

강원 평창을 얘기할 때 메밀을 빼놓을 수 없다. 평창 봉평면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이 선생이 나고 자란 생가도 있다. 거리 곳곳에서 메밀꽃밭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마치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하다고 한다. 다만 이맘때는 메밀꽃 대신 감자꽃이 가득했다. 기자같이 잘 모르는 사람은 헷갈릴 수도 있겠다.

■메밀의 고장

평창 곳곳에 메밀 음식점이 있다. 특히 봉평면 일대에 많이 몰려 있다. 특이하게 ‘간장나물 메밀국수’라는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3대째 이어오는 집이다.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에 있는 이효석 선생의 생가도 잠시 둘러봤다.

간장나물 메밀국수와 대중적인 메밀물국수를 함께 주문했다. 간장나물 메밀국수는 메밀면에 각종 나물이 들어간 게 특징이다. 간장과 들기름이 고소한 맛을 낸다. 약간 느끼하다 싶기도 한데, 나물과 함께 먹으면 느끼함을 잡을 수 있다. 오묘한 맛이다. 기자와 최영진 작가에겐 물메밀국수가 입에 맞았다. 시원한 육수와 면이 술술 넘어갔다. 많은 메밀 음식점이 있으니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강원 평창에 있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기념관의 내부 모습 / 최영진 작가 제공

강원 평창에 있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기념관의 내부 모습 / 최영진 작가 제공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은 평창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남북·북미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된 대회라 의미가 크다. 강원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도다.

이 때문에 올림픽 기념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념관 앞에는 지금은 철거된 올림픽 개·폐회식장 터가 있다. 언덕배기에 우두커니 성화대만 남았다. 기념관 관람은 무료다. 평창올림픽의 전반을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시청각 효과를 통해 대회 당시 환희와 감동을 전하는 공간도 있다. 올림픽 기념 배지, 실제 선수들이 착용한 경기복 등을 전시 중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유니폼도 보였다. 봅슬레이, 스키점프, 컬링 등의 종목을 가상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눈길을 끌었다.

기념관 내 기념품점을 둘러보다가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올림픽 당시 큰 인기를 끌며 한때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던 인형들이다. 아들 생각이 나서 수호랑 인형을 하나 집어 들었다. 최 작가가 “조카 선물”이라며 인형값을 지불했다. 추후 인터넷을 검색하니 기념품점의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지난 6월 11일 강원 평창 흥정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지난 6월 11일 강원 평창 흥정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물멍’과 ‘비멍’

시원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흥정계곡으로 향했다. 먼저 계곡이 관통하는 허브농원에 들렀다. 허브를 테마로 한 관광농원으로 1993년에 문을 열었다. 나이 쉰에 농원 조성을 시작한 사장 부부가 이제 여든이 됐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향도 다채로운 허브를 만날 수 있다. 로즈메리, 재스민, 월계수, 카모마일, 아이리스 등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눈개승마, 네틀, 틸란드시아, 알리움, 기린초 등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허브가 더 많았다. 농원 내에는 식당, 카페, 야외 공연장도 마련돼 있다.

농원 끄트머리는 흥정계곡의 한줄기와 맞닿아 있다. 물이 많지는 않았다. 바닥이 투명하게 보였다. 돌멩이로 물수제비 뜨기를 해봤다. 어릴 때 시골 냇가에서 했던 놀이다. 대여섯 번씩은 성공했던 기억이 났다. 돌멩이는 고작 한 번만 물을 튕기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최 작가는 네 번까지 해냈다.

지난 6월 11일 강원 평창의 한 허브농원에서 비를 맞은 허브에 꿀벌이 날아들고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지난 6월 11일 강원 평창의 한 허브농원에서 비를 맞은 허브에 꿀벌이 날아들고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둘은 의자에 앉아 ‘물멍(멍하게 물을 바라봄)’을 했다. 더할 나위 없는 ‘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졌다. 지나가는 비이겠거니 하고 무시했는데 빗줄기가 굵어졌다. 카메라를 챙겨 급히 식당의 야외 테라스로 몸을 피했다. 각종 허브와 나뭇잎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했다. 지붕에서 빗물이 미끄러져 내렸다. 계획에 없던 ‘비멍(빗소리를 넋 놓고 들음)’을 즐겼다.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허브들은 더 싱그럽게 보였다. 노랑, 파랑, 빨강, 보라 등 각양각색의 꽃잎들이 햇살을 받아 뚜렷한 자태를 뽐냈다. 급속한 지구온난화로 사라져가는 꿀벌도 날아들었다.

강원 평창의 한 인형박물관에 있는 ‘거울의 방’ 모습 / 최영진 작가 제공

강원 평창의 한 인형박물관에 있는 ‘거울의 방’ 모습 / 최영진 작가 제공

■동심을 만나다

평창에는 인형박물관이 있다. 2019년 6월 개관한 이 박물관은 인형과 피규어를 아우르는 종합 테마 공간이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인형이라고 해봐야 뭐 그리 특별할까 싶었다.

볼거리가 많았다. 동심이 마구마구 소환됐다. 박물관 입구에 붙어 있던 소개글이 떠올랐다.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와 함께 추억과 예술의 공간 속으로 떠나보세요.”

어린 시절 즐겨봤던 만화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재회했다. ‘태권브이’, ‘우뢰매’, ‘독수리 오형제’ 등의 피규어다. ‘영웅’으로 모셨던 이들이다. 이야기 구성은 주로 ‘권선징악’이었다. 악당이 선한 주인공을 괴롭히지만, 결국 선이 악을 이기는 구조였다. 현실과는 너무 딴판이지만.

강원 평창의 한 인형박물관에 ‘우뢰매’ 주인공의 피규어가 전시돼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강원 평창의 한 인형박물관에 ‘우뢰매’ 주인공의 피규어가 전시돼 있다. / 최영진 작가 제공

1997년 나온 넥스트의 ‘The Hero’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고 신해철씨가 작사·작곡했다. “그대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 안의 깊은 곳에 그 영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피노키오, 백설공주, 도라에몽, 세일러문 등 수많은 인형이 기자를 과거로 데려갔다. 아이언맨과 헐크, 배트맨과 조커 등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수 전영록씨의 컬렉션 공간도 있었다. 전씨는 이 박물관의 명예관장이다. 그의 대표곡인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흘러나왔다. 3억원 상당에 이르는 만화·영화의 피규어를 수집했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의 피규어도 볼 수 있다. 40㎝ 크기로 세계에서 500개밖에 없는 한정판이다. ‘거울의 방’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신비함을 자아냈다. 1990년대 말 출시된 전통 한국 인형도 기증을 받아 소장하고 있다.

‘돌 포토그래퍼’(Doll Photographer)라고 인형을 소재로 장면을 연출해 이를 사진으로 찍는 작가의 작품에도 눈길이 갔다. ‘빅토리안 돌 하우스’라는 작품 앞에서도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1837~1901) 동안 유행했던 ‘빅토리안 양식’을 반영해 만든 인형의 집이다. 미국인 작가 2명이 1년 동안 만들었다. 미니어처 200여점을 18칸의 실내에 배치했다. 당시 작품의 호가가 7만달러였다고 한다.

지난 6월 10일부터 2박3일 동안 강원 평창에서 먹은 음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관령 한우, 탕수육, 커피콩빵, 메밀국수 / 최영진 작가 제공·정희완 기자

지난 6월 10일부터 2박3일 동안 강원 평창에서 먹은 음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관령 한우, 탕수육, 커피콩빵, 메밀국수 / 최영진 작가 제공·정희완 기자

■평창의 맛집

음식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평창은 메밀국수 외에도 송어회, 황태, 오삼불고기 등이 유명하다. 이런 음식을 다루는 식당이 워낙 많아 어디를 가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탕수육 맛집을 발견했다.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난 집이다. 대기가 길어 탕수육을 먹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오후 4시까지만 영업을 하는데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이미 매장 내 식사는 마감이 됐다. 포장은 오후 5시까지 가능했다. 운이 좋았다. 탕수육과 군만두를 싸들고 숙소로 복귀했다.

탕수육 소스가 독특했다. 부추와 배추가 들어 있었다. 특히 배추의 아삭한 식감이 맛을 배가했다. 포장인데도 탕수육 튀김이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함을 유지했다. 단무지와 양파도 넉넉했다. 푹 익은 김치도 딸려 있었다. 단무지를 더 달라고 했는데 한 접시가 그대로 남았다.

둘째 날 저녁은 숙소에서 대관령 한우를 구워 먹었다. 투숙객이 거의 없어 바비큐 공간을 독차지했다. 숙소 사장이 최영진 작가의 카메라를 보더니 본인도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맑은 날이면 이곳 숙소에서도 은하수를 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찾았을 땐 구름이 많았다.

마지막 날은 컵라면과 남은 단무지로 아침을 때웠다. 이틀 내내 대체로 흐렸던 날씨가 막상 서울로 떠나려니 화창했다. 잠시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도 ‘평창의 온도는 나의 체온과 더없이 잘 맞았다.’ 2박3일 여행의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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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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