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전주 한옥마을, 보고 즐기는 코스로 안성맞춤
음식·숙박은 기대치 낮추고 사전 확인 필수
“방 하나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침대방이나 온돌방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크지 않아도 되고요. 혹시 반려견도 동반 입실 가능할까요. 조그만 소형견이고 짖지도 않습니다만….”

김제 만경낙조전망대 전경 / 안광호 기자
숙소 예약부터 쉽지 않다. 홈페이지에는 ‘반려견 동반 가능’으로 돼 있고, 객실 현황에서도 빈방이 있다고 나오지만 숙소 주인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또다시 다른 곳에 전화를 돌려야 한다. 수화기 너머 “가능한데 ‘세탁비’가 추가됩니다”라고 한다. 동반 입실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반려견과 함께 여행해본 반려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경험이다. 귀찮다 싶으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반려견 동반 호텔(펫캉스) 또는 전용 펜션을 예약하거나 애견호텔에 반려동물을 맡겨야 한다. 그마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여의치 않긴 하지만…. 어렵사리 숙소를 해결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목적지의 관광지를 검색하고 시설 이용료, 주변 맛집, 카페 등을 검색해본다. 가능한 몇 곳을 골랐으나 안심은 되지 않는다. 막상 가보면 또 다를 수 있어서다. 반려견 동반 입실이나 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성수기에는 이런 사례가 더 많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2092만7000가구)의 약 15%인 312만9000가구(통계청·2021년 조사)다.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0년 3조4000억원 수준에서 2027년 약 6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반려동물과의 동반여행은 곳곳에 높은 문턱이 여전함을 실감하게 한다. 업주만 탓할 수도 없다. 반려인 스스로 ‘펫티켓(펫+에티켓)’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려견과 함께 가볼 만한 곳 이번 여행 콘셉트는 ‘전북+반려견 동반+알뜰’로 잡았다. 3요소의 조합이니 꽤 까다로운 조건을 설정한 셈이다. 전북지역은 제주나 강원, 수도권 등에 비해 반려견과 함께할 만한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전북도와 관광공사 홈페이지, 관계자 추천 등을 참고해 김제→익산→전주 코스로 일정을 짰다.
‘반려견과 2박3일 동반여행’의 첫 여행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였다. 벽골제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제방 길이만 1800보 규모로 처음 축조했다. 제방 축조 등에 연인원 32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규모가 큰 국가사업이었다. 1420년(세종 2) 큰비로 유실된 후 지금은 약 3㎞ 길이의 둑만 남아 있다.

김제 벽골제 쌍룡조형물 / 안광호 기자
벽골제는 반려견 동반여행 콘셉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명소다. 벽골제 관광안내소를 지나 단지 정문에 들어서니 왼쪽으로 메인 건물인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이 나온다. 우리 농경문화의 전통과 역사를 전시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2층 카페에서 음료를 사들고 3층 전망대로 향했다. 강아지를 안고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제를 ‘지평선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된다.
단지 안은 산책로를 잘 갖춰 놓았다. 소나무동산과 생태연못 사이로 산책하기 좋게 데크가 깔려 있다. 곳곳에 버드나무와 푸른 잔디 사이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제법 많다. 벽골제의 상징이자 최고 인기 포토존은 잔디광장에 높게 세운 쌍룡조형물(높이 15m·폭 54m·몸통 직경 2m)이다. 이 지역의 전설에 착안해 2007년 대나무로 만든 쌍룡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형태로 마주 보고 있다. 바로 옆 그네타기와 디딜방앗간에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쌍룡조형물을 지나 단여광장과 중앙광장까지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여유롭게 단지를 돌아볼 수 있다.
휴일이지만 비교적 한적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단지 맞은편과 옆에 조성해놓은 주차장의 공간도 널찍하다. 주말에는 한복과 도자기 체험, 매듭 공예 등 가족단위의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오는 9월에는 이곳에서 지평선 축제(9월 29일~10월 3일)를 연다. 글로벌, 전통, 문화, 야간, 부대 체험 등 5개 분야 59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제 벽골제 단지는 입장료가 성인 기준 1인당 3000원이다. 김제시민과 6세 이하 영유아, 65세 이상 고령자는 입장료가 무료다.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700여개의 한옥이 군집한 전주한옥마을도 반려견과 함께 가볼 만한 장소다.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으로, 강아지와 마을 골목길을 산책하기 좋다. 다만 주말이나 휴일, 휴가철 등 관광객이 몰릴 때는 반려동물을 이동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서로 편할 듯싶다. 산책코스도 사람들이 붐비는 마을 주도로가 아닌 샛길을 권한다. 마을 내에서 강아지 동반 입장이 가능한 문화재는 전주향교(입장료 무료)가 유일하다. 전주향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을 제사 지내는 곳으로,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 있다. 가을에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영화 <YMCA 야구단>이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한옥마을에서 큰길을 건너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자만벽화마을과 옥류벽화마을도 강아지와 함께 가볼 만한 코스 중 하나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언덕에 자리한 자만벽화마을에서 한옥마을을 내려다보면 발아래 전주향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곳곳에 카페와 쉼터가 있다. 강아지들이 짖거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다는 민원도 있어 이곳을 찾는 반려인들의 주의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익산 성동포구마을에서는 반려견을 동반한 가족단위 체험이 가능하다. 자연 생태습지와 5㎞ 구간의 바람개비길을 걷거나 자전거 투어를 할 수 있다. 금강과 아름다운 생태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익산 용안생태습지공원 전경 / 한국관광공사 제공
편하게 먹고 마실 만한 곳 반려견과의 동반여행 일정을 짤 때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가 애견카페다. 김제 벽골제에서 차로 10분가량 거리에 있는 한 애견카페를 들렀다. 잔디가 깔린 마당 주변으로 4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파라솔을 갖춘 탁자와 의자들이 10개가량 놓여 있다. 마당 크기는 아이들과 대형견을 포함한 반려견들이 뛰놀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대형견 2마리를 포함해 15마리 정도의 강아지가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평소 휴일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마당 주변에서는 견주들이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들을 보며 여유롭게 커피와 간식을 즐긴다. 실내에서도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마실 수 있게 좌석을 마련해 놓았다. 가격대는 아이스아메리카노 6000원, 자동조리기에서 끓인 라면 3000원 정도다. 돈가스와 김치볶음밥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들도 있다. 한끼 식사하기에는 양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야외 마당 옆으로는 수영장이 있다.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소형견은 1만원, 대형견은 3만원이다. 시설 운영이나 가격은 휴가철에도 동일하다. 카페 맞은편에는 차량 7~8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애견카페 이용에 제한은 없다. 기본적인 펫티켓만 알고 가면 된다. 목줄과 배설봉투, 입마개(대형견) 등이 필수다. 수컷의 경우 실내에서는 ‘매너 벨트’로 불리는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마킹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간혹 배변을 수거하지 않는 견주들도 있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업주가 가장 걱정하는 상황은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들이 일반 강아지들과 섞이는 경우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강아지들은 처음엔 다른 강아지들을 피해다니거나 견주 주변에서만 맴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강아지들과 곧잘 어울린다. 하지만 공격성이 강한 강아지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카페 업주는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가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생각 없이 다른 강아지와 섞이게 하는 견주들이 간혹 있다. 방문하기 전 전화로 카페 동반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방문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상 반려견과 여행할 때는 먹거리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우선 실내에서 반려견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많지 않다. 선택지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려견 놀이와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음식 맛과 가격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비교적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한옥마을의 많은 식당과 카페가 야외석을 따로 두고 있어서다.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으로도 잘 알려진 B식당은 별관에 따로 켄넬(반려동물 이동가방)을 갖추고 있다. 중형견까지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다. 한옥마을을 찾는 반려인들에게 인기가 많아 주말이나 휴일엔 항상 긴 대기 줄이 만들어진다. 이날은 평일 오후 1시를 넘긴 터라 예약을 따로 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면 종류(2인 1만7000원)만 팔기 때문에 회전율이 빠르다.

전주 자만벽화마을 전경 / 안광호 기자
한정식집인 T식당도 반려인들이 한 번은 가볼 만하다. 오전에는 한정식(2인 기준 3만원) 단일 메뉴만 주문할 수 있다. 이곳도 반려견 동반 손님들은 별채로 안내한다. 사람에 따라 양념이 자극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오는 반찬들이 깔끔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한옥마을에 있는 카페들도 야외석을 마련한 곳이 많다. 반려견 동반 입장은 가능하지만 실내 출입은 불가하다. 카페 주인이 직접 야외석으로 나와 주문을 받고 카드로 계산한 후 주문한 음료와 영수증을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김제에서는 반려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M카페를 찾았다. 만경읍 골목에 있다. 200년 된 느티나무에 버려진 나무와 자재들로 식당 입구를 멋스럽게 꾸몄다. 전체적으로 한옥과 나무 자재를 엮은 구조다. 사다리를 타고 3층 다락방 형태의 트리하우스에 오르면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애견 전문 카페는 아니지만 야외석에서 반려견과 동반 식사할 수 있다. 대형견은 들어갈 수 없다. 식사 메뉴는 새우볶음밥 등 모두 3가지다.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며, 식당 맞은편에 5~6대 주차가 가능한 공간이 있다.
걷기 좋은 곳과 쉴 만한 곳 전북에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맘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한 ‘눈치보지마시개 길’ 10곳이 있다. 기존 둘레길과 공원, 호수길 중에서 주차 공간이나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성, 탐방객 수 등을 따져 전북도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김제와 익산, 전주 등 3곳을 둘러봤다.
김제 만경읍 화포리 새만금광역탐방로는 토정마을에서 진봉면사무소까지 이어진 편도 6.5㎞ 구간이다. 만경강 제방길을 따라 간척지와 들판, 바람, 갈대가 있는 생태환경을 반려견과 함께 체험하며 걸을 수 있다. 시작점인 만경낙조전망대에서 만경 8경 중 1경으로 꼽는 만경낙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전망대 주차장에 야외 공용화장실이 있긴 하나 코스 중간에는 화장실과 쉼터가 없다.
익산 성당포구 바람개비길은 성당포구 금강체험관 뒤에 있다. 성당포구 마을에서 출발해 바람개비길과 용안생태습지공원을 거쳐 다시 성당포구 마을로 돌아오는 4.8㎞ 구간이다.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들이 춤을 추며 방문객을 반긴다. 쭉 뻗은 길을 반려견과 함께 걸으며 사계절 내내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여행지다. 바람개비길 주위엔 약 67만㎡ 규모의 용안생태습지공원이 있다. 이곳에선 나비광장, 풍뎅이광장, 조류전망대 등 다양한 습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또 느릿하게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반려견과 쉬어갈 수 있는 조망 쉼터도 잘 갖춰져 있다.

반려동물 동반 식사가 가능한 전주한옥마을 식당의 한정식 상차림 / 안광호 기자
전주 바람쐬는길은 전주자연생태박물관에서 출발해 슬로길 쉼터(반환점)를 거쳐 다시 전주자연생태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약 4㎞ 구간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걸어서 5분이면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다. 길 오른편으로 맑은 전주천이 흐른다. 왼편으로 승암사, 치명자산 성지, 세계평화의전당 등을 지난다. 코스 내내 나무 그늘이 있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반려견과 함께 느릿느릿 산책하기 좋다.
바람쐬는길을 포함해 지난 5월 눈치보지마시개 길로 추가 선정한 4곳(전주·군산·익산·고창)은 길을 알리는 이정표나 상징물이 아직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처음 이 길을 찾는 방문객들이라면 길의 시작점과 코스, 종착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전북도와 관광공사는 오는 7월 중순까지 코스 주요 지점에 안내판을 설치 완료할 계획이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면서 비용까지 저렴한 숙소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여행 콘셉트에 따라 반려견 전용 펜션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려견 동반 숙소들은 통상 ‘세탁비’ 명목으로 최소 1만~2만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결국 김제와 익산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전주에서 2박을 했다. 두 군데 모두 가격은 7만원으로 동일했다. 비성수기이면서 조식 없이 일요일과 월요일에 숙박했기에 이 가격대가 가능했다.
전주한옥마을 내 B한옥체험 숙소에서 첫 1박을 했다. 한옥마을의 감성을 느끼면서 시간에 구애없이 반려견과 산책이 가능하다. 도보로 한옥마을 내 식당이나 카페, 관광지 방문도 할 수 있다. 한옥마을 변두리에 있다. 상가와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중심지에 비해 여유롭고 조용한 편이다. 주차장도 무료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대에서 알 수 있듯 시설 수준이 아주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방과 화장실이 좁고 냉장고 등 숙소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가전설비가 없다. 전주 구도심에 있는 D숙소의 경우 시설 수준에선 조금 나은 편이나 근처에 편의시설이 없고 한옥마을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게 단점이다. 두 군데 모두 원룸 형태인데다 조리시설이 없어 가족단위의 반려여행객들에게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숙소를 예약할 때 보통 홈페이지나 블로그 후기를 참고한다.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당일이라도 사전에 방 상태와 추가 요금 등을 유선으로 확인하는 게 좋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